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단단해야 남의 장점을 볼 수 있다.
간호사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 ‘태움’.
보통은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흔히 발생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특이하게도, 요양병원에서 태움을 겪었다.
요양병원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이브닝 근무를 했던 날이었다.
인계를 하고 있었는데, 나이트킵 선생님이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혈압이 160대까지 올랐는데 왜 의사한테 노티 안 했어요?”
순간 당황했다.
그 환자는 평소에도 혈압이 150대를 유지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160이 특별히 문제 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내가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의사에게 상황을 알리고 인계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그 선생님은 사소한 일마다 나에게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같은 실수를 해도 내 동기에게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나에게만 “왜 이렇게 했냐”며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 선생님.
그래서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더욱 꼼꼼히 일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혼났다.
심지어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조차 내게 말했다.
“왜 저러시는 거지?”
결정적인 순간은 따로 있었다.
병원 전체가 서로를 ‘누구누구쌤’이라고 부르던 분위기에서,
나에게만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퍼즐이 맞춰졌다.
‘내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싫어했던 거였구나.’
그동안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합리화하려 했다.
더 노력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그 선생님은 나보다 더 싫어하는 대상이 생긴 듯했다.
그러자 나에 대한 태움은 멈췄고, 그 사람에 대한 뒷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은 누군가를 반드시 미워해야 하는 만하는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그저 예민하고, 감정적이며,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를 향한 미움도 결국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쌓인 결핍과 불만,
자격지심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자기 안의 결핍을 직면하지 못할 때,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투사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잠시라도 마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까.
그 생각을 하면서,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내가 여유 있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남의 장점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비교나 열등감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장점도 위협이 아닌 '좋은 점'으로 보인다.
반대로 내면이 불안정할 때는
타인의 장점이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고
그 불안은 질투와 공격성으로 바뀐다.
타인을 향한 시선은 결국 내 내면의 반영이다.
내가 단단하고 여유 있을수록,
타인을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