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짐을 내려놓은 일

-존 피터 러셀의 ‘무제, 1908년 5월9일의 안개‘ -

by 다락방나무

시간의 짐을 내려놓는 일


-존 피터 러셀의 ‘무제, 1908년 5월 9일의 안개’-



초등학교 때 숙제로 쓰는 일기를 싫어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심지어 어떤 시기에는 충효일기인지 효도일기인지까지 겹쳐져 억지로 심부름을 한다거나 부모님 어깨를 몇 번 주무르고 바로 효도를 수행했다는 일기를 버젓이 써놓고 제출하기도 했다. 대부분 날마다 써야 하는 일기는 머리를 쥐어짜서 시간의 흐름대로 한 일을 최대한 늘려 한 바닥 나열해 놓고, ‘참 즐거운 하루였다’.라는 결론을 내면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일기가 밀려 뭘 했는지 생각조차 안 날 때면 가끔은 언니나 오빠가 앞서 썼던 일기를 베껴 쓴 적도 있다. 방학 숙제로 쓰는 짧은 날짜 일기는 개학 하루나 이틀 전쯤에 친구들끼리 모여 문장을 돌려가며 우정(?)의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의무적인 일기 쓰기의 고역이 끝난 중학생부터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유행처럼 다양하고 신박한 다이어리가 상품으로 출시되었어도 내키지 않았다. 계획하고 기록하고 점검해서 일간, 주간, 월간, 연간 단위로 내 생활의 흔적을 확인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씩 시험 삼아 내 기분이나 마음을 몇 줄 쓰고 나면, 유치한 문장과 어휘가 도저히 내 것이 아니라는 거부감만 들었다.


그러다 작년 어느 때쯤 원인 모를 무기력감에 짓눌려 있을 때, 우연히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끝까지 읽지도 않은 채 책을 집어던지고 여기저기서 받아놓기만 했던 지나간 연도의 다이어리에 밑도 끝도 없이 휘갈겨 써대는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몇 페이지를 순식간에 써놓고 다음 날 읽어보니 날것의 글들이 예전처럼 유치하거나 생경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같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했다. 거기에 재미를 붙여 몇 달 동안 꾸준히 써놓고 보니 어느덧 노트 4권이 쌓여있었다. 소위 나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밑도 끝도 없이 뱉어내 다시는 읽어보지 않을 글들의 무덤인 셈이다, 한 권을 끝낼 때마다 마지막 장을 덮고 곧바로 없애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니 더 거침없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해 놓고 없애버리기는커녕 색깔 맞춰 나란히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명백한 반칙이다. 그럼에도 난 4권의 다이어리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어차피 없애버릴 거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실명을 그대로 쓰기도 했고 때로는 저주와 원망 같은 거친 말도 들어있으며 순화시키지 않은 날것의 내 심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물론 절제되거나 조율하지 않은 넘치는 사랑의 감정도 폭포수처럼 뿜어냈으며 그 사람과 대면해서는 도저히 할 자신이 없는 용서의 말이나, 나를 향한 자책의 대사도 몇 번씩 반복해서 적어놓기도 했다. 비록 그중에 어느 한 권도 다시 들춰보진 않았지만 더 이상 그런 글들을 쓰지 않아도 된 시점에 와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만일, 어떤 예기치 못한 사유로 저 글들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아니, 최악의 경우 글 속에서 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든가 본인은 생각도 나지 않는 어떤 일에 내가 분노하고 상처 입고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여태까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황당하고 못 말리는 생각을 하는 특수한 부류의 인간이었던 거야? 등등.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갑자기 흐뭇하게 바라보던 다이어리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없애버리면 그만인 것을 미적거리다 짐덩이로 만들었구나. 그러니 이제 내가 할 일은 어느 날 아침, 유난히 눈이 번쩍 뜨이는 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한꺼번에 네 권을 움켜쥐고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투척하는 일이 남았다. 그제야 머릿속이 맑아지고 가벼워졌다.


러셀이라는 화가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당연히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을 떠올렸고 그가 그림도 그린 거야?라는 놀라움으로 시작했다가 이내 동명의 사람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서양미술사 흐름 가운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었으나 작품과 이름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화가였다. 나 역시 러셀의 그림을 먼저 본 것이 아니다. 사랑했던 아내가 죽자 자신의 그림 400여 점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슬픔 속에 남은 생을 마감했다는 드라마틱한 사생활이 먼저 내 관심을 끌었으니 러셀의 그림과 예술세계는 단지 곁다리로 내게 다가온 셈이다. 생전에 그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소장했던 그림만이 남아 전해질뿐이니 섣불리 그의 예술세계에 대해 왈가왈부하기가 힘들었는지 연구자들의 자료 또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그는 상당한 재산가였기에 굳이 작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고, 전시회 참여도 적극적이지 않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러셀의 그림을 개수로만 따지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당대 유명하거나 후에 이름을 떨치게 된 인상파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실력파로 인정받았다니 한때, 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상파 화단의 중심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랬던 그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모델이었던 마리아나를 만나 결혼한 뒤, 파리를 떠나 프랑스 북서부 벨 일(Belle lle)이라는 섬에 정착한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름 그대로 바다와 어우러진 기막힌 풍경 속에 궁전 같은 저택을 짓고 사랑하는 아내와 12명의 아이들(그 가운데 6명만 살아남았다)을 키우며 오로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는 삶. 그야말로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벨 일 섬에서 살던 시기에 그렸던 그림에는 온통 밝고 환한 색채들의 향연이었다.


그랬던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아내의 죽음이었다니. 슬픔의 충격 속에서 수백 점의 그림을 잿더미로 만든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 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은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다 그가 어느 시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기에 그린 그림 한 점이 내 눈에 띄었다. 얼핏 보면 완성된 그림이라기보다 그저 물감 몇 개를 짜서 하릴없이 분위기만 낸 듯한 그림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이 좋았다. 처음부터 러셀이란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맞닥뜨렸다 해도 이렇게 좋았을까? 물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바다, 물결, 태양, 안개, 바위, 바람... 등등 어떤 것도 튀지 않고 서로 스며들 듯 뒤섞여 마치 정물화처럼 힘없이 펼쳐진 바다 그림은 내 눈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러셀은 아내가 죽고 그동안의 작품을 모두 없앤 뒤, 한동안 텅 빈 상태 속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았을 거라 전해지지만 분명 예상치 않았던 신선한 자유와 평온함, 달콤한 고독의 시간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을 담담히 그렸을 것이고, 제목은 <무제>. 어쩌면 그는 이 그림을 그려놓고 지긋이 바라보며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음, 이제야 나 자신의 그림을 그렸군. 정말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말년에 그 많던 재산도 줄어들고 궁전같이 크고 화려했던 집도 헐값에 팔렸다지만 나이가 들어 노후의 삶이란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싶다. 오히려 단출하고 검약한 생활이 주는 단순함이 그를 쾌적하게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문학예술 쪽에서 작품을 불태우는 문제와 관련해 가장 유명하고 끝없는 논쟁거리를 제공한 사건이라면 ‘프란시스 카프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절대적인 우정과 믿음으로 신뢰했던 친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친애하는 막스. 나는 너에게 부탁한다. 내가 남긴 모든 글(출판된 것과 출판되지 않은 것), 일기, 원고, 편지, 스케치, 그리고 나와 관계된 모든 글들은, 읽지도 말고 전부(가능한 한 빨리) 태워버려라.’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한다.


‘아무도 내 영혼의 흔적을 읽지 못하도록 해다오.’


그의 이런 간절한 소망은 결국 지켜지지 않아서 오늘날 우리는 그가 남긴 모든 글을 읽고 평가하고 감동하고 비난하며 그의 영혼의 흔적을 추적하고 향유하고 있다.


죽어 잠든 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일 뿐이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도 예전에 하루의 일정을 간단하게나마 시간별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꾸준히 기록해 오길 어언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10년의 기록이 적힌 노트를 가방에 넣고 지하철을 탔다가 그만 짐칸에 놓고 내렸는데 결국 영영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했으나 차차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으니... 너무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오래된 묵을 짐을 벗어던진 듯 홀가분해져서 그 후 다시는 하루의 일정을 간단히 메모하고 기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얘기였다. 듣고 있는 나도 속이 후련한 건 왜일까.


과거를 잃어버리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덧 짐이 되어 현재의 삶의 무게를 더한다면 덜어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인가 보다. 그걸 바로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순간, 행동하는 것. 쉬운 듯 어려운 일이다.



나는 네 권의 다이어리를 아직 버리지 못했다. 절대로 다시 들춰보지 않을 노트가 차지하는 면적은 사실 아주 작아서 한동안 그냥 놔둬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안에 담긴 심적인 부담은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무게가 더해져 나를 압박하고 마침내 짐스런 존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바로 일어나, 책장 앞에서 한꺼번에 네 권을 집어 들고 쓰레기봉투 안으로 던져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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