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예전에 초등 고학년 아이들과 한국사 수업을 할 때 일이다. 조선후기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역사교과서나 교재에 비슷한 데가 있다. ‘나라의 문을 닫고…’라는 문장이다. 밀려드는 서양세력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대원군은 다양한 모습으로 위장한 서양 세력의 침투를 철저히 막고 보자는 결단을 내린 정책이었다.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었던 조치였기에 무어라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없다. 더구나 초등생들에게 쇄국정책의 이모저모를 놓고 섣불리 논쟁을 부추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일단 간단명료하게 단어의 뜻을 정의하고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 진지하게 듣던 한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근데 그때 대원군이 닫았던 문은 어디에 있어요?”
“문? 무슨 문?”
어리둥절한 내게 아이가 이어서 따지듯 물었다.
“나라의 문이요. 문을 닫았다면서요? 지금 그 문은 어디 있어요?”
세상에…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현문무답이라고나 할까. 나는 일단 웃느라고 말을 잇지 못하면서 어떻게 답을 해 줘야 할까…를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기 바빴다. 내가 오랫동안 아이들과 수업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어린이들 때문이라는 걸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이가 구원투수로 나서 주었다.
“야~ 그게 진짜 문이 아니고 찾아와도 상대를 안 해줬다는 얘기지! 문이 어디 있어?”
때는 이때다 싶어 내가 껴들었다.
“그렇지. 마치 누가 우리 집에 찾아와 할 얘기가 있다고 해도 문도 안 열어주고 돌려보내는 것처럼 서양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얘기 좀 하자고 해도 거절했다는 뜻으로 쓰는 거지.”
그러자 질문을 했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왜 굳이 ‘문’이라는 단어를 써서 헷갈리게 하나… 불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 역시, 그러게, 굳이 쇄국정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문’이라는 상징적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술의 역사 속에 ’ 문‘이라는 소재나 개념은 참으로 광범위하고 유용하게 쓰였던 거 같다. 마음의 문. 문 밖의 세상. 두드려라 문이 열린다. 비밀의 문… 문학작품이나 미술, 철학에서도 ’ 문’의 의미는 실로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을 여는 행위, 문을 닫는 행위. 문을 만드는 행위도 항상 중요한 동기와 계기가 된다. 한 사람의 성장단계에서도 ‘문’은 중요한 선언이 될 수가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모여 아이들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말한다.
“자기 방 문을 닫기 시작하면 그게 사춘기 시작이야.”
부모들은 동감하며 함께 웃지만 뭔가 복잡한 심정이 된다. 문을 닫는 아이 역시 몸과 마음의 혼란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용기 내어 표현하는 셈이다. 일종의 선언이다. 나를 내버려 두세요!
두께로 따지면 10센티 안팎이지만 문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두 세계에는 완전 다른 두 인류가 살아간다. 이처럼 ‘문’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우연히 이젠하임 제단화를 사진 이미지로 보고 단지 그림만으로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중세시대 흔하디 흔한 성경의 내용이나 예수 수난도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그림이 패널 형태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고 그것이 삼단으로 차례차례 열리는 문의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뭔가 특별한 목적이나 사연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으로 자료를 찾아본 뒤 나도 모르게 아…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림보다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건 ‘맥각병’이라는 생소한 병이었다. 중세시대 창궐했던 역병의 대명사는 페스트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끔찍한 병도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맥각병은 호밀 같은 곡식류에 맥각균 곰팡이가 생겨 이것을 사람이 먹었을 때 걸리는 중독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전염성은 없었지만 주로 빵이 주식이었던 당시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 단위로 집단 발병이 잦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맥각병의 증상은 끔찍하다. 근육 경련과 발작, 환각, 착란 증세를 일으키다 심해지면 피부가 썩어 떨어져 나가거나 괴사 되어 결국 사지를 절단하기에 이른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증세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지옥의 불길에 타는 듯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견딜 수 없이 극심한 통증과 열감이 수반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로 보자면 농업이 시작된 이래 곡식은 인간을 오랜 시간 먹여 살린 은혜로운 장본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오로지 농업의 족쇄를 차고 한평생 중노동을 감수하며 곡식에 종속되기를 자처했다. 풍흉에 따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숙명으로 여기면서 곡식을 추앙해 왔건만 그에 비해 곡식이 인간에게 내리는 대가치고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덴마크작가가 쓴 <빨간 구두>에서 춤을 멈출 수 없어 발을 절단했으나 절단된 발이 계속 춤을 춘다는 엽기적(?)인 설정이 어느 정도 맥각병 환자들의 증세와 상징적으로 연관성이 있다니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오염된 곡물을 먹은 사람들이 수십 명씩, 혹은 수백 명이 이유 없이 며칠 동안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버젓이 있는 것을 보면 차마 그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신경계 이상으로 환각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춤‘이라기보다는 ‘몸부림’ 일 텐데 지쳐 쓰러지거나 기진하여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스스로 멈출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참혹한 병이 있을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마도 수도원이나 교회, 병원에서 맥각병 치료를 위한 환자 수용이나 치료를 위한 시설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이젠하임은 환자 진료에 특화된 병원이자 교회로서 제단화 자체도 맥각병환자의 치료와 위로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한동안 그 당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과 절망에 깊이 이입되어 그림을 자세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선 그림을 의뢰한 교회 관계자와 제작을 수락한 그뤼네발트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마음으로 그림을 느껴본 다음, 당사자인 환자들은 성경의 그림과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의 구조에 어떤 정신적 치료와 위안을 받았을까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제단화는 예배나 축일에 그림을 통해 사제의 성경해설이나 강론을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는 기능이 중요했기에 그림의 장면이나 의미를 설명하는 사제들이 이 그림을 하나씩 펼쳐가며 설교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수도사나 사제가 이 그림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무한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아픔과 고통, 인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기를 바란다. 병을 낫게 하는 치료제나 진통제 따위가 없는 상태에서 육체의 고통과 두려움 공포심을 줄이고 심리적 강화와 안정 상태로 이끌었기를 바란다.
너의 고통은 죄의 결과라든가, 원죄를 지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당연한 대가라든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이라는 식의 질책과 협박이 뒤섞인 설교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맥각병 환자들의 처참한 상태를 알게 된 뒤, 그뤼네발트가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붓질을 했을지, 이젠하임 교회 수도사나 사제가 제단화를 펼쳐 보이며 설교를 할 때 얼마나 간절함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갔을지… 시공간을 넘어 느끼고 싶다. 나는 특정한 종교나 신앙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환자들의 신음과 한숨, 눈물의 기도와 간구로 가득 찬 이젠하임 교회 미사 현장 한가운데 앉아있어 보기로 한다.
그날의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닫혀있는 문에 그려진 첫 번째 제단화 앞에 서서 아픔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을 돌아본다. 그는 차마 입을 바로 떼지 못하다가 천천히 강론을 시작한다.
“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순간 그대들의 고통과 괴로움에 내 이 몸도 함께 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약한 육신을 겨우 붙잡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오직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그림은 이제까지 보았던 수난도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고개가 옆으로 꺾인 채, 뼈가 드러날 정도로 극단적으로 마른 몸에는 온통 상처와 가시 같은 종기와 궤양이 뒤덮여 있다.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에는 못 자국이 선명하다. 양쪽으로 벌린 팔은 늘어져 손바닥 가운데 박힌 대못에 온몸의 무게가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근육과 살이 서서히 찢어지는 아픔이 생생히 느껴진다.
사제는 예수의 만신창이가 된 몸을 어루만지듯 그림 위로 손을 내민 채 말을 이어간다.
“보시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병든 몸과 예수의 몸이 다르지 않습니다. 찢져진 살에 피가 흐르고 고름이 들어찬 종기는 썩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고통에 삼켜진 몸이지만 앉거나 누워있는 형제 여러분. 예수의 몸을 보십시오. 커다란 대못이 손바닥에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몸은 움직일 수조차 없습니다.”
예수의 살갗이 맥각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며 환자들은 동질감에 위안을 얻기만 했을까? 아니면, 예수마저 극복하지 못 한 이 무서운 질병에 절망감을 느꼈을까. 나는 후자의 느낌과 같다. 예수 너마저…. 붙잡고 있던 한 가닥 실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바닥을 친다’는 말이 있다. 그뤼네발트는 이 그림을 보는 환자들을 일단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의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사실 성경에는 예수가 죽는 과정에서도 인간과 똑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죄인을 십자가나 기둥에 못을 박아 몸을 매다는 처형 방식은 예수로서도 상상 이상의 고통을 주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예수는 말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 27:46, 마가 15:34)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당시 환자들도 예수가 베풀어 줄 치유의 기적을 바랐지만 눈앞에 예수는 그저 나와 같은, 아니 심지어 나보다 더 극심한 고통 속에 버려진 존재인 것이다. 경악과 절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감정이 지나간 뒤에 신에 대한 의심과 분노, 원망, 배신감 같은 감정이 환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지 않았을까. 정말 하나님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왜 이 고통을 바라보기만 한단 말인가, 인간보다 잔인한 하나님. 내가 무슨 잘못을 지었길래… 살아서 지옥에 있건만 결국 죽어서도 나는 지옥에 떨어지는구나, 대체 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롭고 혼란스러운 마음은 더욱 신체의 아픔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성경 속 인물인 욥은 시련과 고통을 겪는 대표적 인간이다. 죄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욥이 이유를 알지 못 한 채 당하는 끔찍한 고통을 목격한 그의 아내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그래도 아직 하느님께 충실하려느냐? 차라리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시오”(욥기 2:9)
인간적인 분노와 절망이 폭발하는 구절이다. 예수의 처참한 모습에 절망한 뒤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에 있던 맥각병 환자들을 사제는 묵묵히 지켜본다. 어쩌면 누군가 욥의 아내처럼 신을 저주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있다.
그 순간 사제는 갑자기 수난도 앞으로 다가가 그림의 문을 열어젖힌다. 문이 열리자 새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부활한 그리스도이다. 상처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온몸이 빛으로 둘러싸여 눈부시게 빛난다. 천사들은 음악을 연주하며 축복한다. 더 이상 고통이란 없다. 확실한 구원의 증거가 여기에 있다. 반전이다. 극사실적으로 상처 하나하나가 세세히 묘사된 예수의 몸이 이번에는 섬세한 붓질로 매끈하고 보드라운 살결로 표현되어 황홀한 색채로 빛난다. 알자스 지방 겨울 낮에는 제단 위쪽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예수의 머리 부분에 떨어지도록 설계된 것으로 추정된다니 마치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움과 감동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이때를 맞춰 수도사들은 병자들 옆에서 라틴어 찬송을 낮게 부르며 유향이나 미르 같은 향을 피웠다. 절망의 나락에 쓰러졌던 환자들은 이 드라마 같은 반전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떤 장면을 떠올리더라도 눈물겹다. 수도사들은 환자들의 침상을 돌며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함께 손을 맞잡아 기도하거나 성수를 손수 몸에 발라주며 따뜻한 육체적 접촉을 한다.
절망으로 무너졌던 마음은 빛나는 예수의 부활 그림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바닥을 치고’ 솟아오른다. 그런 과정에서 적절한 음악과 기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자신이 당하는 자신의 고통과 시련을 인과관계로 연관 짓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시련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아, 그래서 이런 거였구나. 이런 이해와 자기 설득은 들끓던 마음의 문을 닫고 안정과 평온으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자전적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은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육신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과연 시련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여력이 있을까… 나로서는 의문이지만, 자신이 감내하고 견뎌야 하는 시련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의미가 부여된다면 비록 삶의 불바다를 건너는 중이라 해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결코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환자들을 위한 특별 미사 강론의 결론이 남아있다. 마지막 세 번째 문이 열린다. 성 안토니우스와 세바스티아누스가 악마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가장 핵심이다. 그들은 환자들의 수호신이자 병자를 돌보고 보호하는 영적 치료자로 여겨진 인물들이다. 앞서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으로 절망에 빠졌던 환자들이 구원과 부활 희망의 끈을 겨우 잡았건만 영적 수호자이자 치료의 성인인 성 안토니우스와 세바스티아누스가 악한 영들에게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실감 나게 그려진 그림을 보며 환자들은 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다. 이때야말로 사제의 그림 해설이 절실할 때다.
사제는 천천히 제단화 앞으로 다가간다. 총 3단으로 구성된 패널문이 모두 열려 제단화 전체 모습이 드러난다. 가로 약 7미터, 세로 약 4미터의 나무 패널에 그려진 총 아홉 장면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중앙에 니콜라우스 하겐아워가 제작한 성 안토니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예로니무스 목조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제는 말한다.
“사랑하는 형제들.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까? 그리스도와 성인들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믿을 수 있습니까? 그대들보다 더 극한 고통 속에서 시험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둡고 깊은 동굴에서도 빛을 찾는 수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계속해서 빛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마십시오. 그 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빛입니다. 다만, 그곳으로 가는 길이 어둡고 캄캄할 뿐입니다. 기도하십시오. 눈물로 간구하십시오. 눈물로 아픈 상처를 씻고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내리십시오. 빛 가운데 서계신 예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마음이나 생각, 깨달음, 의식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일어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목적지가 코앞에 뚜렷하게 보인다 해도 각자 그곳을 향해 가는 시간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다. 닫혀있는 ‘문’을 하나씩 열고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상징이다. 문을 밀거나 잡아당기기 위한 힘은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향한 의지와 용기다. 이젠하임 제단화가 세 개의 문으로 구성된 것도 이런 이유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뿐 아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코앞에 죽음을 앞두고 끔찍한 육체적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진 환자들을 배려한 사랑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교회의 사제들과 병원, 화가와 조각가, 수많은 조수들과 노동자들, 기꺼이 비용을 감당한 길드 상인들까지.
이젠하임 제단화는 현재 프랑스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람객이 그림 전체를 다 볼 수 있도록 3단 문은 모두 열려 있어 한꺼번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이 제단화만큼은 한 겹씩 문을 열고 감상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특정 종교와 성경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를 잠시 접어두고 세 개의 문을 열면서 저마다 가슴 깊이 자리 잡은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다. 이곳이 예전에 보리수나무로 둘러싸인 수도원 자리라 미술관 이름도. ’ 보리수나무 아래(운터린덴) 미술관‘이라니 미술관 정원 나무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문득,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문이 어디 있냐고 묻던 아이를 떠올려 본다. 지금 다시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또 별 수 없이 그때와 같은 대답을 해 주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아이가 영 찜찜한 표정을 짓는다면 한 마디 덧붙여 두자.
“나중에 기회가 되면 프랑스 운터린덴 미술관에 가 봐. 지하 갤러리를 지나 옛날 수도원 예배당 공간에 가면 거기에 이젠하임 제단화가 있어. 그 그림을 꼭 봤으면 좋겠다.”
누가 아는가. 그 아이가 정말 그곳에 가서 제단화 앞에 서게 될지. 마침 어떤 이유로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평소에는 문이 닫힌 채 전시되는 기간이라면?……내 상상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