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는 않지만 통증은 느낀다.
빨래를 하고 아침은 라면. 간밤에 모기. 그러나 물리지는 않았다. 어울림은 어김없이 만화책을 열독. 여유로움이 아닌 무료함이 나를 묶어버리기 시작할 때 나는 거칠게 저항한다. 나가야 한다. 어떻게든 움직이자. 어떤 자세로든.
이제는 우리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때. 페와 호수에 보트를 타러 간다. 보트를 빌렸다. 셀프 운항은 300루피. 항해사? 와 함께하면 350루피. 항해사와 함께한다. 그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안전을 위해 구명조끼를 요구했다. 하나에 20루피를 달라고 한다. 아. 에바랜드.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유명한 놀이공원. 그곳도 무엇이든 돈으로 환원되는 미다스의 공원이었다. 놀이공원보다는 편법 증여로 대단해진 그곳. 정말 에바다.
보트를 대여하는데 구명조끼는 별도 옵션으로 한다고? 스테이크 주문했는데 나이프를 별도 옵션으로 끼워 판다. 대범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원더풀 비즈니스!" 하고 외치자 움찔하며 겸연쩍어한다. 그리고 하나는 프리로 줄 테니 한 개 값만 달란다. 어디서 딜을... 오케이. 콜. 20루피를 주고 조끼 두 개를 받았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까. 그런데 알고 있나? 사실은 하나에 10루피씩 두 개를 대여한 것이다. 우리의 뇌는 반값 할인보다는 하나를 공짜로 주는 것에 더욱 흥분하며 마음에 거품 낀 이익을 남긴다. 착각. 십 분 후 어울림과 나는 구명조끼를 모두 벗어던졌다. 덥다.
항해사의 능숙하고 부드러운 노젓기가 시작되었다. 한가롭고 한가롭고 한가롭다. 물의 흐름이, 물 위에 떠있는 배의 흐름이, 한가로움이 기지개를 펴다가 무심코 손 끝으로 밀어버린 것처럼 한가롭게, 불지 않는 바람에 떠밀리듯이 움직인다. 항해사의 노젓기는 역학 관계를 증명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립싱크와 다르지 않게 시늉만 내고, 단지 몸의 중심에 따라 부드럽게 기우뚱거리는 움직임은 미처 배를 버리지 못하게 우리를 붙잡아 두려는 자장가처럼 너울댄다.
어울림의 움직임과 표정에서는 만족감이 묻어 나온다. 그 만족은 한가로움에서 빠져나온 자극적이지 않은 나른한 것이었다. 그는(이렇게 말하면 어울림이 조금은 객관화된다.) 물에 손을 담그며 배의 속도와 함께 밀려 나아가는 손가락을 본다. 호수는 잠시 동안 손가락들에 부드럽게 공간을 내어주고 그 댓가를 기분 좋은 마찰의 감촉과 손을 감싼 온도에 만족해하는 어울림의 느린 표정으로 대신한다.
죽은 물고기를 발견한 어울림은 물이 더러워서 물고기가 죽었는지 내게 묻는다. 괜찮을 거라 말했지만 더 이상 손을 적시지는 않는다. 죽은 물고기가 호수를 오염시키는지 오염된 호수가 물고기를 죽게 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못한다. 호수 건너편에 도착. 폭포를 보러 가는 짧은 길은 한적함이 제법 시원한 습기와 함께 방문객을 환영한다. 부서져내리는 물방울에 더위를 식히고 다시 배에 올라탔다.
갑자기 어울림이 놀란 듯 발목에 손을 대고 급하게 무언가를 털어내려 한다. 여러 번 털어낸 끝에 무언가 살펴보니 거머리였다. 거머리. 몸에 찰싹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존재. 흡착력이 낙지의 빨판 이상으로 강력해 잘 떨어지지도 않는 거머리. 그래서 질기게 사람을 괴롭히는 자를 우리는 거머리 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피를 빨리는 동안은 통증이나 가려움 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충분히 피를 빨기 위해 일시적으로 신경을 마비시키는 물질을 분비한다고 들었다. 피를 양껏 보충한 거머리는 작은 지렁이 같은 모습이 럭비공처럼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다. 징그럽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우리를 마취시키는 것들에, 물질이나 명예 혹은 어떤 신념 등에 취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삶의 진정한 시간과 영혼들을 빨려 버린다. 그런 삶은 징글징글하다. 성탄절의 그 벨소리는 아니다.
이 거머리는 움직임이 마치 자벌레 같다. 우선 한쪽의 빨판을 바닥에 흡착해 고정하고 한쪽 끝을 하늘로 향해 막대처럼 반듯하게 세운다. 자세와 난이도를 평가받듯 그 상태로 잠시 멈춘 뒤 다시 반으로 접으며 하늘을 향해있던 빨판을 먼저 디딘 발? 앞에 놓는다. 그리고 다시 뒷발을 하늘로 향해 쭉욱 펴며 스트레칭을 하고 반으로 접어 내딛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다소 불필요한 동작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독특함으로 시선을 빼앗기에는 충분하다. 관종 거머리.
거머리의 이동 방식을 관찰하던 중 문득 내 발을 살펴보니 양말을 뚫고 들어오려는 거머리를 발견했다. 떼어냈다. 어울림은 발목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하고 흥분을 한다. 안심을 시켜 보지만 계속 불안해하는 어울림. 거머리가 빨아먹는 피의 양도 놀랍지만 그보다 피를 빨린 곳은 한동안 지혈이 되지 않아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 문제다. 이 역시도 원활한 피의 유통을 위해 피의 응고를 막는 물질을 투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여러 번 물리면 헌혈증서가 발급될지도 모르겠다.
피가 계속 흐르자 어울림은 점점 통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어울림은 계속 피를 보게 되니 아파 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역시 생각일 뿐이라고 위로를 한다. 통증 없이 피를 흘리게 되는 경험은 하기 힘들다. 그러니 인지 부조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피는 예상외로 오래 그리고 많은 양이 흘러내렸다. 당연히 아파야 한다. 그것이 경험론을 지탱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울림은 실제로 통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피부가 아닌 뇌에서 직접적으로... 상상력과 신체의 신경계가 습관처럼 상호 동기화되어 부조화를 조화로 변화 인식하게 할 수도 있다.
아프지는 않지만 통증은 느낀다.
한가롭게 시작해 피를 본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현지 음식을 주문했다. 그는 치킨만을 밥 반찬으로 삼아 먹는다. 밥 양은 적지않게 먹었다. 나는 손으로 먹었다. 음식은 정말 손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