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작렬 창고 주인 왈!(曰)

120718

by 아무개




오늘.

침실에서 찍은 거미 사진 두 장. 그게 전부다. 사건은 아니지만 단서를 통해서 기억해 낼 수 있는 오늘의 일. 그리고 어울림.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의 물방울'에 이어서 '용비불패'를 완독해 나가고 있다.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저 나이에. 가끔 몸을 펴가며 신음소리까지 낸다. 머리를 뒤로 젖혀가며 경직된 근육을 풀어보려고 짧은 용트림을 할 때면 우두둑하는 척추의 환호성이 시원한 쾌감을 몰고 온다. 그의 만화 사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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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다음날.

어차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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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관리하는 매니저가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고 말해준다. 옥상에 올라갔다.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인다. 기분이 새로워진다. 어울림도 좋아한다. 눈 쌓인 산이야 집 근처 북악산을 보아도 충분하겠지만 히말라야의 설산들은 다른 감흥을 느끼게 한다. 구름이 조금 더 열릴 것 같아 댐사이드 공원(Dam side park)에 갔다. 마차푸차레(6,993m)가 구름 사이로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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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는 '생선 꼬리'라는 뜻이다. 네팔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산으로 정상 등반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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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움직임이 호수에 원형의 파문을 일으키고, 기류 위에 실었던 새의 날개는 몇 번의 퍼덕임으로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킨다.






산책길에 창고를 하나 보았다. 얼핏 보아 우리의 곳간과 같아 보였다. 창고는 그 안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그 가치를 달리한다. 창고가 열려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 창고도 역시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그 안에는 중요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일하게 자신에게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굳이 잠가 놓아 둘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없을 테니까.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들이 있을 때 창고의 열쇠는 권위를 갖는다. 열쇠를 소유한 사람은 권위와 함께 안전도 보장받는다. 시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재물의 통제가 가족은 물론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권력이나 부와 명예가 서로를 견제하거나 거리를 두지 않는다. 동성애는 비난해도 권력과 부와 명예가 근친상간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없다. 오히려 그것을 욕망한다. 열쇠는 회장님들이 갖고 계시다.


그래도 소박한 어떤 이들은 빈 창고를 잠가 놓기도 한다. 잡아당기면 부서질 것 같은 문짝에 무겁고 번쩍거리는 자물쇠를 잠가 놓는다. 그 안에는 위선과 허영만 가득하다. 허세가 통하는 그 잠깐의 시간에도 그 빈 창고의 주인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불안한 것이다. 그런 창고는 허물어 빗물에 패인 집 앞의 길을 보수하는 데 사용하는 게 좋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빈창고 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찌 살아갈 것인가. 위선과 허영만이 우리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것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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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이 밝아 보이는 것은 내일과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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