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 - 걷는 사람
아무리 사전 공부를 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을 한 보따리 싸서 들고 가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잔뜩 주눅이 들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드는 게 추상화와 조각이다. 특히 유명한 대가의 작품 앞에서 그저 망연자실 서 있다 보면 누구나 찾은 아름다움이나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나만 못 느끼고 나만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약이 오를 때도 있다. 도무지 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모호함이 불편하고 힘든 게 추상화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감상법이라 하니 어떨 때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감상자에 따라 보이는 게 다 맞다는 말이 아직도 나는 안심이 되거나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정 관리(되도록 진지한)도 좀 해야 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의 갈피를 단속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추상만큼은 원화 감상이나 실물 조각품을 보기보다 책으로 풀어놓은 작가론과 전문가의 해설을 더 좋아한다. 심지어 미술사의 흐름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점점 예술이 추상화되어 갈 때 도대체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이 왜 미술관 하얀 벽에 걸리거나 공간 속에 설치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아예 추상예술과는 손절을 해야 맞을 법하다. 그런데 이쯤에서, 잔뜩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엄살을 떠는 이유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관심과 애정이다. 나아가 추상이야말로 예술가들이 궁극으로 닿아야 할 본질의 영역이 아닐까... 등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을 보았다. 실물 작품을 감상한 것은 아니기에 정확한 크기나 질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미술사 책 한 페이지 전면에 인쇄된 사진 도판을 보았을 뿐이다. 길쭉하고 말라비틀어진 형상을 하고도 걸어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청동 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점점 강렬해져서 그 페이지를 한참이나 붙잡고 있었다. 사실 추상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감상자가 뭔가를 찾아내고 알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그렇게 직관적인 고정관념을 주는 순간 작품의 실패를 예감한다고 하니, 나 역시 졸지에 실패한 감상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이 청동 조각상의 사진이 인쇄된 페이지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랫동안 이 남자를 찾아다녔을 또 한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맙소사, 그때 사라졌던 그 남자가 여기 와있다고, 이렇게 살아서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일본에서 꽤나 인지도가 높은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20대 후반에 전업 소설가가 된 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어 영상화되었다. 나는 초기 작품이라 할 만한 <환상의 빛>이나 <진흙탕 강>, <반딧불의 강>을 시작으로 후기 소설들까지 두루 찾아 읽는 독자가 되었고, 부드러운 문체에 배어나는 짙은 서정성, 인간애, 삶의 본질을 바라보는 애잔한 시선을 특히 좋아한다. 그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백 편이 넘는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썼던 에세이 집이 국내에 출간된 것이 <생의 실루엣>이다.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소박하게 모아 펴낸 에세이인데 나는 또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읽고, 어느 날 문득, 아무 데나 펴서 한 편씩 읽고 덮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동네, 이웃 사람이나 가족들에 얽힌 추억과 사연, 여행기들을 짧게 적어놓았다. 뭐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데도 여운과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느다란 선을 찾아 매만지면 잔잔한 슬픔이 차오른다. 책을 펼칠 때마다 내가 꼭 반복해서 읽는 부분이 있는데 글 속에 등장하는 한 남자 때문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15년 전 보았던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기는커녕 더욱 또렷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실크로드 6700킬로미터의 여행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적었다. (중략).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의 쿠얼러에서 쿠처를 향하는 텐산남로에는 딱 한 줄기 아스팔트길이 광대한 고비탄 속으로 뻗어있다. 길은 그것밖에 없다. (중략) 낮 동안의 기온은 43도에서 45도, 습도는 10퍼센트도 안 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지랑이로 흔들려 곧게 뻗은 길이 크게 일그러져 보인다. 동서남북, 끝없이 펼쳐진 땅에 아무것도 없다. 산도 없고 구름도 없고 바위도 없고 나무 한 그루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신기루와 더스트 데블이라 불리는 모래 회오리의 무리뿐이다. 내가 소형 버스 안에서 모래 회오리를 보고 있을 때 소매가 긴 푸른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은 청년이 아스팔트 길에서 고비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청년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중략) 청년은 강한 바람을 타고 박히듯 날아드는 모래알로부터 얼굴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도 주저 없는 발걸음으로 고비탄 한가운데로 계속 걸어갔고 이윽고 검은 점이 되어 신기루 속으로 사라졌다. 신기루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고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 고비탄을 곧장 가면 150킬로미터쯤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이어진다. (중략)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더욱 아무것도 없다. ‘하늘에 나는 새 없고 땅에 달리는 짐승 없구나.’다.
그렇다면 저 청년은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간 것인가. 세상을 버리고 죽으러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은 모래알을 피해 숙이고 있었지만 발걸음에는 의기양양한 구석이 있었다. (중략)
그를 본 뒤로 15년 정도가 지났지만 이글거리는 열기와 거센 바람 개의치 않고 이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작은 모래 회오리들 사이를 계속 걸어가 사라진 그 청년에게 빙의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봄날의 책>
나 역시 사라진 그 남자의 행적이 궁금해서 제멋대로의 상상과 추측을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그랬던 내가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라는 조각을 보는 순간은, 사막으로 걸어가 한 점이 되어버린 그 남자의 행방이 밝혀지는 순간이기도 했고, 신비로운 경험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고, 가까이는 오랫동안 적조했던 사람의 근황이 전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15년 전에 보았던 한 인물을 소설 속 캐릭터로 형상화시키려 애써봤지만 어디에도 걸맞지 않은 인간형이었던 그가 드디어 미술관에 나타난 것이다. 긴소매의 푸른 셔츠와 검정 바지도 벗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새 그의 몸은 살아 숨 쉴 수 있는 최소의 것들만 존재하는 몸,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깡마르고 울퉁불퉁한 질감의 몸이 되었다. 미야모토 테루가 사막으로 걸어가던 그를 보았을 때 모래바람을 피해 약간 숙였던 고개는 추켜올려졌고 의기양양한 발걸음만이 여전했다, 보폭은 더 커졌고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모습도 여전하다.
할 수만 있다면 미야모토 테루씨를 미술관으로 초대하고 싶다. 15년간 잊지 못하고 사라진 한 사람의 캐릭터를 붙잡고만 있던 테루씨와 그 청년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어두운 조명 아래 여전히 걷고 있는 그를 보며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는 미야모토 테루의 모습이 떠오른다. 찰칵, 그 풍경은 다시 하나의 사진으로 남겨진다.
자코메티가 ‘걷는 사람’ 청동 조각을 연작으로 내놓았을 때 다양한 철학,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영감을 얻었다.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한 존재의 불안정성, 내면적 고독을 조각으로 집약해 놓았다는 평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다. ‘걷는 사람’은 흔히 미리 구상된 형체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사유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깎고, 줄이고, 가늘게 다듬어 결국은 소멸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니, 앞서 내가 느꼈던 뭔가 알 것 같은 내 느낌은 공감과 감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걷는 사람’을 보는 순간, 이글이글 불타는 광활한 사막 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진 그 남자의 실루엣이 떠오른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미야모토 테루의 만남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네이버 길 찾기에 들어가 희미해진 우리 집 옛 주소를 애써 떠올려가며 입력해 본다.
16,402걸음/2시간 54분/10킬로미터.
나는 당시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를 넘나들며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학교를 다녔던 고등학교 1학년 통학생이었다. 어느 날인가, 정류장에 한참을 서 있어도 그날따라 45번 버스(이걸 기억하다니!)는 좀체 오질 않았다. 한두 정류장만이라도 앞서 걸어가 운 좋게 버스를 만나면 타자는 심산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45번 버스가 지나가 버리고 나는 다시 다음 정류장으로, 또 다음 정류장으로, 버스 길을 따라 계속 걷기 시작했다 중랑천 다리를 건너고, 묵동, 태릉, 담터... 서울의 경계를 넘어 경기도로 넘어가자 보도블록이 깔리지 않은 길이 나타나고 그사이 45번 버스가 몇 대째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쯤에선가 조그만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LP판 하나를 사 들고 나왔는데 그게 ‘moon river’가 수록된 앨범이었다. 그걸 옆구리에 끼고 다시 전진. 어느 순간부터, 이쯤에선 버스를 타고 싶다는 내 의지를 무시한 채 내 다리는 그야말로 여유롭고 규칙적인 리듬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 우리 집이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어쩐 일인지 마음이 요동치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낯설어 보이는 익숙한 것들, 이제 걸음을 멈춰야 한다는 조바심, 정류장을 지나치듯 내 집도 그냥 지나쳐 가버리고 싶다는 망설임.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들어서 반가워 날뛰는 강아지를 껴안고 앉아 있으니 그때서야 발바닥이 쓰리고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걸을 때는 몰랐던 통증이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사막에서 점으로 사라진 청년을 떠올리며, 17살 청소년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온 시간과 거리를 막상 검색하고 나니 조금은 맥이 빠졌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구나... 그때는 지구 한 바퀴라도 돌고 온 사람 같았건만.
“나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내 눈앞에 있는 대로 조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더 작아지고 가늘어지고 멀어지는 것이었다.”
자코메티가 자신의 작업 동기에 대해 남긴 말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뭔가 알 것 같은 내 느낌은 소설가가 실제 보았던 사라진 청년과 내가 걸었던 16,402걸음 때문인 것 같다. 익숙한 모든 것들을 모른 척 지나쳐 어디론가 끝없이 걸어가고 싶다는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
그리고, 길거리 음반 판매점에 들러 집어 들었던 ‘Moon river’의 가사에도 확실치는 않지만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길 모퉁이 너머에서 기다리는 나의 허클베리 친구. 달빛 강, 그리고 나.’
나를 기다려온 그림들 가운데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어쩌면 유일하게 내가 기다려온 사람들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