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는 게 도망은 아니야
처음 간호사로 병원에 출근하던 날,
나는 정말 많이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간호학생으로 실습하던 시절,
나는 늘 실수하던 학생이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간호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꼼꼼하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하면 꼭 하나쯤은 빠뜨리곤 했다.
다른 친구들과 자꾸 비교되었고,
나 스스로도 열등하다고 느꼈다.
그런 내가 진짜 간호사가 되어 일을 한다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다들 대학병원을 준비했지만
나는 집 근처 준종합병원에 지원서를 넣었다.
간호사로서의 열정보다는
‘덜 힘들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내가 배치된 곳은 부인과 병동.
코로나 시기였던 탓에
내과 병동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코로나가 아닌 여자 환자들은
죄다 우리 병동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소아과 병동까지 폐쇄되어
아이들까지 함께 입원했다.
그야말로 북적이는 시장통 같은 병동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실습할 때도 병원은 늘 바빴으니까
그런 혼란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입사 3일째 되는 날,
선생님들이 너무 바빠서
내가 처음으로 환자 히스토리를 맡았다.
작성해 수간호사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간호사 스테이션에 환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너무 당황했고,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다.
입사한 지 고작 3일 된 신규 간호사에게
환자 앞에서 그렇게 소리칠 필요가 있었을까.
왜 간호사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는 걸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런 일이 당연한 줄 알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텼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
하지만 함께 입사한 동기는
너무 힘들다며 응급사직했고,
프리셉터 선생님도 곧 퇴사했다.
결국 나는 한 달이 되자 독립을 하게 되었다.
누구도 말하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이젠 혼자 잘해야지?”라는 무언의 시선.
하지만 고작 한 달 된 신규가 어떻게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느렸고, 실수도 많았다.
일은 쏟아졌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몸도 마음도, 하루하루 무너져 내렸다.
선생님들은 처음엔 나를 혼냈지만
나중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 한숨이 나를 더 옥죄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일을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나는 간호사가 맞긴 한 걸까.’
자괴감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규 환자의 히스토리를 작성하고 있는데
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간호사 일… 많이 힘들죠?”
그 말에 무너졌다.
터진 눈물은 주체되지 않아
화장실로 뛰어가 엉엉 울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지금 마음이 무너졌구나.’
그날, 퇴사를 결심했다.
이대로 계속 일한다면
내 몸과 마음이 더 망가질 것 같았다.
감정을 간신히 추스르고 겨우 퇴근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주변 시선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출근길은 지옥 같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간호부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리자
“신규 때는 다 힘든 법”이라며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나는 더 망가질 거라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환자 앞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만큼,
제 상태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대로는 환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퇴사를 요청했고,
결국 한 달만 더 일하는 조건으로 승인받았다.
그 한 달은 정말 끔찍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응급사직한 동기가 현명했던 것 같다고.
왜 나는,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한 달을 더 버텼을까.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버틴 시간들이
결국은 나 자신에게 상처가 되었다.
입사 4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동안 생리도 끊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까지 버틸 필요는 없었어.”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아.”
첫 직장이었고, 첫 퇴사라 더 두려웠던 거다.
왠지 끝까지 참고 견뎌야만 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그 끈질긴 인내가 오히려 나를 더 망가뜨렸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괜찮아.
그만둬도 돼.
충분히 애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