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현실.
군더더기.
앞서 한 가지 말하자면, 안 해도 그만이지만, 성격상 말하자면, 네팔 대지진은 2015년 4월과 5월에 발생했다. 많은 유적들이 붕괴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여행은 그 이전의 일이었다. 미안한 일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네팔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가려고 했고 그렇게 했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은 것들이 없지만 내게 네팔과 인도 등은 마음의 빚이 많은 곳이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누구나 추억의 한켠이 무너져 내린 모습을 본다는 것은 기억의 어느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는 상실을 느끼는 법이다. 다시 갈 수 있게 된다면, 반드시 가게 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다. 부디 안녕하길.
박타푸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가는 길에 청년 한 명을 만났다. 이름은 비간 다갈이라고 한다. 매우 밝고 다정하다. 영어로 말하는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다. 말하는 사람의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듣는 내가 문제다. 영어를 모르니까. 눈치껏 분위기를 따라잡았다. 버스 타는 곳을 가르쳐 준다는 것 같았다. 따라나섰다. 더르바르 광장의 깔리 신상에 공양을 올린다. 아직은 의심이 남아있는 상태로 그를 지켜본다.
어울림에게 아주 친근하게 대한다. 부모님의 늦둥이를 맏형이 돌보듯 한다. 공양을 올린 후 코코넛도 몇 조각 잘라준다. 어울림은 아직은 어색한 모습이다. 그래도 얼굴은 미소로 번져있다. 어울림 손을 잡고 광장의 비둘기 무리 속으로 달려간다. 수많은 비둘기들이 홍해의 기적을 재현하며 양쪽으로 높은 파도를 일으키고 날아오른다. 어울림이 좋아한다.
왜 저렇게 놀고 있는 거지. 의심은 질량을 늘린다. 유명한 유적지에는 여행자들에게 접근해 자연스럽게 유물에 관한 역사적 설명을 해주며 마지막에 가이드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안녕? 어디서 왔섭? 오 코리아. 그래 반갑다 호구야. 여기 이것은 왕이 머물던 침실이야. 저쪽 보이지. 거기가 후궁들이 머물던 곳이고. 그곳이 가장 유명한데 그쪽으로 가볼래? 하며 발걸음을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은 느끼할 정도로 친절하고 매끄럽다. 그래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괜찮았다. 어쩔 수 없었다. 영어를 모르니까.
다갈은 버스 타는 곳을 말해주고 어울림에게 볼펜 한 자루를 선물로 준다. 나는 의심이 취미일지도 모른다. 다갈에게 미안했다. 나도 갖고 있던 연필을 주었다. 고마운 사람. 다갈.
박타푸르.
누구나 여행에서 가장 강렬함을 느끼는 몇 장면이 있다. 나에게 박타푸르가 그런 곳 중에 하나다. 이십오륙 년 전인가.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한 곳이 바로 박타푸르였다. 버스에서 내려 얼마를 걷다가 중세의 목조 건물이 양쪽으로 늘어지고 그 중앙을 짙붉은 벽돌이 갈라놓은 긴 골목의 입구에서 충격을 받았던 그 장면을 나는 또렸이 기억한다. 그 비현실.
최소 삼백 년 이상이 된 건축물들이 보존이 아닌 사람들의 거주지와 상업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접근금지의 띠를 두르고 눈으로만 보세요 하지도 않는다. 주거 시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보존 가치가 넘쳐나는 건물들이 카페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박타푸르에 왔을 때는 비현실에 도취되어 종일 배회를 했었다. 중심부에서 벗어나 주변의 농가에서 여자들과 각각의 언어로 잡담도 나누었고 벼베기를 돕고 현지 발효주도 얻어 마셨었다. 그냥 그랬다. 다시 왔을 때는 문화유산 보존의 관점을 갖고 네팔 정부와 유네스코를 비난했다. 일 년 만에 부쩍 생각이 자라난 것처럼 스스로 대견해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생각은 변한다.
지금은 이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옛 왕가의 명문 귀족을 상상하며 즐긴다. 난간과 기둥에 손가락 끝으로 유전자의 일부를 남겨 보존 가치를 높이는 대신 건물의 수명 단축에도 일조를 한다. 그럼 된 거다. 몇 천년을 보존한들 뭣 할까. 그 누구도 삐그덕 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지도, 차 한잔을 마시며 삶의 지위를 드높이는 잠깐 동안의 시간도 허락되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가 감탄해하는 것들의 주위에 쌓여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일상을 균열시키지 않고 머물다 가면 된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 있어도 나는 길바닥의 벽돌 한 장 바꾸지 못한다.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다. 그냥 즐겨라. 결국에는 이 생각도 변할 테니.
어울림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다. 우와~. 이런 반응을 기대했었다. 역시 어울림이다. 그래서 좋다. 기대를 빗나가게 하는 것. 그래야 보편성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지. 어울림은 옛 도시라고 해서 건물이 무너지고 기둥과 벽돌들이 흩어져 흔적만 남은 터를 기대했다고 한다.
여기는 너무 잘? 보존이 되어있어서 별로인가 보다. 그렇지. 어울림은 번잡한 것은 질색이니까. 사람이 없는 폐허의 원형이 간직된 곳이었다면 좋았겠다. 나중에 함께 가자.
오후에는 원숭이 사원으로 불리는 스얌브나트 사원에 가기로 했다. 걸어서 가기로 했다. 길을 물어 물어 어쨌든 입구에 도착했다. 사원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계단이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높이 이어져 있다. 이 정도 노력으로 극락왕생을 보장받는다면 십자가라도 지고 올라갈 수 있다. 절반 이상을 올랐을 때 개들이 몇 마리 보인다. 어울림은 더는 갈 수 없다며 걸음을 멈춘다. 괜찮다고 말해도 꼼짝을 않는다. 나는 지금의 어울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 신경이 보푸라기처럼 돋는다. 재빨리 보푸라기 제거.
사원 안에 있는 원숭이들을 보자 어울림의 눈이 빛나고 생기가 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역시 어울림의 취향은 한결같다. 다니는 곳마다 흥미 없고 힘들어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었다. 어울림에게 강박적으로 반복해서 계속 묻는다. "어울림 재밌어?" 이 말은 정말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아이들에게 반복되면 아이들은 부모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려고 자신의 생각을 검열하기 시작한다. '엄마 너무 재미있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의 만족스럽고 행복해하는 얼굴을 아이는 기억한다. 아이는 재미없다고 말하면 엄마가 실망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재미없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가치 없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이 대체로 좋은 것은 맞다.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니까. 당연한 것이다. 혹시 '나는 도박이 재미있는데 그것도 좋은 것이냐'라고 공격하는 나 같은 분들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그래도 재미를 위해서 그런 말로 공격을 한다면 나 또한 즐겁게 받아들인다. 어디 그것뿐인가. 마약에 취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여기까지.
재미있는 영화가 모두 좋은 것도 아니고 지루한 영화가 가치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차라리 재미없는 것도 자주 경험하게 하면 좋다고 본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왜 재미가 없었는지 이유나 원인을 말하는 걸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 어울림이 어렸을 때 나는 그렇게 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 묻지 않아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먼저 이야기를 한다. 부모가 진지하게 들어주기만 한다면.
오해하지 않았으며 하는데 앞의 주장은 근본 없는 나의 뇌피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냥 버리시라. 숙소로 돌아오기 전 카트만두 시내에 무지개가 떴다.
어울림 재미...아니 아름답지?
또.
아~ 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