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산책. 빛나는 시간.
아침.
마른빨래를 정리한다. 어울림을 깨웠다. 빗방울이 듬성해진 사이를 이용해 숙소를 출발한다. 6시 30분. 블루스카이 여행사의 버스를 찾아 자리에 앉는다. 어울림은 멀미를 할까 봐 음식을 입에 넣지 않는다. 이런 때가 가장 안타깝다. 먹지 못 할 때와 먹을 수 없을 때.
바나나와 비스킷으로 허기를 때운다. 어울림이 좋아하는 오레오를 샀다. 두어 개를 먹고는 손을 놓는다. 많이 먹으면 멀미할 때 토하게 된다는 것이다. 먹은 것이 없으면 토하더라도 나올 게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며.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안쓰럽다. 버스가 추락한 현장을 지나왔다. 새벽에 사고가 있었으며 사상자가 57명이라고 한다. 8시간 가까이 달리며 서너 번의 휴게소를 거쳐 포카라 도착. 2시 30분.
어울림은 늦은 끼니를 채우고 숙소에 비치되어있는 만화책을 한 권씩 격파해 나가고 있다. 마음껏 읽어라. 여유롭게. 나는 샤워를 먼저 하고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어울림에게 동행을 권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묻지를 않았다.
저녁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요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요리는 검은 버섯과 채소와 닭고기, 고추, 땅콩, 양파 등을 볶아낸 것이다. 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울림은 그럭저럭이다. 그럭저럭은 사실 불만족스럽지만 직접 표현하기 부담스러울 때, 이미 끝이난 상황이라 말해도 별다른 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불편함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태도에서 내뱉게 되는 말이다. 어울림은 풀리지 않은 수학의 7대 난제를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집중력으로 만화책을 본다.
산책. 천천히 걸음.
오후의 햇살은 나무와 그 잎과, 풀과 사람들의 어깨와, 한가로운 소들의 등짝과, 검은 포장도로를 빛나게 했다. 오후의 햇살을 충분히 누리려는 전선들의 팽팽하지 않은 빛줄기는 벽과 지붕과 하늘 사이를 느슨하게 가르며 지나간다. 바람 없는 호수의 표면은 빛에 의해 잔물결이 만들어지며 반짝인다. 빛에 의해 만들어진 잔물결은 표면을 덮고 있는 기체를 흔들어 옅은 미풍을 만들어 낸다. 그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어 무겁게 흘러내리던 빛을 잎에서 떨어낸다. 떨어진 빛은 앞서가던 느려진 바람의 뒤를 빠르게 쫓는다. 그리고 다시 바람의 등에 업히는가 싶다가 그 속으로 스며든다. 바람이 빛난다. 빛을 내며 흘러 다닌다. 공간이 빛나고 끝내 시간도 빛이 난다.
'모든 공간이 빛나면 마침내 시간도 빛이 난다.'
오늘 하루 만화책 속에서 정성껏 어루만져진 어울림의 시간과, 거리와 호수와 그 주변에, 내 뒤꿈치에서 떨어져 나간 시간들, 바람에 쓸려 날아간 시간의 부스러기들까지, 그 모두가. 우리의 시간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