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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Feb 21. 2024

아! 봉사료.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자리를 찾아 앉는다. 두 연이 앉은 앞자리에 티베트 승려 두 명이 앉아 있다. 내 옆에는 조용한 남자가 있고, 앞자리에는 사랑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두 남녀가 있다. 연인에게는 더위와 끈적임이 없다. 그들은 버스 안이 쾌적하고 보송할 뿐이다. 많은 면적의 신체가, 오래 붙어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서 레몬향이 풍긴다. 남녀는 끊임없이 웃고 만지고 비비고 사랑한다.


버스 안의 기온은 껍질이 타지 않을 만큼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육즙도 조금씩 천천히 빠지고 있다. 인삼(人蔘)은 사람을 닮았다. 사람들이 인삼으로 보였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을 말린다는 홍삼의 과정에 사람들이 있다. 마날리까지 스무 번은 찌고도 남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실내등이 켜진다. 힘없이 발그레한 불빛이 밤을 예고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마신 숨을 뱉기도 전에 좌석 밑에서 모기 수십 마리가 통로 한 복판으로 날아오르더니 어깨 높이쯤에서 그물을 펼치듯 빠르고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일제히' 날아오른 것이다. 그들은 분명 어떤 신호에 따라 한 순간 모든 개체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비상한 것이다. 무작위로 나타난 개체의 조잡한 개별 비행이 '일제히' 공간을 채울 때, 꽃이 피는 순간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에어쇼가 펼쳐진다. 몸이 굳고 숨이 멈춰졌다. 잠을 자기는 틀렸다. 밤새 피를 빨리고 벅벅 긁어대야 한다. 최소 열다섯 시간을 모기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두 연들도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물티슈를 꺼내 노출된 어깨와 팔을 닦고 버물리를 바른다. 


나는 모기가 되었다. 축제다. 사냥감은 겁에 질려 있다. 화려한 쇼와 함께 전야제를 함께하자. 빠르게, 갑자기 느리게, 전속력 접근 후 치솟아 오르기, 귓가를 맴돌며 날카롭게 소리 내기, 눈동자에 다가가기, 피부에 내려앉아 간지럽히고 날아오르기, 발목을 짧게 찌르고 빠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축제는 절정에 이르렀다. 유난히 마늘향을 좋아하는 내 식성에 맞는 맑고 깔끔한 피맛이 땀내를 통해 진동한다. 이제 저 신선한 육즙을 빨아 보자! 어디서 눈이 시큰한 냉기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이 따갑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사냥감들이 부패했다. 역겨워 가까이 갈 수 없다. 눈알이 빠지고 있다. 출구를 찾아 맴돌았다. 열린 창 밖으로 간신히 도망쳤다. 


큰 연이 준 물티슈로 어깨와 팔을 닦고 바른 버물리는 기대 이상 큰 효과가 있었다.


세미디럭스버스는 저녁을 먹기 위해 휴게소에 정차를 했다. 서빙을 하는 소년은 친절했다. 밝고 명랑했다. 소년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출입문 대신 한쪽 벽이 없는 식당의 홀은 덥고 부산했다. 내가 앉은자리와 달리 다른 식탁의 위쪽에서는 팬이 돌아가고 있었다. 더운 바람이지만 그 속에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섰다. 친절한 소년이 난감해했다. 다른 업체의 구역이거나 서빙을 맡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다른 소년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자리를 옮겨준다. 


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오지랖을 주방에 가서도 멈추지 않고 동영상을 촬영하며 한바탕 진상을 부리고 나서 식사를 했다. 손으로 먹는 나를 두 연과 친절한 소년과 몇 명의 현지인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으쓱해하며 오버하기 시작했다. 결국 손가락 두 개도 다 씹어 먹었다. 계산서를 받았다. 액수가 좀 많다. 작은 연이 전화기를 꺼내 계산을 했다. 20루피가 더 청구 됐다. 실수겠지... 다시 돌려보냈다.


정정한 계산서를 다시 갖고 와 내게 주었다. 진심 어린 표정과 과한 제스처와 함께.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그가 말했다. 서비스. 서비스 어쩌구... 서비스. 서비스 저쩌구... 음 대충, 아니 명확히 의미를 파악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 좋은 게 무시하는 거다. 둘 다 했다. 그는 자리를 안내했고(빈자리가 많아 어디든 앉아도 좋았다)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봉사료를 요구했다.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50루피. 흠. 현지인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별도의 봉사료. 부당하다.  나는 생각했다. 고로 열받았다.


타지마할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는 현지인과 외국인의 요금이 다르다. 한국의 제주도 역시의 제주 도민들은 무료나 절반 이하의 요금으로 각종 시설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이 소년의 안내 행위도 내국인에게는 무료지만 외국인에게는 유료인 요금 체계에 적용된다고 볼 것인가. 식당 자체에서 정한 규칙이 있다면 수긍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없다. 그렇다면 그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으로 이어 온 홀 서빙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전통이나 관례인가. 모른다. 그도 아니면 소년이 서빙 생애동안 터득한 경험으로 형성된 직업정신인가? 아니다. 그정도로 당당하지 못하다. 그럼 구걸인가. 아니다 가깝지만 경계가 확실하다. 뭘까.  으음. 입술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호구...


"주지 마요!" 옆에서 작은 연이 울컥한다. 그녀의 한마디가 코 앞에서 멈춰있다. 잠시 후... 나는 그에게 20루피를 주었다. 상황 끝. 나 혼자 속으로 흥정을 끝냈고, 20루피를 줬다. 돈을 주고 나서 생각했다. 과연 돈을 준 나의 선택과 결정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주지 않았다면 서로에게 더 좋은 미래가 펼쳐졌을까. 돈을 주기를 꺼려했던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었을까? 교육적으로도 정당한 대가가 아니면 주지 말아야 한다. 돈을 주고 싶던 마음은 그저 감정일 뿐일까? 그럼 이성과 감정이 충돌한 것인가. 이성적 판단은 논리적 과정이 있다.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이성이 관여한 흔적이나 기억이 없다. 감정과 감정의 대립만 있었다. 그리고 두 감정의 사이 어디쯤에서 액수를 적당히 타협하는 혼란과 갈등의 과정이 있었다. 서비스.. 서비스.. 버스를 올라타는데 맴도는 단어. 분명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 왜 유흥업소에서 나온 기분일까... 서비스 때문인가?



작은 연의 앞자리 등받이가 뒤로 젖혀있어 무릎이 닿았다. 작은 연이 통증을 호소한다. 나는 종교 수행자에 대한 각별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 작은 연 앞자리의 티베트 승려는 그냥 잠을 자는 것이 아니리라. 그는 깊은 선정에 빠져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바다에서 평온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스님을 깨울 수는 없다. 그것은 가장 큰 업보를 쌓는 일이다. 하지만 '국제 오지랖협회'사무국장인 나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한다. 당근빠따 참견 들어간다. 아직 선정에 들지 않은 옆자리의 일행 스님에게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마침내 옆의 스님을 깨운다. 그리고 말을 한다. 몸을 세운 스님은 무표정 속에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선정이 아닌 선잠에서 깨어났나 보다. 미안함에 공손히 합장을 하며 웃어 보였다. 수행자라고 모두 부드럽고 인자한 것은 아니다. 짜증 난 표정이 역력했다. 마지못해 의자를 앞으로 세웠다. 웃지 않고 웃음을 '보여 준' 나는 합장한 손이 민망했다. '뭐야 씨...' 민증 까라고 할 수도 없고... 뭐가 저따위야. 내가 된장 먹고 마늘 먹어서 어려 보이니까 만만해 보이나? 확! 이씨~ 그냥 성질 같아선... 나는 삼류 양아치가 되었다.



의자는 고정이 되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원상복구. 불쾌한 표정을 또 마주하기는 싫다. 작은 연은 그 불편함을 잘도 버틴다. 밤을 지나 새벽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피폐한 60대의 모습이었다. 짜이를 마신다. 델리에서 만났던 학생을 다시 만났다. 마침 마날리-레 구간 자전거 트래킹을 계획한 사람을 알게 됐다며 소개했다. 오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내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주었다. 


9시 30분 뉴마날리 버스정류장 도착. 해발 2000m.

한때는 마리화나와 헤시시의 성지였고 히피들의 쉼터였던 마날리.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히피들이 바글거릴까? 카페들은 심장을 울리는 몽환적인 음악을 계속해서 최고 볼륨으로 들려줄까. 짜증 나는 이스라엘 전역병들은 지금도 낡은 야마하 바이크를 시끄럽게 타고 다닐까. 


이런저런 기대와 궁금함이 비에 젖은 땅과 함께 머릿속에서 질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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