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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books Jul 16. 2020

내가 출퇴근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 - 노동의 기쁨(프랑스인들이 달라졌어요)


3월 프랑스에 이동 격리조치 (confinement - 꽁핀느멍)이 시작되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1시간이 넘는 출근길을 피할 수 있고, 보기 싫은 사람도 피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맘에 든 건 탄력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낮에는 점심을 빨리 먹고 낮잠을 잔다든지, 일이 잠깐 없는 틈을 타 개인 용무를 본다든지.. 열거하자면 끝없이 장점만 나올 것 같았던 재택근무도 3개월을 넘어가자 단점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피할 수 있어서 활력을 준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도, 탄력적인 시간 관리도 오랜 재택근무에 속절없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출근과 퇴근이 없으니 무기한으로 일은 연속선상에 있었고, 싫어도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비대면하고 있자니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대화도 단절되고, 마음속에 불안함은 점 자라고 있었다.


나는 5월 11일 이동 격리 해지 조지 (Deconfinement - 데꽁핀느멍)이 발표 나고도 한참 후에나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6월 중순에야 이직을 하면서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4개월 만에, 뉴 노멀 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역에서 내려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들고 오른쪽으로 개선문 한 번 바라보고 왼쪽으로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한 번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

라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 상쾌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집에서 눈을 뜨자마자 업무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도착해 노트북을 켜는 순간이 일이 시작되고 사무실을 나오며 일의 끝맺음을 하는 그 명확한 경계가  참 반가웠다.

 노동의 시작과 끝을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하고, 집에서는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환이었다.

회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얼굴 붉힐 일도 가볍게 넘길 여유도 생겼다.  '그래도 당신 얼굴 보며 지지고 볶으면서 일 해결하니 좋아요'라는 이상하게 너그러워진 마음도 코로나 이후로 생겼다. 어차피 회사 문 닫고 나오면 나만의 평온한 세계로 빠져드는 데 익숙했던 터라,  좋은 감정을 나의 세계까지 끌고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타협하는 편이 편했다. 나를 위한 발 빠른 태세 전환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을 대할 때, 나의 태도에도 성숙함이 찾아왔다. 대면하기 싫은 일에도, '한 번 해결해보자'라는 용기가 생겼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얼른 부딪히고 얼른 파도를 넘기겠다는 생각이 들자 뭉게 놓을 일도 없었다.


물론, 이 마음이 또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갈대 같은 인간이지만 금이 노동의 시작과 끝맺음을 감사하고 즐기기로 했다. 언제 또 하염없는 재택근무를 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노동권이 워낙 강한 프랑스에서 '해고'는 '고용'보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큰 기업들이 휘청이고, 프랑스 예상 경제성장률 -4% ~ -5%를 논할 만큼 구조조정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많은 자영업자들의 파산 신청이 줄줄이 잇따르고, 해고도 많아졌다.


권리 주장을 강하게 하는 프랑스인이라도 이번만큼은 반기를 들만한 여력도 없이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이 수두룩했다. 고용 불안함의 최고조를 이룬 5월이 지나가고,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직장인들 자영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일까?


불친절하고 투덜거리는 프랑스인들이 달라졌다. (모든 프랑스 인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대다수가 동의하는 프랑스인들의 특징) 코로나를 겪고 난 이후, 사람들도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고마움'의 불씨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매일 언성 높이거나 싸우기 바빴는데 웬걸. 이렇게 천사 같을 수 있나. 코로나 동안 우편배달부 일손이 모자라 창고에 처박혀 있던 물건을 알아서 찾아서 배송을 해주지 않나, 통화 끝 마지막에 건강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하질 않나... 참 낯간지러운데 싫지는 않다.


다시 문을 연 레스토랑의 사장님들은 더더욱 친절했다. 3개월 동안 영업하지 못하며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까. 다시 음식을 서빙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정성 가득한 음식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길 그리고 이 난국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서 고맙다고' 쓰여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오랜 시간 멈춰있는 동안

소중한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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