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밖으로 행군하라 - 대지 미술을 찾아서

월터 드 마리아 ‘번개 치는 들판’

by 다락방나무

캔버스 밖으로 행군하라- 대지 미술을 찾아서


월터 드 마리아 ‘번개 치는 들판’



인간이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발명한 물건들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이런 가당치도 않은 의문은 꼭 그 정확한 개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왜 셀 수가 없냐면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발명품들이 만들어지고 또 셀 수 없을 만큼의 발명품들이 사라지면서 더하기 빼기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눈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옥석을 가릴 수는 있다. 인간이 발명한 물건 가운데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을 꼽으라면 얼른 말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자전거’다. 예전부터 나는 자전거에 대한 특별한 나의 애정을 많이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대충 대사는 이렇다.


“만일 신이 있어서 인간들 살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겠지? 그런데 바퀴 두 개 사이에 끼워 넣은 안장에 올라앉아 열심히 두 발로 페달을 밟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피식 웃음이 날 걸? 꽤나 귀여운 걸 만들었구먼. 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이 말에 웃지 않는 사람을 못 봤다. 다 웃는다. 웃는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내가 그 이유까지 궁금하지 않아서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술사학자 이진숙이 쓴 책 서문에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곳)은 미술관과 도서관’이라는 글을 읽으며 약간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하시는구나. 얼핏 생각해도 흔한 일상 용품으로 자리 잡은 자전거와 미술관, 도서관을 비교해 보면 그 가치의 역사적 무게와 위대한 의미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태 자전거만 좋아했지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자주 가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양육할 때 그림책을 사서 집에서 보긴 해도 미술관을 데려가진 않았고 책을 사러 서점에는 가도 도서관은 데려가지 않았다. 일단 나 자신이 미술관이나 도서관, 각종 전시회장의 분위기가 숨 막히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장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누군가 내게 조용히 해, 앉아, 일어서, 잘 봐. 이런 명령조의 말로 억압하는 것 같은 거부감을 느꼈다. 물론 이건 순전히 심약하고 피해의식이 있는 나라는 개인의 경우다.



한동안 유렵 여행이 붐을 이룰 때 가족 여행이나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당사자들에게 코스를 어떻게 잡았느냐 물어보면 필수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꼭 들어가 있다. 그런데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이들의 대답에 비슷한 점이 있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원화를 보고 명성에 비해 실망했다. 지루해하는 아이들과 실랑이하느라 피곤했다. 그럼에도 실물 작품을 직접 보았다는 뿌듯함. 대체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위로와 부러움이 적당히 섞인 말을 건네곤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의 증거물(?)로 사 온 현지 발행된 도록이나 리플릿을 선물 받고 고품질의 인쇄물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호사를 누렸다. 꼭 미술 작품을 원화로, 전시장 벽면에서 마주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어디가 그렇게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까. 의문을 품고 내 감상법에 자족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이진숙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이런 얄팍한 합리화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공부했던 문학의 길에서 전격적으로 미술로 그녀를 이끌었던 것은 러시아 미술관을 처음 방문한 날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는 하루가 저물어 갈 때까지 미술관을 떠나지 않고 시간의 빛에 따라 변하는 작품들을 감상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그녀는 러시아어를 배워가며 마침내 러시아 미술과 서양미술사를 섭렵하고 지금은 대중적이면서 깊이 있는 글을 쓰고, 강연자와 강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만일 그녀가 그날 그 미술관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그날의 빛과 어둠에 따라 변하는 원화의 다른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을까. 가히 인생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었을까? 그래서 그녀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술계 종사자들은 이런저런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어가며 원화가 걸린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길 강력히 권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랴. 내 개인적으론 이런 권유를 전혀 따를 수가 없으니. 안타깝고 슬프다. 시간과 돈과 마음의 의지 등등. 앞으로도 내겐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지금은 미술사 책을 정독하면서 핸드폰 이미지 안에서, 또는 책에 인쇄된 그림, 혹은 모사한 그림을 보고도 내 소감을 말할 수 있거나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붓 터치나 색감을 실감 나게 느껴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원화의 한정성, 소위 화이트 큐브의 한계를 불완전하게나마 나름 잘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시대별로 서술된 미술사 책에서 현대미술이 어지간히 무르익어 갈 때쯤 ‘대지 미술’이 등장한다. 나는 대지 미술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대지라고 불릴만한 땅을 한국이란 나라 어디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드넓은 땅의 이미지에 압도되었고, 크든 작든 주로 폐쇄적으로 디자인된 건축물 밖으로 뛰쳐 나와 지평선 너머 어디론가 사라지는 미술 작품들의 행렬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대지 미술가들은 말 그대로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그들의 작품 무대로 삼았다. 그들은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치할 장소를 정하거나 긴 시간 자동차로 혹은 그 외 교통수단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이 놓일 땅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그곳이 어디든 작품을 설치할 장소라고 생각되면 그곳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사막, 호수, 초원, 늪지대, 평원, 버려진 땅 등등. 대지 미술가들이 찾는 거대한 땅, 즉 캔버스가 준비되었다 해도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과 인간의 협업은 개념상 아름다운 조화다. 그러나 현실은 서로에게 재앙일 수 있고 불화와 갈등의 연속일 수 있다. 그런 모든 상황을 서로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에 생명력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때로는 완성된 작품이 통째로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자연환경의 변화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은 미국 뉴멕시코 사막 고원 지대에 설치된 대지 미술이다. 400여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을 일정한 간격의 격자 모양으로 세워 놓았다. 짐작하겠지만 철제 기둥은 피뢰침이 되어 번개를 유도한다. 그러니 이 철기둥 숲에 번개가 내리칠 때 비로소 이 작품의 완성도는 가장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연 현상과 인간의 구조물이 타이밍을 맞춰 작가가 의도하는 최상의 장면을 연출할 확률은 매우 낮다. 관람자들은 번개보다 황야를 배경으로 펼쳐진 철제 기둥들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감상하게 된다. 햇빛과 달빛, 별빛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빛의 군무는 상상만으로는 황홀하고 감동적이다.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들지만 실제 그 작품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관람 후기를 쓴 글과 사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기대보다 내 흥미를 끄는 것은 그 작품을 보러 가는 긴 여정이다. 대지 미술 작품들은 거의 일상 생활권 밖을 훨씬 벗어난 야생의 자연 지역에 설치되어 있거나 설치 중이기 때문에 경비행기나 특수모터를 장착한 지프차, 그 외 예측할 수 없는 날씨나 기온에 따라 움직이기만 한다면 어떤 교통수단이든 그것을 이용해 작품 전시공간까지 도달해야 한다. ‘번개 치는 들판’ 역시 마찬가지다


우선,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이 완료되는 순간부터 관람이 시작되는 셈이다. 일단 작가 측에서 제공하는 차를 타고 가는 데 가는 도중의 풍경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품이 설치된 장소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월터 드 마리아가 직접 설계한 오두막 숙소들이 있다. 그곳에서 24시간을 머물며 침묵과 엄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누구든 식단을 고를 권한은 없고 제공되는 채식 식사를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피뢰침 사이를 드나드는 햇살의 빛과 움직임, 캄캄한 밤하늘의 별빛과 그 아래 철제 기둥들을 지켜보는 것이 관람의 끝이다. 물론, 갖가지 변수와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어찌 됐건 그 시간 안에 몸담은 관람객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의 작품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우연한 걸작>의 저자 마이클 키멜만은 말한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할 때는 한 번에 하나씩 한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고 우리가 감상할 때 역시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게는 수십 점에서 많게는 수백 점까지 전시되는 대형 전시회의 정신은 그 전시가 정말 볼 만하더라도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질 때의 정신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겨울, 나는 큰 기대를 안고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가 열린 예술의 전당 미술관을 찾았었다. ‘파리’를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감미로웠다. 전시장 자체가 마치 커다란 그림동화책 같아서 마치 책 속으로 들어가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듯한 꿈같은 착각도 즐거웠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200여 개나 되는 작품 전체가 전시장 벽면에 촘촘히 걸려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한 작품을 감상하는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시대를 관통하며 오로지 파리라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그려온 작가의 놀라운 작품성을 느낄 틈도 없이 옆에 붙어선 낯선 관람객의 발걸음에 맞춰 그림 앞을 지나쳐갔다. 겨우 전시장을 빠져나올 때쯤, 좀 심하게 말하면 가보지도 않은 파리에 벌써 정나미가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대지 미술은 원천적으로 이런 식의 관람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미술 작품을 갤러리 밖으로 끌어내 멀고도 험한 과정을 거쳐 보러 오라 한다.


“그러니까 모든 예술은 내게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는, 아니 어쩌면 쉽게 다가와선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만나려면 때로 멀리 가야 하는 것이다.” <우연한 걸작, 마이클 키멜만>


그래서 대지 미술에 대해 빈정대는 사람들은 작품 하나 만들어놓고 너무 ‘오라 가라 하는 게 아니냐.’라는 불만을 터트린다. 심한 경우에 작품을 보러 가는 길에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생긴다든지 작가 본인이 장소를 물색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지 미술가들은 그런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 힘든 여정 끝에 방문한 관람객에게 오로지 하나의 작품과 마주하게 하거나, 때로는 아예 작품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작가가 구축해 놓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뿐이다.


나는 이런 식의 관람을 해야 하는 대지 미술에 마음이 강하게 끌린다. 우선, 아무리 애써도 그다지 친해지지 않는 미술관을 벗어났기 때문이고 또한 원화와 실물에 얽매이는 압박감에서 놓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지 미술 역시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사실상 작품의 실체는 대부분 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현상과 조응하는 절묘한 순간의 광경도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다.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 역시 여러 장면의 사진으로 작품이 공개되었다. 제목에 걸맞게 드넓은 황야에 서있는 쇠기둥에 번개가 내리 꽂힌 순간의 사진, 철제 기둥이 박힌 대지에 이제 막 내리 꽂힐 기세로 어두운 하늘을 찢어놓는 번개의 모습 등등. 나는 작품 사진을 관람하며 사진에 담기지 않은 또 다른 장면들도 떠올려 보았다. 아무도 없는 황막한 벌판에 자연과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만나 놀랍고 신비한 작품을 수없이 만드는 장면. 그때 전시된 순간의 작품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이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때마다 아주 잠깐씩 지구는 이전보다 아름답게 빛났으리라.


소설가 이시백의 책 <유목의 전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막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었다. 누가 보러 오느냐고 물었다. 근처의 양이나 낙타가 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바람도 보고...”


바람을 위한 전시. 모래 언덕에 전시된 사진과 시화를 지켜보는 바람, 바람이 낭송하는 시구들이 손풍금 소리처럼 들린다고 그는 말했다.


만일 이 전시회가 몽골 사막 한가운데서 열린다면 나는 눈을 감고 바람이 실어 나르는 시 낭송을 온전히 감상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하늘과 대지 사이 어디쯤 공간에서 열리는 대지 미술 전시장을 향해 먼 여행길에 나설 생각이다.


가끔, 아... 맞다, 나도 이 광활한 우주에 엄연히 존재하는 생명체였지. 이런 자각이 들 때가 있다. 캄캄한 밤하늘에 둥실 떠있는 환한 달을 볼 때, 지구라는 행성의 표면 위에서 오로지 지구 곁을 맴도는 위성을 마주하고 우뚝 서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당당하게 느껴진다. 가늠할 수조차 없이 드넓게 펼쳐진 우주를 향해 내 몸과 마음도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든다. 스치듯 너무나 짧은 순간이지만.


미술사적인 면을 잠깐 배제하고 대지 미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런 감각을 찾아 떠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지구라는 사실을 새롭게 일깨워 주고, 이곳은 불가사의한 우주의 현상들과 항상 교신하고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공간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아무리 근사하게 설계된 미술관이라도, 또는 아무리 커다랗게 제작된 캔버스라 할지라도 그곳에 담아낼 수 없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지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떠나는 시간은 관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캔버스 밖으로 행군하는 ‘순례’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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