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보낸 비자 만료일.
하루.
종아리가 부어올랐다. 날렵하던 발목도 뭉뚝해졌다. 걸을 때마다 뻐근함이 종아리와 골반뼈를 바닥으로 잡아당긴다. 종일 쉬면서 어울림과 만화책을 탐독했다. 저녁은 쫄깃한 버펄로 고기와 럭시 몇 잔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내일은 인도로 간다. 육로를 이용해 가기로 했다. 싸니까.
또 하루.
1인 2,800루피. 어린이 할인 없음. 2시 출발 예정. 에어컨 없음. 예상 소요 시간 35~40시간. 2박 3일 여정. 버스를 보고 기도를 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멈추지만 말아달라고 진심을 전했다. 머리 위 선반 밑에 선풍기가 달렸던 자리가 휑하니 뚫려있다. 그나마 달려있는 선풍기 몇 개는 녹이 슬고 고개를 비튼 채 굳어있었다. 도로시가 기름칠을 했어도 안될것 같았다. 만약 순진한 도로시가 이 버스에 올라 탓다면 기름통을 들고 선풍기의 목덜미에 매달려 늙어 버렸을 것이다. 앞자리의 선반 밑에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커다란 구멍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더위와 피로에 지쳐 잠든 여행객들을 노리는 박쥐들의 통로 같았다. 아마도 박쥐들은 검을 주사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박쥐들은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출발.
버스 안에는 나와 어울림 말고도 한국인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네팔어를 할 줄 안다. 이곳에서 5개월간의 봉사를 마치고 귀국 전에 인도를 여행하러 가는 중이었다. 버스 안. 사람들의 체온이 더해진 더위와 땀냄새... 습기... 그것들이 달라붙은 끈적이는 살갗. 이것들과 두 번의 밤을 지나야 한다. 이게 잘 한 선택일까. 출발과 함께 시작된 버스의 흔들림은 그냥 지랄이었다. 어울림도 불편했는지 버스가 엄청 떨린다고 말했다. 피로가 풀릴지 몸살이 날 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휴식을 위한 몇 번의 정차가 있었지만 저녁 식사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외딴 휴게소에 도착했다. 달밧을 주문했다. 맛있게 먹기 위해 손으로 꼼꼼히 주물러 비벼가며 먹었다.
장거리 버스의 이동은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비즈니스를 동반한다. 네댓 번의 밥때가 바로 그렇다. 버스는 두세 시간 정도는 앞당기거나 미루면서 식당을 선택해 승객을 던져 줄 수 있다. 식당 주인은 버스 운전수의 제동 여부에 따라 수익이 결정 난다. 운송회사나 운전수에게 얼마의 수익이 보장되는지는 모르지만 식사는 공짜로 먹는 것 같았다. 아니면 월식(月食) 계약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는 곳이 뭐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나 싶다. 그리고 휴게소의 음식 맛은 어디를 가나 대부분 훌륭하다. 맛을 보장하지 않으면 운전사는 버스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사식당이 기본적으로 맛과 인심을 보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밤을 새워 달려야 한다. 그렇게 했다.
다음날.
8시간마다 두 명의 운전수가 교대를 한다. 동이 트기 전 깜깜한 새벽에 네팔의 출입국 관리소에서 출국 심사를 받았다. 나와 어울림의 여권을 들고 혼자서 사무소에 갔다. 어울림도 함께 데리고 갔어야 했다. 다시 버스로 가서 어울림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비자 만료일이 7월 27일이다. 오늘은 7월 28일. 하루가 지났다. 버스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아빠라는 짐승은 당황하면 안 된다. 불법 체류자들은 대부분 강제추방을 당한다. 사실 나는 출국이 목적이다. 결과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제당하지 않은 자발적 의사에 의한 출국을 원한다. 담당자가 영어로 말했다. 대충 분위기로 봐서 돈을 내야 한다는 것 같았다. 벌금인지 절차에 필요한 비용인지는 모르겠다. 하루에 3달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25달러를 내고 추가로 3달러를 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25달러인데 깎아서 3달러만 달라는 건지... 닝기리. 인간의 언어는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나는 버스가 베리베리 슬로우라서 날짜를 넘겼다며 너스레와 애교를 섞어서 무단으로 방류했다. 위트와 유머를 오염시켰다.
출국 카드를 작성하는데 돋보기가 필요했다. 다시 버스에 가지러 갔다.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돋보기를 쓴다고 단어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알파벳에 적개심을 품게 된 건 당연한 것이다. 난 이런 행정적 절차에 대해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서 이름을 적어야 할 일에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얼마 전 은행에서 출금 전표를 작성해야 했다. 이름과 계좌번호, 금액만 적으면 되는 일이었다. 보안 요원의 눈치를 보며 용지 네 장을 휴지통에 구겨 넣은 후 작성을 마쳤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이 더 좋지 못하다. 그래서 정말 싫다. 직원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아무 말 없이 서류를 차근차근 정리하더니 끝났다며 가도 좋다고 했다.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분별력 떨어지는 아빠를 둔 어울림이 안쓰러워 보여서 절차를 마무리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로 돌아가는데 귓속에서는 출입국 사무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알아 처먹어야 돈이라도 받지...'
육로를 이용해 국경을 넘는 일은 자주 경험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긴 한데 유일한 북쪽의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붉은 벽돌을 표시선으로 네팔과 인도는 나누어진다. 경계선. 선의 위치를 바꾸거나 하나의 선을 더 긋기 위해 사람들은 미쳐 날뛰기도 한다. 모든 전쟁과 잔혹한 비극은 선 때문이다. 국경선을 넘어섰다. 이제는 인도 출입국 사무소에서 입국심사를 해야 한다. 사무소 건물 앞에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를 갖다 놓았다. 법무부 야외 출장소다. 우리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다. 부드러운 인상의 담당자는 인상만큼 부드럽게 심사를 마친다. 버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빨리 출발 하고픈 마음으로 창밖을 보았다. 창밖은 나보다 여유롭게 보였다.
잠시 후 경찰들이 차에 올랐다. 그들은 차에 오를 때부터 긴장을 전염시키려 작정을 하고 있었다.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모든 것을 다 알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승객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 후 선반 위의 가방과 짐들을 만지고 꾹꾹 눌러가며 살핀다. 아무 이상이 없자 실망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린다. 곧 출발하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수와 승객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며 분주히 들락 거렸다. 계속해서 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버스 밖으로 나갔다. 버스 뒤편에서는 짐칸을 열고 커다란 가방을 모조리 꺼내어 내용물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무슨 첩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테러나 긴장 상태가 있는 지역이 아니고는 이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버스 안에서도 다시 선반 위의 모든 가방을 뒤집고 내용물을 꺼내어 헤집어 놓고 있었다. 수색이 모두 끝난 것을 확인하고 자리로 갔다. 내가 밖에 있는 동안에 카메라 보조품들을 건드렸다고 어울림이 걱정하며 말했다. 어울림과 내 배낭은 물론 작은 가방도 모두 확실하게 뒤져 놓았다. 물품 검색으로 한 시간 가까이 출발이 지연됐다.점심을 먹고 3시간 후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시간 조정인지 본래 운행 수칙인지 모르겠다. 운전사나 승객들도 의자가 아닌 곳에서 충분히 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느슨하게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조바심이 스며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랴.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어디에 있든 나는 있을 것이며, 그 시간은 내 것이고 , 어울림도 함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