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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정 Jul 17. 2022

무언가를 묻어둔다는 것 <헤어질 결심>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게

7/9

주말에 영화관을 찾았다. 헤어질 결심을 보기 위해서.


박 감독 작품을 좋아해서 브런치에 감상평도 여러 편 남겼었다. 역시나 특기인 시(詩)로. 나에게 넷플릭스는 고마운 존재다. 코로나가 지배한 기간 동안 영화 보는 안목을 많이 길러 주었기 때문. 아마 고전 영화를 포함한 명작을 100편 정도 몰아봤을 거다. 다들 그러지 않았을까? 코로나 시대가 복습의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간을 아주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한 가지 단점? 특징이라고 한다면, 영화를 볼 때 꼭 자막을 틀고 보는 습관이 있다는 것. 귀가 어두운 면도 좀 있겠지만(아직 20대인데?) 발음이 안 좋은 배우가 나오면 자막은 필수로 켜는 편이다. 전달력은 확실히 중요하다. 특히 예술이라는 장르에서는 더. 배우의 미묘한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워서 요즘엔 그 부분에 집중하기 위해 자막을 끄고 보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에 탕웨이 배우가 나온다구요, 한국 영화에서 중국 배우가 어떻게 대사를 전달하려나.


궁금함 반 걱정 반이었다. 알아듣지 못할까 봐. 중요한 대사를 놓치거나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과 달리 영화는 보는 내내 잘 이해됐다. 중국에서 온 인물이라는 설정이어서 ‘답답한 의사소통’이 오히려 무기가 되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게 답답함이라는 단어를 빼고 과연 설명이 가능한가? 그래서 영화는 범죄 수사 영화의 성격 또한 함께 가지고 간다. 모든 게 적절히 잘 버무려진 영화다. 그럼에도 감독은 어눌한 의사소통으로 인한 관객들의 답답함을 어떻게 해소하고, 어떻게 책임질 건지 고민한다. 송서래(탕웨이 역)가 사용하는 한중 번역기가 그 이유다. 언젠가 답답함을 시원하게 뚫어줘야 하니까. 책임감 있는 예술인의 자세란 이거지!


영화를 보는 내내 버터 오징어 구이를 산 걸 후회했다. 짭조름한 그것은 시작 전에 이미 해치웠는데 자꾸 갈증이 나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것이었다. 영화의 분위기가 미묘하고 야릇해서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오징어 핑계를 대고 침을 삼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뭔가 침 삼키는 게 눈치 보이는 영화다. 그런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그래서 배우들의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과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해야 하고, 후반부터는 덜컥 변하는 모습까지 보여야 하니까. 물론 배우님들 연기는 훌륭했다. 다들 매력이 넘치는데도 사실 나는 작품 자체가 제일 튀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상을 받았나? 이번 영화에서 박 감독님의 스타일이 좀 더 다양하게 확장되었다고 느꼈다. 그만의 미장센은 고수하되, 자극적이지 않고도 조용히 휘몰아치는 감정을 보여준 것이. 사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하지 않나. 겉으로 고요해 보이면서도 엄청나게 휘몰아치고 있는 게.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서래: 나는 바다가 좋아요
해준: 나도.


서래는 바다다. 스스로도 바다라고 했고 산 같은 사람과는 멀다고 했다. 해준(박해일 역)은 서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산이라고 생각했던 자신도 서래를 통해 바뀌어간다. 딱딱했던 모습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가고, 그를 괴롭히던 불면증이 사라지는 걸 보면. 서래의 청록색 옷. 올곧은 높은 산을 싫어하고 실제로 높은 곳은 무섭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그랬나 싶다. 높지 않은 곳에서 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산이었던 그의 품 안에 들어가고 싶었는지도. 안개처럼 흐릿한 미결이 되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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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새와 관련된 장면을 유심히 보게 됐다. 첫 번째 서래 집 마당에 죽어있던 검은 새. 고양이 사료를 먹고 죽은 건지 날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죽은 건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새로운 발상을 해본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새도 있지 않을까? 새도 자살을 할 수 있나? 자연사하는 새들은 어디에 마지막 자취를 남길까. 나도 새를 묻은 적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내 아이들을 제외하고 야생 새를 묻어준 적이. 아파트 옆 동에 어떤 꼬맹이가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다가가서 보니 새가 죽어 있었다. 부리에 피를 묻히고서. 왜 죽었을까. 바로 앞에 유리문이 있고 그곳에 작은 핏방울이 맺혀있다. 비행하다 부딪혀 죽었구나. 너네가 살기에 이 세상은 많이 혼란하지. 평소처럼 그냥 날아올랐는데 웬 벽이 있고.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아직 사후 경직이 오지 않아서. 검지와 중지를 대보니 가슴이 들썩거리지 않았으나 그래도 혹시 깨어날지 몰라 두 손에 감싸고 몇 분을 기다렸다. 이 과정이 제일 힘들다. 누가 봐도 떠난 생명인데 내가 혹시 마지막 숨통을 끊는 걸까 봐서. 내 새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이미 차갑고 딱딱한데도 혹시 죽은 게 아닐까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그렇게 오랜 시간 땅에 묻질 못 했었다. 묻는다, 묻다, 묻다… 서래가 무언가를 묻는다. 아, 묻다라는 표현이 중의적으로 표현된 작품이구나.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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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언가를 밝히거나 알아내기 위해 상대편의 대답이나 설명을 요구할 때 쓰는 내용.

2. 물건을 흙이나 다른 물건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쌓아 덮다.

3.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 깊이 숨기어 감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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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엔 할머니가 키우는 앵무새가 나온다. 여기 나오는 새가 꽤 중요한 미장센 역할을 하는데 아무도 이를 찾아낸 후기가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새는 왕관 앵무새. 말을 잘 따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노래를 좋아해 휘파람을 잘 부는 게 특징이다. 모란 앵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이 포인트 때문에 왕관 앵무를 굉장히 매력 있게 생각하는 편이었고. 마침 영화에 딱 하고 나오니 반가웠는데, 이곳에서의 앵무새는 캐치 포인트로 등장했다는 생각이다. 미궁 속에 있을 때 톡- 하고 전등이 켜지는 그 캐치 포인트. 영화 중후반부 서래가 돌보던 할머니의 병실에서 해준은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얻는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전부 기억해 말할 순 없지만 의도치 않게 중요한 단서를 함께 공유했고, 지켜볼 수 있는 존재였으며, 노래(할머니의 경우 정훈희_ 안개)를 듣고 즐긴다는 것까지 병실의 왕관 앵무새와 같다. 인도의 가정에서 키우는 새가 침입한 강도를 기억해 잡았다는 일화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지 않을까. 여기서는 뻔한 클리셰 대신 노래 정도는 부를 줄 아는 왕관 앵무새가 등장한다. 안개가 쳐져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주는 치매 할머니가. 너무 똑똑해 다 말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감독이 이를 의도해 수많은 앵무새 중에 왕관 앵무를 섭외한 거라면 그 디테일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앵무새 종류와 특징까지 아는 건 드문 정성이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키우는 새의 새장은 작고 소박하다는 점도 3년 차 앵무새 집사가 보기엔 나름 포인트였는데 이건 의도한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원형 새장. 예쁘긴 더럽게 예쁘니까. 산인지 바다인지 모를 푸른 벽지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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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헤어질 결심’ 네이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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