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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눈경영 Sep 24. 2018

Blackberry 경영진이 겪었던 4번의 딜레마

시장점유율 47%, 기업가치 90조 원, 연 5천만 대 판매를 자랑하던 회사였다. 캐나다에서 Research In Motion (RIM)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Blackberry로 이름을 바꾼, 지금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회사 이야기이다. 


초기 트렌드 리더들의 필수품

2000년대에는 Personal Digial Assistant (PDA)라는 제품들이 프로페셔널들 마다 필수로 들고 다니던 디바이스였다. Palm Pilot이라고 하는 제품이 대표적 예였다 (아래 그림 1 참조). 일정관리, 메모 등이 주요 기능이었고, 입력은 하단에 Graffitti로 불리는 알파벳을 정해진 방식의 필기체로 쓰면 입력이 되는, 지금으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제품이었다. 적외선 장치가 있어서 서로 명함을 원격으로 교환하는 것을 멋으로 알던 시기이다.

 

** 참고로, Palm의 운영체계 (OS) 였던 Palm OS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LG에게 인수되어 현재 LG의 스마트 TV를 동작시키고 있다고 하니, OS들의 생명력은 상당히 긴 것 같다. 하긴, Android도 1991년 탄생한 Linux에 기반하고 있고, Apple의 iOS도 Steve Jobs가 Apple에서 축출된 뒤 창업해서 만든 NextStep이라는 OS가 모체였다고 하니.. 

그림1. Palm Pilot

이어서 나온 제품이 Handspring사의 Treo였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에 출시된, PDA에 통화 기능을 결합한, 나름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Palm사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이 창업해서 만든 회사였고, 키보드도 탑재한, 시대를 앞섰던 제품이었다. 하지만, 두 개의 제품을 결합한다고 반드시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듯이, Treo나, 이어서 출시된 PDA+Phone 제품들은 특별한 차별점/고객가치를 찾지 못하고 그저 그런 제품으로 잊혀져 갔다.

그림2. Handspring Treo


프로페셔널들의 로망

Palm이나 Treo가 소수 세그먼트를 위한 제품이었다고 하면, 전 세계 프로페셔널들을 열광시킨 제품이 바로 Blackberry이다. 깔끔한 디자인, 보기보다 입력이 편리한 (당시로는 작은 제품에 타이핑하는 것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제품도 호소력이 있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이동형 이메일이었다. 당시 이메일은 오피스나 집에서 책상 앞에서나 접근이 가능했고, 노트북을 들고 다녀도 데이터 통신이 거의 안되었고 WiFi보급률이 낮아서 매우 불편했다. 


 그림 3. Blackberry 

초기 고객들은 Early Adopter들이 아닌, 즉각적 이메일 접근이 필요했던 로펌이나 투자은행의 중역들이었다. 이들이 Blackberry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즉각적 답을 요구하기 위해 Blackberry의 보급 확대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술들이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의 주도로 도입되는 것에 반해 Blackberry는 드물게 CEO/경영진이 CIO를 압박해서 도입하는 사례가 되었다. 


물론 경쟁도 있었다. Palm은 야심 차게 출시한 Palm VII을 통해 이메일을 제공했지만, PC용 이메일과 sync도 안되었고, 안테나를 뽑아 들고 메일 다운로드를 기다려야만 했다 (Blackberry는 Push mail이라, 자동으로 메일 noti가 되었다). 한편, 당시 Nokia와 거의 쌍벽을 이루던 Motorola는 "하찮은 메시징 디바이스"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서 패스했다고 한다. 


Blackberry는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는 열광하는 프로페셔널 고객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통신사들의 전폭적 지원도 한 몫했다. 즉, 이전까지 미미했던 데이터 요금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 조원에 이르는 시장이 창출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꺼이 Blackberry 서비스 가입자당 $10을 Blackberry에게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2010년 $15B (약 17조 원), 2011년 $20B (약 24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게 된다.


1. 숫자가 상반된 현상을 보여줄 때

하지만, 이들의 신경을 계속 건드리는 제품이 있었으니, 다들 잘 아는 2007년 여름에 출시된 iphone이다. 그 제품의 센세이션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iphone이 한 레벨 올라선 계기는 2008년 여름에 공개된 App Store 였다. 더욱이 2008년 가을에 Android마저 등장하면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림 4.1 

즉, 위 그림 4.1에서 보듯이, App Store라고 하는 플랫폼이 없는 Blackberry를, Platform 및 다수의 App을 보유한 Apple과 Google이 강하게 압박해온 것이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한 현상이 2009년부터 벌어진다. 아래 그림 4.2의 2009~2011년 구간을 보면, 실선인 Market Share가 감소하는데, 반대로 막대그래프인 매출은 지속 성장한다. 실제로 2011년 2분기까지 전년 분기 대비 30% 이상 성장을 보였다. 여기서 경영진의 판단이 중요하다.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지만 매출은 대폭 상승한다. 이는 위기인가, 일시적 현상인가?

답은 외국인들이 잘 쓰는 "it depends"가 맞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에는 반반 정도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Blackberry의 사례는 어떠했을까? 여기서 Platform이라는 변수가 끼면 생태계(Eco system)가 구축되기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진다. Apple은 폐쇄형 생태계라 조금 다른 이슈이지만 Android는 개방형이라, 시장점유율 2위는 시장점유율 제로와 마찬가지가 된다. 즉, Winner takes it all 시장이 되기 마련이다. 


이 구간에서 Blackberry의 실적을 견인하던 것은 통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국가들이었다. 이들은 iphone/android를 수용할 만한 여력이 안되었기 때문에 Blackberry가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지역이다. 그러나, 통신 인프라의 업그레이드는 시간의 문제라는 점은 쉽게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Blackberry 경영진은 당시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와, 플랫폼의 의미를 번갈아 보면서 전략을 선택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림 4.2


2. 자원의 배분에 판단이 어려울 때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대응이 늦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Blackberry가 App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플랫폼이 위력적인 이유는 App의 숫자와 이용자 수가 선순환을 그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닭이냐 달걀이냐가 아니고, 공급(App)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래서 Blackberry도 자체 App Store를 만들면서 대응했다 (아래 그림 4.3 참조)

그림 4.3

일단, 너무 늦게 App Store가 공개되었다. Blackberry가 App Store를 오픈한 2009년, Apple은 이미 10억이 넘는 App download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응의 속도가 늦은 점은 전략적으로 어려운 고민이 아니다. 깨닫는 순간 움직이면 되므로. 하지만 어려운 점은, 얼마나 강하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Catch-up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가?

 

Alan Panezic

이 시점에서 Blackberry는, 총력을 다하기보다는 모양만 갖추는 정도로 App의 숫자를 목표로 삼는다. Microsoft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는데, 고객당 사용하는 App의 수가 많아야 수십 개 밖에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App의 수가 실상 그렇게 많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이다. 문제는, 수천만명의 고객마다 서로 다른 App을 원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Blackberry 고객들은, 원하는 App이 결여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예를 들어, Blackberry App Store에서는 카카오톡이 한참 동안 없었다. 


결국, App의 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Microsoft도, Blackberry도 간과했다. 심지어 Blackberry의 App Store를 책임지고 있던 VP Alan Panezic은 "방귀 App이 200개나 있어야 되나?"라는 말로 App 개수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했다. (방귀 App이란, 누르면 방귀소리가 나는 App으로, 초기 Android에 쓸만한 App이 많지 않을 때 나름 인기가 있었다)


3. 바뀐 세상을 따라가기 버거울 때 (Hunter vs. Farmer 딜레마)

잠시 주제를 살짝 벗어나서.. 3대째 된장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전통의 식품회사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서서히 젊은 층의 입맛이 서구화되면서 된장의 판매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치자.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어려운 질문이다. 강점인 된장과 발효를 계속 유지해야 되는지, 아니면 트렌드에 맞게 전혀 강점이 없는 피자나 스페인식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지.. 이는 마치 수백 년째 같은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Farmer)들이, 근처 강이 서서히 말라갈 때 과연 터전을 계속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해본 적 없는 Hunter로 변신하거나 착하디 착한 성격을 버리고,  다른 지역의 농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그 땅을 빼앗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 이는 경영진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고객의 취향이 바뀔 때, 본연의 강점에 매달릴 것인가? 미지의 영역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공동대표 Jim Balsillie(사업)과 Mike Lazaridis(기술)

당시 공동대표로 기술/개발을 책임지던 Mike Lazardis는 전자를 택하게 된다. 화려한 그래픽과 음악/영화로 판을 바꾸던 Apple/Android를 보면서도, "우리는 배터리 수명, 보안, 키보드로 승부한다"는 방침을 내세운다. Tablet에서도 마찬가지의 판단을 내린다. ipad가 스타일/콘텐츠/사용성으로 혁신을 하는 동안 Blackberry는 본연의 강점인 보안/안정성/멀티태스킹에 집중한다. 결과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많은 경영진들은 말라가는 땅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선택을 하는 듯하다. 소수의 정찰대를 보내는 정도만 하지, 최소의 농사를 위한 인력과 장비를 두고, 나머지는 warrier로 육성, 전쟁을 떠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Comfort zone을 벗어나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향한다는 것은 보통 큰 결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티다 보면 큰 비가 내릴 것을 기대하는 순진한 농민의 마음에 오히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식음료에서 중공업으로 변신한 두산 정도가 한국에서 단기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경영에서는 기존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모두 M&A나 신사업에 투자하는 전략이며, Blackberry는 결국 Farmer의 길을 택했고, Robert Frost의 시처럼 "이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4. 기존 사업에 도움이 안 되는 기회가 발생했을 때

2000년대 통신업계에서 "Walled Garden"이라는 표현이 유행했었다. 지금의 "폐쇄형 생태계"와 유사한 개념이고, 현재 Apple이 채택한 전략이다. 즉, Apple용 App을 만들면 타제품에서 사용이 안되고, 오로지 iphone/ipad의 판매에 기여하는 구조이다. Google이 검색광고와 App Store 매출의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Android라는 개방향 플랫폼을 소개하기 전까지 IT산업에서 개방형 플랫폼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 좋은 일만 하는 자선활동이었으므로. 하지만, 경쟁사들까지도 한 집안으로 묶는 효과로 인해 경쟁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개방형 플랫폼 자체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둘경우 현재로는 생각 못하는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폐쇄형 플랫폼 vs. 개방형 플랫폼?

Blackberry의 경우 개방형 플랫폼 전략을 택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 만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BBM이라 불리는 Blackberry Messenger이다.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2010년에 이미 3천만 명, 2011년에 6천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WhatsApp이나 WeChat보다 6개월가량 먼저 달성한 숫자였다. 


그림 4.4

여기서 Blackberry의 경영진은 BBM을 iphone/android용으로 만드는 전략(그림 4.4)과 Blackberry 전용으로 유지하는 기로에서 후자(폐쇄형)를 택하게 된다. 개방했을 때 BBM이 Blackberry Phone 판매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후 WhatsApp은 Facebook에게 $17B (약 20조 원)에 매각되고, WeChat은 채팅 프로그램을 넘어서, Fintech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중국에서 Blackberry 플랫폼을 탑재한 제품의 출시를 타진해온 것이다 (그림 4.5). 이미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잃을 것이 많지 않은 Deal이었지만, Blackberry 하드웨어 장사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결국 라이센싱 전략은 폐기되고 만다.

그림 4.5




이후 Blackberry의 운명은 잘 알려진 대로이다. Nokia처럼 연속된 판단 미스를 겪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Hindsight Bias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쉽게 말해 "거봐, 내가 뭐랬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뒤늦게 "나라면 저렇게 안 했어"라고 주장하기는 쉽다. 하지만, 당시 경영진이 겪은 상황은, 특히 플랫폼이라는 개념과 현실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는 혜안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략은 어렵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배워나가야 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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