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도착.
안녕? 자이살메르.
타이타닉. 우리가 예약한 숙소의 이름이자 낙타 사파리 행사를 주관하는 곳이다. 픽업을 하기로 했는데 상호명이나 고객의 이름을 적은 피켓은 고사하고 구겨진 이면지를 들고 맞이해 주는 사람 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두리번... 역시나 호객꾼은 넘쳐나고 있었다. 큰길로 나가서 오토릭샤를 타고 직접 찾아 가기로 했다.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오토릭샤 한 대를 세웠다. "타이타닉!" 되도록 크고 정확한 콩글리시로 말했다. 이제 올라타기 전 요금을 먼저 흥정해야 한다. 그런데 운전수는 타이타닉 픽업 차량이 와 있다며 우리를 태워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오토릭샤가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픽업 차량에는 여자 한 명이 이미 타고 있었다. 그녀를 먼저 픽업하고 오는 길인데 버스가 늦는 바람에 도착 시간도 늦어진 것이라 말했다. 아니 그랬다고 알아 들었다.
타이타닉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그곳을 운영하는 폴루라는 남자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매력을 더 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그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
그는 릭샤왈라 출신이었는데 남의 집을 빌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실질적인 소득은 낙타 사파리 비용이었다. 사업은 잘 되었고 2008년 지금의 게스트 하우스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단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농담으로 한국인들을 놀려 줄 만큼은 한국어를 알고 있다. 젊은 여행자들을 통해 유행하는 말들을 배워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똑똑하다는 이야기다. 건방지고 잘난 척도 잘한다. 솔직하고 자존감이 높다. 그가 보여주는 상당한 수준의 불쇼와 드럼 연주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는 사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것이 지금의 성공을 이루게 한 것 같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업에 대한 구상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흥분과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커다란 농장도 있으며 앞으로 가족들을 위해 보다 더 큰 저택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돈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너무도 사랑하다는 그가 싫지 않았다. 나도 돈을 누구보다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비겁...
사파리 일정은 오전 9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점심 전에 숙소로 돌아온다. 델리로 돌아오는 기차는 오후 4시경에 출발한다. 대학생 4명을 만났다. '꼬마사랑'이라는 봉사 활동 동아리 모임이라고 했다. 꼬마보다는 소녀시대를 더 사랑한다는 학생들의 농담이 좋았다. 옥상에서 잠을 자려다 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내려왔다.
다음날.
마른빨래를 정리하고 침낭과 담요를 챙겨 배낭에 넣었다. 체크아웃과 함께 아침을 먹고 9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어울림을 깨웠다. 잠에서 깬 어울림이 맥없이 흐느적거린다. 놀라 당황한 나는 상태를 물어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울림은 움직이고 숨 쉬는 게 힘들고 지친다고 말했다. 저혈압이나 체력의 고갈이 일어날 때의 증상과 비슷했다. 어울림에게 사파리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어울림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 식당으로 올라가 아침을 주문하며 사파리를 가지 못 할 수도 있다고 미리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어울림의 얼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출발하기로 했다.
8인승 승합차에 9명이 탑승했다. 대학생 4명과 다른 한국인 1명, 중국 남자 1명 그리고 나와 어울림까지 여행자 8명에 운전수 1명까지 모두 9명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체구가 큰 사람이 조수석에 앉을수록 뒷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덜 불편하기 마련이다. 나는 마른 편이었다. 일행은 어떤 절차나 상의가 없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앞자리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이가 깡패 짓을 한 것이다. 나이를 용역 깡패로 동원해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민망함에 당장 자리를 바꾸자고 하고 싶었다. 나는 앞자리가 싫다고. 앞자리에 한 번 앉고 나면 두드러기와 원형 탈모가 생긴다 말하고 싶었다. 그냥 싶기만 했다. 하지는 않았다. 편한 게 좋았다.
자동차는 유적지 두 곳을 들러 낙타들이 기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낙타 몰이꾼들과 인사를 했다. 모두 세 명이 함께 간다. '장보고'와 '망고'라 부르는 사람과 이름을 모르는 한 명. 어울림에 대해 특별한 보호를 부탁했다. 어울림이 말은 몇 번 타본 적은 있지만 낙타는 처음이며, 낙타가 일어설 때 가끔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울림은 망고와 함께 타고 가기로 했다. 긴장하던 어울림은 낙타들의 이동이 시작되자 재미있어했다. 낙타의 걸음마다 들썩이던 엉덩이가 마찰을 일으켜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물집이 생길 것이다. 나는 앞에서 가고 있는 망고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리고 낙타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그를 따라서 리듬을 탔다. 낙타와 가까워진 느낌이었지만 엉덩이가 아픈 것은 그대로였다. 요령도 중요하지만 오랜 단련을 통해 엉덩이 살이 단단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그늘에 담요 세장을 깔고 쉬었다. 모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입안에서 모래가 씹히기 시작했다. 세 명의 셰프?는 마른 가지를 모아 불을 붙이고 장보고는 식판을 닦았다. 식판에 아주 약간의 물을 붓고 모래를 한 줌 집어 쓱쓱 문지른다. 그리고 털어 낸 다음 다시 마른 모래로 깨끗이 닦아내자 반짝 빛이 난다. 환경이 생활의 방식을 결정짓는 장면이었다. 점심 준비가 늦어지자 사람들은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담요는 조금의 푹신함과 경계를 나타 낼 뿐 모래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카레와 짜파티는 먹을 만했지만 어금니는 모래를 으깨기에 바빠졌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3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편히 쉬며 그동안 잠이라도 자라고 한다. 모래 바람에 숨을 쉬기만 해도 입안은 어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울림은 벌레와 곤충들에 관심을 보이며 주변에서 한참을 놀다가 피곤했는지 내 무릎을 베고 눕는다. 그리고 잠에 빠져 들었다.
마른 풀들을 얽어 만든 움막에 도착했다. 밖에서 별을 보며 자려고 했지만 바람이 많아 단념했다. 뜨겁고 달콤한 짜이와 함께 따가운 모래 바람이 미리 예약한 여행의 옵션 처럼 같이 했다. 바람이 없으면 짜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듯이... 사진을 찍으려는데 메모리 카드를 포맷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포맷을 하면 3일간 촬영한 사진을 지워야 한다.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음. 말도 안 돼. 사막에서 미나리가 자라는 소리였다. 용량은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동영상 하나를 지웠다. 그 시간 어울림은 모래 언덕을 누비며 시간을 보내고 돌아 와서는 내게 주변의 모든 언덕을 올랐다고 했다. 정복자의 표정이었다. 중국인 여행자는 이곳의 모든 것을 사진에 쓸어 담으려 했다. 한참 유행하고 있는 점프샷을 요구해 모두가 펄쩍펄쩍 뛰기를 반복했다. 숨이 차올랐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간이침대를 밖으로 들어냈다. 바람을 피해 맥주 파티를 움막 안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모두가 둘러앉았다. 은박지에 둘둘 감긴 통닭과 감자가 나오자 각자 킹피셔 맥주 한 병씩을 들고 건배를 했다. 모두가 남자다. 나는 그 젊은 청춘들에게 계속해서 위로와 애도를 표했다. 모래 바람이 괴로운 것은 여자가 한 명도 없어서 라고. 모두는 격한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당신들은 서로가 정말 재수가 없는 것이다. 이게 뭐냐 남자들끼리 1일 병영 체험이냐. 이 여행이 추억이 되겠냐. 기억이나 나겠냐. 난다면 정말 재수 없는 기억으로 날 것이다. 음과 양이 함께 있을 때 세상은 변화하고 생기가 도는 법이다. 여기는 무덤이다. 위로인지 악담인지 비아냥 인지 모를 놀림을 실컷 해 주었다. 어쨌든 모두가 웃었다.
오전에 미리 어울림의 핀잔을 무릅쓰고 맥주 두 병을 주문했었다. 그런데 뱃속이 불편해 마시지 못하고 '장보고'에게 남은 맥주 한 병을 주었다. 어울림을 잘 보살펴 주었다는 마음을 함께 전했다. 잠시 후 '망고'가 움막 옆에 서서 몇 마디 하고는 눈치를 보며 떠나지 않는다. 그의 입술은 맥주를 원하고 있었다. 어울림을 앞에 태우고 온 것은 망고였으니 당연히 그에게도 맥주 한 병을 주었다. 감동했다는 표정을 보낸다.
밤이 되면서 바람은 더욱 거칠어졌다. 어둠과 고요마저 모래틈으로 스며들고, 침묵 속에 낮게 쏟아지는 별들과 은하수를 보며, 사하라가 아닌 이곳에서도 어린 왕자의 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이미 거센 모래 바람을 피해 모래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바람은 더 휘몰아쳤고 어둠은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별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게 되었다. 휘날리는 모래바람만 피할 수 있다면 그곳이 낙원이었다.한 편으로는 이 짓을 돈을 들여 경험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은 돈을 들이지 않으면 이 짓을 돈을 들여 경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생각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경험을 해야 그 경험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지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경험론에 무게를 둔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가슴 뛰는 일이니까.
들개 두 마리의 생존 경쟁에 나는 먹고 남은 닭고기의 분배를 통해 직접 개입하며 놀았다. 개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고 우리는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우리의 처절한 생존 투쟁은 누구의 놀이가 될까. 움막의 자리가 비좁아 결국 두 명은 밖에서 잠을 잤다. 한 밤이 지났는데도 바람만이 모래와 함께 깨어 있었다.
모두가 기록하기 위해 분주할 때, 너는 마른바람을 맞으며 어린 짐승이 되었지.
너는 기록하지 않았고,
그곳의 모든 것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