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과 책을 불태우며
피곤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피곤했다.
고등학교는 언제나 피곤했다.
그날도 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나를 깨웠다.
학교에 가라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딱히 재미난 것도 아니다.
재미? 재미가 있기는 하다.
말 안듣는 재미, 반항하는 재미는 참 쏠쏠하다.
높은 담벼락에 올라가면 느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반항에는 있다.
잘 놀다 내려오면 무사하지만 떨어지면 팔이라도 부러진다.
반항의 재미가 그렇다.
고2의 반항
적당히 하면 관심과 연민을 얻지만 과하면 귀싸대기로 응징된다.
담벼락의 폭처럼, 반항은 적당히 하기가 어려워 담벼락에서 떨어지기 쉽다.
그녀는 이미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이!! 쫌!!"
짜증에 화를 추가해 그녀에게 돌려 주었다.
잠결에 그만 담벼락놀이를 시작해 버렸다.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올라가는 시늉만 할 것인가?
사람은 높은곳으로 오르려는 습성이 있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으며 소리를 질렀다.
"제발 좀!! 자게 내버려둬!!"
"뭐가 이런게 다 있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학교 안갈꺼야?"
학교, 그래 학교에 가야겠지만 여기나 거기나 담벼락타고 노는게 다인데 장소가 무슨 소용인가?
"학교? 내가 왜 학교에 가야 되는데? 학교 안가!!!"
"학생이 학교에 가야지!! 뭐하는거냐?!! 진짜, 뭐가 이런게 다있냐?"
담장놀이는 시작되었고 내가 '이런게'로 불리는 것이 못마땅하다.
학생은 왜! 꼭! 학교에 가야하나?
내가 학생이 되고 싶어서 학생이 되었나?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선택권은 없었다.
이 망할놈의 반항밖에는 말이다.
"학교가기 싫다는데 자꾸 왜그래!!"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알았기 때문에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안되겠다! 아부지오라 해야겠다!"
들으라고 한 말인지 독백인지도 모를 대사를 남기고 그녀는 내 방문을 열어둔 채 퇴장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담벼락에서 떨어지는 것도 몇가지 선택이 있다.
우아하게 고양이처럼 떨어질 것인지, 아니면 얼굴부터 시멘트바닥에 처박으며 떨어질지..
선택의 시간 30초
혼란스럽게 분비되는 고2의 호르몬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오기, 망할놈의 오기
하지만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학교에 가라는 것인지? 학생이면 왜 꼭 학교에 가는 것인지?
그 누구도 나에게 해답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무도 그 해답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30초가 지났다.
무거운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내 얼굴을 덮고 있던 두꺼운 솜이불은 바람에 날리는 신문지처럼 방 한 구석에 처박혔다.
그 남자다. 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여자와 사는, 그녀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은 그 남자.
키는 나와 비슷하지만 힘은 멧돼지만큼 강한 그 남자.
사실 난 그 남자의 힘이 부러웠다.
한번은 그 남자와 함께, 그 남자가 일하는 노가다현장에 간적이 있었다.
몰론 내가 선택해서 간 것이 아니다.
밴드에서 연주할 기타를 사기위해서였다.
거래였다.
기타를 사달라고 정중하게 땡깡을 부렸더니 기타를 사주는 조건으로 노가다현장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켰다.
그때, 그 현장에서 맨손으로 철근을 구부리는 그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가 내 이불을 날렸다.
"학교 가라"
그 남자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안가요"
"가라!"
"안간다니까!"
무서웠지만 그래도 질수는 없었다.
어디 져주면 덧나나?
져준다고 당신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은 꼭 나를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하다.
나도 지는 것은 싫다.
버틸때까지 버텼다.
그 남자의 목소리가 더욱 단단해졌다.
"가라, 안가면 뭐할려고 그러는데? 좋은말로 할때 가라!!"
"안가요, 가면 뭐하는데! 안간다니까!!!"
진심이었다.
사실 학교에 가냐, 안가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가고 싶으냐, 가야할 이유가 있는냐가 중요했다.
철근을 맨손으로 휘던 그 남자의 손바닥이 내뺨을 후려 갈겼다.
몸이 휘청거렸다.
'아이, 자존심 상해'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 남자의 힘이 부러웠다.
탄탄한 몸과 두꺼운 팔뚝
운동을 해도 내 몸은 쉽게 커지지 않았다
휘청거리던 몸의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당당하게 일어섰지만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며 소리질렀다.
"안간다니까! 나한테 왜 이러는건데"
"이 새끼가"
분이 풀리지 않은 그 남자는 앞마당에 뒹굴던 공사용 각목하나를 주워들고 뛰어들어왔다.
"책상에 다리 올려!!"
난 참 멍청했다.
학교가기 싫다고 반항한것 같이 다리 안올리겠다고 반항하였을 것을...
생각이 미처 거기에 닿기도 전에 내 몸은 습관처럼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엎드려뼏쳐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온 힘을 다해 각목을 휘둘렀고 각목은 웅하는 소리를 내며 내 허벅지를 내려쳤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프면 눈물이 나온다.
아니 무서웠다. 무서우면 눈물이 나온다.
하지만 내 유일한 선택인 반항은 포기하지는 않았다.
담장에서 떨어져 얼굴이 시멘트바닥에 처 박혔지만...
때리기를 마친 그 남자는 분이 조금 풀렸는지 포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을 나가버렸다.
뭔지 모를 성취감과 삭혀지지 않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질문들이 왔다.
'왜 학교에 가라는 것이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왜 나는 학생이지?'
'왜 난 이 집에 살아야하지?'
'왜 난 이 모양이지?'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침대에 걸터 앉아 있는데 다시 그 남자가 왔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뭔가 확인하려는지 묻기 시작했다.
"학교에 진짜 안가?"
"예"
"진짜지?"
"예"
그 남자는 창밖을 보며 뭔가 다짐한듯 긴숨을 들이쉬고 소리질렀다.
"학교에 안갈거면, 책이 소용이야! 다 태워버려! 필요없잖아, 다 태워버려!"
갑자기 소리를 질러 깜작 놀랐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지만 지금 이 싸움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지금 잘못했다 빌고 학교에 간다면 마지막 선택인 고귀한 내 반항마저 비루해지게 된다.
책장에 순서없이 어지럽게 꽂혀있던 책을 주섬주섬 모았다.
책, 참고서, 문제집...
막상 모아보니 책이 꽤 많았다.
두어번에 걸쳐 책들을 집 옆 공터에 모았다.
그리고 성냥을 들고 공터로 갔다.
책에 불을 붙이면 생각만큼 잘 타지 않는다.
책 몇 장을 찢어 동그랗게 만들고 거기에 불을 붙이면 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불길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책이 봉제된 쪽을 잡고 거꾸로 들어 책이 펼쳐지게 불을 붙인다.
이렇게 책 몇 권에 불을 붙이고 나면 불은 거세지고 불이 거세지면 그제야 책을 불에 던져 넣어도 된다.
활활 책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소소한 반항을 했지만 책을 태우는 반항을 처음이었다.
반항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었다.
뭔가 뿌듯했다.
막상 책을 태우고 있으니 이제 뭘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제 뭘해야할지 생각하며 불을 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그 남자는 더 이상 화날 수 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책이 없는데 책상은 뭐하려고! 책상도 태우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심장이 덜컹했다.
왠지 책상은 태우면 안 될 것같았다.
하지만 책이 없는데 책상도 필요가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말 없이 방으로 돌아가 덩치는 크지만 별로 무겁지 않은 합판 책상을 끌고 나왔다.
책이 타고 있는 불길위에 제물처럼 책상을 올려놓았다.
불길은 이내 책상으로 번졌다.
불이 너무 뜨거워져 근처에 있기 힘들어 몇걸음 뒤로 물러났다.
질문은 더 무거워졌다.
'뭐하지? 이제 뭐하지?'
책상의 형태가 사라질 무렵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이 없어지니 방이 제법 넓게 느껴졌다.
허전하기는 했다.
불길도 이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심한듯 물었다.
"그래, 이제 뭐할거냐?"
줸장, 하필 그 질문이냐? 학교에 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듯 이제 뭐해야할지도 몰랐다.
"모르겠어요"
"할것 없으면 노가다나 해라, 학교에 안가는데 일이라도 해야지"
화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흥분하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 화가 났었다.
그래서 노가다현장으로 갔다.
끌려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갔다.
3층짜리 주택공사 현장이었는데 흙을 3층까지 옮기는 일이었다.
보통은 힘이 좋은 어른들의 일이었는데 오늘 나에게 시켰다.
등에 메는 통에 흙을 잔득 채워 3층으로 옮겼다.
쉬지도 않고 옮겼다. 날씨는 추웠지만 땀이 났다.
두어시간을 일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너무 고프던 참이라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나도 그 남자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잠시 쉬고 있으니 다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뭐할거냐?'
이 질문은 사람을 참 무력하게 한다.
오후일이 시작되었고 오전과 같이 흙을 날랐다.
몸이 힘들어졌다.
새참을 먹으니 다시 힘이 났다.
그리고 계속 일을 했다.
몸이 아주 힘들고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지니 하루일이 끝이 났다.
집으로 가기 위해 그 남자의 차에 탔다.
틀림없이 그 남자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내일 뭐할거냐고.
나도 알고 싶다. 내일 뭐가 하고 싶은지
집에 가는길에 그 남자가 물었다. 일이 할만하냐고.
할만하다, 대답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 남자가 다시 물었다.
"내일, 뭐할거냐?"
"학교 갈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노가다를 하는 동안 이미 난 나와 타협을 하였었다.
앞으로 뭘 할지 당장 해답을 찾기힘드니 고민은 노가다현장보다 학교에서 해야겠다고...
그렇게 난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왔고 어머니가 차려놓은 저녁을 먹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얻어 맞은것처럼 아팠다.
걸을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아침밥을 먹고 너무나 가벼운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학교에 갔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쳤다.
다행히 고등학교에서는 아무도 내 생각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친구몇을 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선생은 나의 생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도 선생의 생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