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도 제자리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by 다락방나무


영국 작가 위다가 쓴 <플랜더스의 개>를 처음 읽은 건 내가 초등 4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내가 그 시기를 기억하는 건 그 책을 읽으며 겪었던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혼자가 된 나는 오히려 신이 났다. 조용한 집을 독차지하는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누구의 방해 없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마당이 훤히 보이는 대청마루 한가운데 두꺼운 요를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펴서 푹신하고 시원한 자리를 만든 뒤, 선풍기를 켰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손에 집어 든 책이 하필이면 <플랜더스의 개>였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책을 읽어나가던 내가 어느덧 책을 덮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엎드려 있다가 다시 펴 들고 대성통곡하기를 몇 번. 급기야 마지막 대목에서 추운 겨울날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성당 그림(나중에 알고 보니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예수’라는 그림이었다.) 아래 파트라슈를 껴안고 얼어 죽은 네로를 떠올리며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한참 뒤에 집에 돌아온 가족들의 비명 소리를 희미하게 들으며 병원으로 실려 갔고 깨어난 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내게 엄마가 짜증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큰 병에 걸린 줄 알고 하늘이 무너졌는데 단지, 책 내용이 슬퍼 울다가 기진하여 잠깐 정신줄을 놓은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으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나.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며칠간 열이 나고 아팠으나 그저 유난 떠는 아이가 되어 가족들의 진심 어린 위로도 받지 못했다. <플랜더스의 개>는 훌륭한 명작동화였지만 결국 내겐 깊은 상처가 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책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고 우울해졌다. 그렇지만 그 여름날 겪었던 작은 소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이 되어 돌아왔다. 책 읽다 슬퍼 기절한 어린이. 머리를 산발한 채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병원에 실려가는 어린이. 얘가 왜 이러냐고 짜증 내는 엄마 옆에서 왜 네로와 파트라슈가 죽어야 했냐고 빽빽 우는 어린이. 이 모든 걸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날 뿐이다.


생각해 보면 네로와 파트라슈를 더 참혹한 죽음으로 각인시킨 건 그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던 어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까짓 그림이 뭐길래? 그까짓 게 뭐라고…. 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까짓 그림 하나’로 오랫동안 고전 동화의 자리를 지키는 <플랜더스의 개>가 있다면 내 개인사에는 ‘그까짓 사진’ 하나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시간이라는 신묘한 약으로 치유되어 고이 자리 잡은 추억의 그림을 보면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그 사진의 정체는 사실 아직도 마음의 고통을 준다. 원망도 남아있다. 당연히 웃으며 떠올릴 수 없다. 극복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우연히 사진과 마주칠 때마다 줄줄이 딸려 나오는 감정들을 보면 아직도 씁쓸하다.



그랬던 나를 찾아와 준 한 사람. 그가 그린 그림 한 점.


고흐와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또 고흐인가. 맞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고흐다. 그의 그림과 삶의 이야기는 산더미 같이 쌓여있어 그 위에 이제 무엇 하나 더 이상 얹을 내야 얹을 수도 없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고흐라니.


다 알려진 얘기지만 고흐에겐 테오라는 동생이 있었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혹은 테오가 고흐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눈물겨운 사랑과 우정 어린 대화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편지 형식을 통해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했다는 점에서 마치 화가의 작업 일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의 편지에서는 그 과정을 어찌나 꼼꼼하게 묘사하고 자신의 변화하는 감정까지 곁들였는지 글을 읽다 보면 불현듯 나도 당장 밖으로 나가 그가 보았던 자연과 계절, 날씨와 빛의 아름다운 순간을 느껴보고 여러 색채의 조화를 물감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고 난 뒤, 고흐는 테오에게 여태까지와는 다른 자신감과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있는지 편지에 적어 보낸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황금색과 잘 어울릴 것 같다. 또는 짙게 그늘진 잘 익은 곡물 색의 벽지를 바른 벽 위에 걸어놓아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고 그림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어둡거나 흐린 배경에서는 이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의 내용이 아주 어두운 회색조의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삶 속에서도, 램프가 하얀 벽 위로 뿜어내는 열기와 불빛은 관찰자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전체 장면을 황금색 불빛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림 바깥에 있지만,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그림 전체가 뒤쪽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그림의 주변에는 짙은 황금색이나 구릿빛이 칠해져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마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위즈덤하우스)




흔히 창작자들은 말한다. 내 손을 떠난 작품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면모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짐작된다. 고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감자 먹는 사람들>은 예외였다. 그런 심정이 담긴 편지 구절을 읽으며 내 기억은 바로 문제의 사진 한 장에 머물렀다.


20대 후반,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과 결혼이란 걸 했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었다. 잃은 것 가운데 가슴 아프도록 아쉬운 게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다가 문득,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음악과 노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용돈을 쪼개 정기적으로 팝송 LP판을 사 모으고 대중적인 클래식 소품을 듣는 수준이었지만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한 정경화 콘서트 티켓이 30만 원 정도라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었지. 노래는 어땠나. 나 같은 음치도 콧노래라는 기막힌 즐거움이 있다는 걸 일찍부터 알아냈다. 가사를 정확히 외울 필요도 없고 어려운 리듬을 따라 하지 않으면서 내 멋대로 흥얼거리는 게 콧노래의 미덕 아닌가. 특별한 건 없지만 이처럼 항상 내 곁엔 음악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어느새 음악은 멈췄고 내 입에서는 콧노래조차 나오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갖고 만삭이었을 때 어쩌다 낯선 집 거실에 홀로 남겨졌는데 그때 들었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1번 G장조 퓨렐류드와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를 마음에 품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연주자와 음악 속에 온전히 파묻힐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을 소망했다. 그러다 국내에서 바흐와 파블로카잘스의 음악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게 되자 교보문고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바흐 무반주 전곡을 두 개의 시디로 제작한 뒤, 구매자 선착순으로 연주자의 사진 포스터를 증정하는 행사였다. 포스터 사진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스페인의 오래된 성당 안은 어두웠고, 지붕 아래 작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 아래 앉아 첼로를 켜는 파블로카잘스의 뒷모습이었다. 연주를 하면서도 파이프 담배를 즐겨 폈다는 그의 입에 파이프가 물려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뿌연 안개 같은 연기가 악기 위로 흩어져 올라가는 흑백 사진이었다. 시디 두 장도 갖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그 사진을 갖고 싶었다. 선착순이라는 말에 너무 마음이 급해져 앞뒤 재지 않고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시디와 포스터를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은 꿈결 같았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터졌다. 가족들과 선약도 깨고 교보문고로 달려가야 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집에 돌아온 나를 그는 차갑게 맞이했다. 아무렴 어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붙일 공간을 찾는 나를 따라온 그에게 포스터사진을 펼쳐 보여주었다. 굳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이 남자 사진을 꼭 집에 붙여야겠어?”


내 심장도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지만 아랑곳 않고 의자 위에 올라가 어느 벽면엔가 사진을 대보는 순간, 그가 또 말했다.


“그 사진을 거기에 거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내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제법 큰 사이즈였던 사진을 움켜쥐고 마구 구겼다가 여기저기 좍좍 찢어 그가 서 있던 바닥 쪽으로 집어던졌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린지 비명인지를 질렀는지 아이들이 놀라 문밖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그까짓 사진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찢어진 사진 조각을 발로 밞고 서서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그를 노려보며 가능하다면 내 인생도 이 사진처럼 찢어발기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고흐가 액자 색깔부터 그림을 거는 장소 등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편지를 읽다가 나는 그만 오래전 ‘그까짓 사진’ 사건을 떠올리고 말았다. 아니, 그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를 떠올렸다. 그 작가도 사진을 찍고 나서 고흐처럼 이런 바람을 갖고 있었다면? 사진이 들어갈 액자의 색깔이나 재질, 자신이 공들여 찍었던 부분이 돋보이기 위한 위치, 자신이 보았거나 연출한 포인트가 감상자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열망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둘둘 말았던 사진을 펼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으려 했던 그 벽면을 그가 보았다면 아마도 거기에 그 사진을 꼭 걸어야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의 어두운 분위기, 오래된 벽돌에 드리운 그림자의 굴곡들, 가느다랗고 찬란하게 쏟아지는 빛줄기, 바흐의 묵직한 첼로 현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그 사진이 걸려야 할 곳은 그곳이 제자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주 오랜만에, 전남편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내뱉었던 말들이 단지 나를 공격하거나 빈정댄 것이 아니라 나름 사진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파블로카잘스의 사진이 걸려야 할 제자리에 대한 의견을 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이 난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의 여지를 갖는 나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그에 대한 관대함이다.


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적어 테오에게 보낸 편지 한 장은 이렇게 또 누군가의 생채기 난 기억을 다독이는구나.


깜깜한 길에서 같은 곳을 돌며 서성이기보다, 스스로 켠 작은 불빛을 따라 어두운 그곳에서 걸어 나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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