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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눈경영 May 12. 2018

넷플릭스가 망할 뻔한 5번의 아찔했던 순간들

또는, "골리앗" 블럭버스터가 저지른 5번의 실수

지금의 넷플릭스는 방송연예(Media & Entertainment) 산업에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이 영역은 21세기 폭스, 타임워너, 소니컬럼비아, NBC유니버설, 디즈니 등 메이저 영화사/배급사들이 쥐고 흔들던 분야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기업 위상의 가장 중요한 척도인 시가총액(Market Cap)은 현재 대략 150조 원 정도 된다. 이는 타임워너와 21세기 폭스의 기업가치를 합친 규모와 같고, 월트 디즈니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이닉스+현대차+포스코 보다도 높다. 


이러한 넷플릭스도 (모든 기업들이 그랬듯이) 수많은 아찔한 위기를 넘기면서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 위기의 순간들 대부분이, "골리앗"이었던 블록버스터(Block Buster)사가 거의 자비롭게 살려주다시피 했다는 사실이다. 훗날 기업 역사학자들이 보면 아마도 일부러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대표적 순간들을, 블럭버스터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 참고로, 블럭버스터는, 한때 90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했던, 미국의 비디오/DVD 대여점 체인이다. 우편 배송 모델을 들고 나온 넷플릭스에 밀리고 여러 번의 헛발질 끝에 2013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회사다. 


장면 1 [1998-1999]: DVD 시장을 통째로 무시하다.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된 DVD (Digital Video Disk)도 1998년만 해도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이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는 화질, 휴대성 등, 누가 봐도 우월한 특성으로 인해 보급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추세에 편승해서 타이틀도 1500개 이상 확보하고 월 1억 원의 매출을 찍는 등 나름 괜찮은 초기 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VHS Tape

그런데 블럭버스터는 당시 대부분의 비디오 형식이었던 VHS (이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왼쪽 사진 참조)를 취급하면서 DVD는 아예 매장에 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Warner Brothers가 DVD를 블럭버스터에게만 독점 공급하겠다는 제안도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 이후의 역사는, 다들 알다시피 DVD가 VHS를 빠르게 대체했고, 블럭버스터는 넷플릭스라는 불의 조기진화에 실패하게 된다. 2001년 블럭버스터 Annual Report에 이러한 오판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DVD의 화질과 음질의 우월성으로 인해 이 산업을 견인할 것으로 믿는다")


당시 CEO였던 John Antioco의 작품이다.


장면 2 [2000]: 넷플릭스 인수 제안을 거절하다.

넷플릭스 CEO Reed Hastings - 우편배송에 쓰이던 봉투를 들고 있다

넷플릭스 CEO Hastings는, 블럭버스터 CEO에게 여러 차례 구애를 했었고, 드디어 2000년에 둘이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Hastings는 당시 온라인 사업부가 없었던 블럭버스터에게 넷플릭스를 인수해서 온라인 사업부로 만들라고 제안했다. 당시 금액은 5천만 불, 대략 600억 원 정도였다. Antioco는 코웃음 치면서 "소위 인터넷"으로 "검증도 안된 사업모델"을 하는 회사에게 그 돈을 쓸 수는 없다면서 거절했다. 


이후에 블럭버스터는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10배가 넘는 돈을 쏟아붓고도 실패했고, 지금 넷플릭스는 2,800배 성장했다. 


이 역시 당시 CEO였던 John Antioco의 작품이다.


장면 3 [2001]: 스트리밍 서비스를 추진하다가 포기하다.

John Antioco는, 이후에 뒤를 이은 CEO 대비 나름 전략적이었고, 상대적으로 능력도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넷플릭스에게 "DVD 우편 대여"라는 시장을 내어주자, 한 단계 건너뛰어, 현재 넷플릭스의 주력사업인 스트리밍으로 직접 뛰어들 생각을 한다. 넷플릭스보다 거의 10년을 앞선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한때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DSL 망을 통해 서비스를 준비했다.

블럭버스터 CEO John Antioco


하지만, 당시 인터넷 망이 그 정도의 화질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었다. 게다가 망 사용 관련 계약을 맺었던 회사가 바로 대형 사기로 망한 Enron의 자회사였다. 이 당시 Napster (주: 한국의 Bugs의 전신인 소리바다와 동일한 미국판 서비스) 관련 디지털 저작권이 이슈가 되었고, 관련 규제가 제대로 정립이 안된점이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고심 끝에 Antioco는 스트리밍 서비스 계획을 접게 된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안도의 한숨이 나올만한 순간이었다.


장면 4 [2002-2003]: 내부의 적들에게 저격당하다.

넷플릭스의 위협이 진짜임을 인식한 Antioco는, 당시 28세의 Shane Evangelist에게 넷플릭스의 대항마인 Blockbuster Online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대부분 기업들이 그렇듯이, 새로운 사업은 기존 사업의 "형님"들에게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된다.


우선, 넷플릭스의 가장 큰 무기였던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서 추천하는 기능이었다. 블럭버스터가 보유한 개인별 대여 정보는 비교가 안될만큼 많았다. 온라인 사업부는,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프라인 고객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이러한 시청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반격을 구상할 수 있었으나, 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가 거절당했다. 쉽게 말해 "꺼져" 였다.


타이틀 구매도, 본사에서 지원을 안 해주는 바람에 Shane이 영화사마다 찾아다니면서 직접 구매해야 했다. 얼마나 낭비인가?


야후/아마존에게 온라인 운영 대행 및 홍보 업무를 맡기는 계약을 추진했지만, 이번에는 법무팀이 사사건건 계약서의 트집을 잡다가 아예 논의 자체를 끝내버렸다. 


CEO도 도와주지 못한 (그도 기존 사업의 반발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hane은 놀라운 열정으로 Blockbuster Online을 넷플릭스에 도전할 만한 서비스로 키워가고 있었다. 새로운 CEO가 오기 전까지..


장면 5 [2007]: 시대에 뒤떨어진 CEO를 앉히다

James Keyes

Antioco에 이어 CEO로 세븐일레븐(!) 출신의 제임스 키스(James Keyes)가 취임한 것은, 예를 들면 스마트폰을 안 써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애플의 CEO에 취임한 것과 비슷했다. 집에서 버튼 하나로 영화를 검색하고 즉시 시청하는 서비스를 옆에 두고, "매장까지 찾아와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 시청하는" 서비스가 우월하다고 믿는, 매장 중심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구시대적 인물이었다. 결국 다운로드 키오스크에 집중투자를 했고, 이후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고객들은 점점 외출보다는 집에서 영화를 즐기게 되자 넷플릭스와의 간격은 더욱더 커지게 되었다. Keyes는 매장 대여료 인상, 연체료 부활 등 최악의 수를 거듭하다 3년 만에 회사를 부도 상태로 내 몰게 된다. 


확인 사살한 셈이다.





간판을 내리는 블럭버스터 매장

어떤 사건이던, 일어난 이후의 평가는 쉽다. 결과론이기 때문이다. 블럭버스터가 넷플릭스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왜 놓쳤을까? 그 이유들을 한번 다시 곱씹어 보면, 분명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즉, 기업 본연이 갖고 있는 관성/복지부동/이기주의/근시안적 사고/변화거부 등,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습성에 의한 것이지, 넷플릭스-블럭버스터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사업기회는 새로운 기업이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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