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나를 되찾는 중
간호사로 산다는 건, 삶의 리듬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몸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안에는 몇 가지 지워지지 않는 습관들이 남았다.
돌이켜 보면 그것들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이 일을 버텨온 흔적이자 상처였다.
깊은 잠에 빠져든 기억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마음은 늘 깨어 있었다. 새벽 근무가 있는 날이면 ‘혹시 늦잠 자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아예 잠드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알람을 두세 개 맞추고서도 안심할 수 없어, 결국 새벽녘에 몇 번이고 눈을 떴다.
내 안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긴장이 자리 잡았다.
집을 나설 때마다 가스 밸브와 문단속을 두세 번 확인한다.
그래도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일터에서는 더 심하다. 내가 직접 확인했음에도, 동료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부탁한다.
신규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환자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던 그 날 이후로,
나는 늘 ‘혹시 내가 놓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그때부터 불안은 내 그림자가 되었다.
투석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이 긴 시간 동안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조용히 잠들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잠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혹시 깊은 잠이 아니라, 의식이 사라진 건 아닐까.
가만히 다가가 “괜찮으세요?” 하고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환자가 눈을 뜨고 “네” 하고 대답해 줄 때에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은 잠시뿐, 금세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환자들의 아픔을 오래 지켜보다 보니, 언젠가부터 그 그림자가 내게도 드리워졌다.
몸이 멀쩡한 날에도 문득 불안이 올라왔다. 작은 통증에도, ‘혹시 나도…’ 하는 의심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환자의 병은 내 불안이 되었고, 그렇게 건강을 의심하는 습관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밥을 허겁지겁 먹는 습관은 실습생 시절에 생겼다.
짧은 점심시간, 쏟아지는 일들 앞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급히 삼켜야 했던 날들.
그 버릇은 지금까지 이어져, 밥상 앞에서도 마음은 늘 서둘렀다.
누가 보면 마치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습관들은 내가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일을 버텨내기 위해, 몸과 마음이 스스로 익힌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게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천천히, 그 습관들을 내려놓고 싶다.
‘이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편안히 잠들고, 느긋하게 밥을 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