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921번 버스

마르크 샤갈 '산책(over the town)'

by 다락방나무


샤갈, 하면 동시에 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붕붕 떠다니거나, 앞 뒤 옆이 뒤섞여 제멋대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과 동물, 사물들. 서너 개까지는 괜찮은데 여러 개의 작품을 모아놓고 보면 정신이 살짝 혼란해지고 어지러울 수 있다. 이런 뚜렷한 특징 때문에 미술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샤갈의 그림만큼은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보이는 그대로 쉽게 이해되고 즐길 수 있어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화가에 속한다. 그런데 살아생전 1만여 개가 넘는 어마어마한 개수의 작품을 남기고 100세 가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장수 화가이다 보니 아직까지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 한 그림들도 많은가 보다. 요즘 샤갈의 미공개작 전시를 전국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데 작품성이 특별하거나 희귀한 게 아니라 작품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98세에 죽음을 맞이한 작가의 장수 비결은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죽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샤갈의 대표작들이 실리거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가 한 시대 청춘들의 랜드마크로 기억되는 시절도 있을 정도다. 김춘수 시인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써서 한국사람들에게 샤갈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물감 살 돈이나 집세 낼 돈이 없어 떠돌아다녔던 가난한 예술가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던 셈이다.


수많은 그림의 양에 비해 샤갈의 그림 주제들은 단조롭다. 사랑, 고향마을, 동물, 꽃다발, 무중력 상태. 이런 단어가 샤갈의 수많은 그림의 키워드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벨라와의 지극한 사랑, 러시아 시골 마을 비테프스크. 염소, 말, 닭 같은 유대인들의 민속과 관련된 동물들. 그리고 꽃.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고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소재만으로 무한 변주된 그림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더해 강렬하게 펼쳐지는 다채로운 색깔들.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샤갈만의 독특한 색채 감각이 절정을 이루는 천장화(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를 직접 보고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잘 설계된 조명 장치 덕분에 더욱 환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천장화는 구글 이미지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래서 그렇게 다들 샤갈, 샤갈 하는구나.


나는 오래전 보았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영화 속에서 두 청춘 남녀의 결혼식날, 유대인 마을의 떠돌이 악사가 지붕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과 그 아름다운 선율을 잊을 수 없다. 특별한 날이나 축제 때 하필이면 지붕 위로 올라가 바이올린을 켜는 풍습이 경건하면서도 아련한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샤갈의 그림에도 바이올린을 켜는 마을의 악사가 자주 등장한다. 이주민이나 망명객, 방랑 민족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의 기나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방인이 겪어야 하는 고달픔과 슬픔, 불안, 그리움이 느껴진다. 샤갈 역시 어딜 가서 정착하든 끝내 이런 감정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의 예술 창작 동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고향,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작품 속에 마음껏 담아낸 느낌이다.


샤갈의 대표작 가운데는 남녀가 공중으로 떠오르거나 아예 하늘을 나는 모습, 연관성 없는 여러 사물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뒤섞여 등장한다. 초현실파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분명 현실을 초월한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인데 샤갈 스스로는 자신의 그림을 굳이 초현실에 끼워 맞추려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했다니 작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 작가 자신이 직접 그렇게 느끼고 심정적으로 경험한 실제 현실이라면 말 그대로 ‘현실’이 맞다. 프리다 칼로 같은 화가도 자신의 그림을 유럽 화단에서 초현실주의로 분류하자 거기에 대응한 말이 유명하다.


“나는 초현실주의가 아니다. 내가 꿈꾼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현실을 그린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는 작가의 인식에 따라 명확하고 뚜렷하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샤갈도, 자신의 그림은 내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늘어놓은 것뿐이라고 말한다. 우리 각자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자신만의 마음속 내면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그 풍경 속으로 숨어들어 홀로 그곳을 거닐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샤갈의 그림은 초현실보다는 차라리 풍경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 이 그림 속에서 샤갈과 아내 벨라는 더없이 평온한 비행을 하고 있다. 떠있지만 불안정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너른 풀밭에 누워있는 듯 나른한 자세로 소위 공중 산책을 하는 중이다. 발아래 보이는 그들의 고향마을은 정겹기만 하다. 당시 바깥세상은 실로 혼란과 격변의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으나 샤갈은 오직 사랑하는 벨라와의 결혼으로 깊은 행복감만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듯하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을 느낄 때 여러 가지 기묘한 경험을 한다고 증언한다. 그런 체험은 과학이나 논리로 부정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샤갈의 그림에서처럼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이 이처럼 사람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는 거라면 나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나는 여태 그런 경험을 해본진 못 했다.


대신, 아주 다른 이유로 샤갈의 그림에서처럼 나도 공중을 날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정말 강렬한 체험이라 절대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딸려오는 우울한 생각들이 싫어 어느샌가 어두운 기억 저편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샤갈의 공중 ‘산책’ 그림을 보며 쭈빗쭈빗 손을 더듬어 그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그때 내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는 게여간 힘든 게 아니다. 기억과 추억도 지울 건 지우고 남길 건 남기자 굳게 마음먹으면 가장 먼저 지우고 묻어버리고 싶은 때가 바로 그 때다. 시간이 약이 되지 않고 고통을 가중시킨다면 흔적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항상 내 노력을 무산시키는 존재가 921번 버스였다. 일산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를 만날 때마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야속한 버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다 자랐고 나는 그토록 원하던 삶을 누리고 있다. 나와 타인에게 관대해지고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도 마음으로나마 안녕을 바랄 수 있다.


샤갈의 무중력 그림 가운데 유독 ‘산책’의 공중 유영이 나를 웃음 짓게 한 것이 그날의 기억과 가장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완전한 무방비 상태의 릴랙스가 없었다면 당장 바닥으로 추락해 처박혔을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알 수 있다. 짜릿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서울에서 일산으로 들어오는 ‘자유로’ 국도는 한강변을 따라 놓인 직통 직선 도로다. 시간대별로 자가용이나 버스 등 각종 차량들의 과속 질주가 잦아 종종 큰 사고가 난다. 921번 버스는 대중교통인데도 과속 운전으로 악명이 높은 버스였다. 나는 한동안 서울에 일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운전기사들의 과속을 막기 위해 회사 측에서 경보기를 달아 놓고 운전기사가 안전 속도를 무시하고 속도를 높이면 삐이익~하는 경보음이 울렸다. 경보기 밑에는 커다란 글씨로 과속을 하는 기사가 있을 경우 회사 측으로 신고해 달라는 경고 문구도 붙어 있었다. 문제는 이 경보음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삐이익~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도 계속 내달리는 운전기사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내 몸과 마음은 무거웠다. 어린이집에서 늦게 오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속이 타들어갔다. 보호자가 자신들의 퇴근 시간보다 늦게 올 경우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한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꽉 막힌 신촌 사거리를 통과하느라 오랜 시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에서 멀미가 올라왔다. 한참만에 드디어 자유로에 들어선 버스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 생각에 급한 마음 때문인지 처음엔 오히려 시원스레 달려주는 버스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삐익~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창 밖 가로수들이 미처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휙휙 지나가고 도로면에 닿는 타이어의 흔들림도 느껴졌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운전기사는 경보음을 듣지 못하나… 왜 속도를 줄이지 않는 거지… 불안하고 공포가 밀려왔다. 이때 버스 안에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너무 놀라 일단 옆 사람을 바라보니 그는 고개를 푹 떨구고 잠이 들어 있었다. 반쯤 일어서 버스 안에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창 밖만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땀에 젖은 손바닥을 비비며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왜 다들 저렇게 태연한 거지? 그 모습이 더 불안하고 무서워졌다. 삐익거리는 경보음은 이제 엄청난 소음으로 내 귀를 때리고 버스 속도는 더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운전기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속도를 늦추지 않을 리가 없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린이집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을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팔짱을 낀 채 굳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는 선생님들 얼굴이 떠올랐다. 저 멀리,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회색빛 도시 뒤로 붉은 저녁노을이 찬란히 펼쳐져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가슴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동안 버텨왔던 고달픈 시간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로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내 품에 두 아이를 꼭 안는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간절함에 몸이 떨려왔다.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도 좋으니 아이들만 내 품에 안겨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였다. 갑자기 921번 버스 천장이 공중으로 사라져 뻥 뚫렸다. 그러더니 곧 버스 왼쪽 면이 떨어져 나가고 잠시 뒤, 내가 앉은 창쪽 오른쪽 면이 떨어져 나갔다. 이 모든 것이 TV드라마 슬로 모션 장면처럼 움직였다. 이제 버스는 좌석만 남은 채 도시 뒤쪽으로 펼쳐진 붉은 노을의 장막을 향해 초고속 질주를 하고 있었다. 순간 부우웅~. 버스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삐악 거리던 경보음도 멈추고 창 밖으로 스치던 가로수도 보이지 않는다. 아, 때가 왔구나. 두려움에 울부짖기라도 해야 할 참이었지만 뜻밖에 요동치던 심장 소리도 가라앉고 한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나른함에 내 몸을 맡겨버렸다. 그래, 사라져라.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라. 그때만큼은 아이들도, 어린이집도, 선생이랍시고 눈치 주는 나부랭이들도 생각나지 않았다. 숨 막히는 회색 도시, 가기 싫은 집. 잠 안 오는 밤, 그리고 또… 그냥 다 떨쳐내고 모두 사라져라 제발.


어느덧 버스가 시내 안으로 들어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운전사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했고 누군가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하면 ‘안녕히 가세요’ 담담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나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어린이집 앞 정류장에 내려 서둘러 달려갔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한 나를 쌀쌀하게 대하는 선생에게 인사도 없이 내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샤갈의 그림과 그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명성운수 921번 버스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저녁노을 속으로 달려가는 일이 일어난 것은 초현실적이고 황당한 꿈의 세계가 아니었다. 나게는 분명한 현실이었고 당시 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록 캔버스에 그려 남기진 못했으나 나만이 알 수 있는 멋진 풍경화 한 점을 소장한 셈이다.


<마을 위를 날아>라는 제목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아마도 샤갈은 벨라와 손을 잡고 마을 숲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벨라를 향한 사랑에 가슴이 벅차다. 주체할 수 없는 충만함이 가득 찰수록 그만큼의 불안과 두려움이 그를 덮친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운명은 이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러시아 전역을 뒤흔드는 혁명의 기운은 한낱 유대인 게토 마을 사람들이 죽던 살던, 두 연인이 사랑을 하든 말든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한순간 피바람 속에 찢기고 짓밟힐 시간이 바로 눈앞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숲길이 끝나가는 곳에서 샤갈은 벨라를 꼭 끌어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나른해진 몸으로 자유롭게 유영하며 내려다보는 마을은 신의 은총과 보호 속에 오밀조밀 정답게 모여있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완벽한 행복감이 이 순간 세상의 전부다. 두 연인은 언제까지나 하늘을 날아다닐 듯하다. 비록 흔적도 없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해도 서둘러 내려갈 이유가 없다. 대면해야 할 지상의 삶은 차갑고 잔인하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 나를 되뇌며 ‘마을 위를 날아 하늘을 산책하는 두 연인’.


이건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에서 두서없이 퍼올리는 초현실이 아니다. 그저 샤갈의 내면에 펼쳐지는 풍경의 이미지라는 걸 이해기까지 내겐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즘도 일산에는 921번 좌석버스가 여전히 시내를 돌아다니고 자유로를 달려 서울로 오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다닌다. 이제 나는 길을 가다 명성운수 921번 버스를 보면 잠시 샤갈의 ‘하늘을 나는 연인들’을 떠올리며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다. 다만, 그때처럼 노을이 유난히 불타 오르는 저녁, 과속 경보음을 무시하고 내달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버스가 아직도 있을지, 그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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