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계를 만들고 기계는 돈과 흥정을 만들고.

by 아무개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고추장 돼지 덮밥을 먹었다. 배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하다. 오늘은 오토릭샤를 이용해 붉은 성을 가기로 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이클 릭샤보다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왈라에게 요금을 묻자 150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가 원 헌드레드라고 말을 하는 순간 나는 휙 돌아섰다. 나머지 피프띠루피는 내 뒤통수가 대신 들었다. '어디서 바가지를 꺼내고 있어' 지나가는 오토 릭샤왈라를 불러 세웠다. 그는 80루피를 달라고 했다. 이 정도 요금이면 양심적이라 생각됐다. 80루피도 비싼 요금이 분명 하지만 이정도 바가지는 쓰고 다녀도 된다. 붉은 성에 도착해 100루피 지폐를 주고 거스름 돈은 받지 않았다.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우월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붉은 성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다. 넓은 광장에 어색하게 서있는 금속탐지 문은 마치 미래에서 실수로 엉뚱한 곳에 도착한 시간 여행 게이트 같았다.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그 옆을 지키며 사람들의 신분과 명단을 확인 한 뒤 탐지문를 통과하게 했다. 안내판을 보니 월요일은 성을 개방하지 않는다. 쉬는 날을 이용해 중요한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늘의 관람 일정은 끝.


돌아가는 길에는 사이클 릭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요금을 묻자 150루피라 한다. 뭐시라고? 그러나 이번에는 바로 뒤돌아 서지 않았다. 그리고 80루피에 오토릭샤를 이용했는데 어떻게 사이클이 더 비싸냐고 항의를 했다. 그러자 릭샤왈라는 인심을 쓰듯 100루피에 가자고 하며 덧붙여 말하길 사이클 릭샤는 매우 힘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명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한 뒤 기계에 밀려나 소외된 노동과 그 가치를 살려 내기로 했다. 노동자 계급이 일당 독재는 아니어도 정치권력의 한 축이 되기를 바라며 100루피를 지불하기로 협상을 끝냈다. 그와 악수를 하자 노동이 소외되고 생산물이 자기를 대신할 때 나타나는 화폐와 자본의 마법이, 그 신비가 내게서 빠져나간것 같았다.


노동은 원시 공동체의 순수한 시절을 끝내고 노예들에게 주어진 비천한 행위로 변해 버렸다. 한참 후 짧은 시간 동안 신성의 가치를 인정 받기도 했지만, 결국 생존을 위한 보잘것 없는 인간의 행위로써 존재한다.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며 노동하는 인간의 기초적 존엄도 훼손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보잘것 없는 노동 행위가 기계를 통해 효율을 극대화 하는 순간 가치의 역전이 일어난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적 변화를 일으켜 자동화된 천한 행위의 결과는 물질의 풍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풍요를 가져 온 기계는 그 자체로서 소유 욕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망치로 돌을 깨는 노동자는 사이클 릭샤의 소유를 바라며, 사이클 릭샤왈라는 오토릭샤를 구입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오토릭샤는 사이클 보다 힘이 덜 들지만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속도가 빨라 우리에게 잉여의 시간을 생산해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계는 물질 이외의 것까지 양적 변화를 일으켜 인간의 노동에서 상실한 신성함까지 누리게 된다. 어울림과 나는 힘든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칼로리의 효율을 적당히 높인 사이클 기계에 올라탔다.


h




숙소에 돌아온 뒤 뱃속에서는 쿠데타의 징조가 있었다. 덜컥 불안이 자리에 착석을 했다. 시간이 지나 준비가 끝나자 설사는 기본 메뉴로 추천되었다. 애피타이저는 고열로, 디저트는 근육통으로 주문되었고 관절 통증은 서비스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답례품으로 두통까지 챙겼다. 추위에 떨며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다. 어울림에게는 미안했지만 에어컨을 줄여달라고 했다. 어울림은 걱정스러워하며 내 상태를 계속해서 살펴주었다. 설사, 발열, 근육통, 오한, 두통이 팩키지 기념 세트가 로켓 배송으로 배달 되었다.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까지 화장실은 내 것이 되었다. 다섯 시까지 돌마(티베탄 여자)와 국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6시. 졸음이 밀려왔다. 목적지에 다 와가면 창밖을 보던 눈꺼풀이 내려앉는 것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정신과 몸이 피로에 짓눌려 나른하게 펴지고 있었다. 옷을 더 끼워 입고 침낭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면 좋아질 것 같았다. 인도에서 한 여름에 옷을 덧입고 동계용 침낭 안에 들어가 있는 나는 무엇인가. 시간이 지나자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한이 줄어들어 상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몸을 들썩일 때마다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7시. 체크아웃.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잠이 부족했다. 갑자기 몸에 땀이 나며 열이 오르고 목이 답답했다. 쓰러질 것 같았다. 의자에 드러누웠다. 어울림은 숙소 1층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게임을 하도록 했다. 두 시간 후 어울림이 곁으로 왔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먹은 것은 고작 바나나 하나였다. 시간은 11시를 향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인터넷 카페에서 단어들을 검색했다. 발열. 설사. 근육통.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공통된 지구 언어가 있어야 한다. 어울림이 원하는 식당에 갔다. 나는 주변의 약국을 찾았다. 45루피를 주고 약을 받았다. 해열제였다.


어울림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보호는커녕 자기 몸도 간수 못하는 나를 보고 마음이 심란했는지 모른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맡겨놓은 배낭을 찾았다. 어울림이 무겁다고 한다. 망고 1kg이 추가되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델리 사라이로힐라역에 가기 위해 릭샤왈라와 흥정을 하고 있었다. "아빠 싼 걸로 해" 어울림이 비싸면 거래를 하지 말라고 한다. 바가지를 쓰느니 좀 힘들어도 걸을 수 있다면 걷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최초 150루피를 100루피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를 가다가 릭샤왈라는 헌드레드 투엔티루피를 반복했다. 120루피. 이러다가는 원피스의 루피가 뛰쳐나오겠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스탑!" 공기를 후려치는 내 목소리를 듣자 그는 릭샤 대신 자신의 주장과 요구를 멈추었다. 이곳에서 상인들의 행동 변화는 항상 흥정을 한다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먹어야 할 때, 자야 할 때, 이동할 때...




자이살메르행 열차의 플랫폼을 찾기 위해 묻고 또 물었다. 번거로운 질문과 까다로운 대답이 혼란을 일으켰다. 처음엔 4번, 다음엔 2번, 다음엔 소통 불능, 그리고 매점 주인이 자신 있게 말한 1번 플랫폼. 나는 그를 신뢰하기로 했다. 매점에서 하루 이틀도 아닌 매주, 매월, 매년을 일했다면 열차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플랫폼에 도착해서 두 명의 현지인에게 다시 물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열차는 시간을 넘기지 않고 도착했다. 우리의 열차칸 번호는 B1이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전 탑승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하나 둘 열차칸을 지나칠 때마다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그러나 B1이라 쓰여진 칸은 보이지 않았다. 열차는 아주 길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칸을 지나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일단 올라타도 되지만 열차 간 이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에어컨 칸과 일반칸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알 만한,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 들이대며 외쳤다. "비원, 비원!" 마치 가져간 비원을 내놓으라는 듯이 말이다. 그가 창덕궁의 뒤뜰 '비원'을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략 폭격기 b1을 요구한다고도 생각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는 '얘가 왜 이래?' 하는 표정을 짓더니 방금 지나친 옆칸을 가리켰다. 언제나 느끼지만 흥분하면 지는 거다. 무안해졌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박자에 심장이 동기화되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에어컨이 시원했다. 잠시 후 좀 서늘했다. 그리고 추웠다. 겉옷을 입었다. 저녁으로 카레 도시락과 망고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맞은 편의 부부와 아기도 자이살메르에 간다. 이제 자야 한다. 아침이면 도착하게 될 것이다.

잘 자. 어울림.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은 긍정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