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위하여...
“여긴 어떻게 왔어요?”
“잘 모르겠어요.” 수중발레를 신청하러 온 한 남자와 수영강사의 인터뷰, 면접이다.
이 외에도 남자수중발레가 무엇인지, 왜 온 건지 등 이것저것에 대해 질문한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의지력, 우아함, 리듬감 그리고 건강한 생활습관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할 수 있겠어요?” 잘 모르겠다는 알 듯 말듯 표정을 보이지만 다행히 합격이다.
질 를르슈 감독의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이다. 왜? 나는 인터뷰 형식의 의사소통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 블루 코로나 영향인지 나도 모르게 가벼운 코미디장르의 영화를 자주 찾게 된다. 그런데 영화를 읽다보면 가벼운 영화라도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무거운 사회 이슈를 가볍게 풀어내는 영화가 좋다. 감독의 기발하고 재치 있는 농담, 아이러니한 상황, 억지로 감동을 짜내지 않는 영화들이 종종 눈에 띈다. 영화〈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이 내게 그렇다.
남자수영발레, ‘남자수중발레=게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넘는 휴먼 코미디 영화다.
어쩌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주 종목인 수중발레를 위해 수영장에 모인다.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2년차 백수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베르트랑, 각지고 예민한 왕재수(회원들이 실제 그렇게 부른다)로랑, 손대는 사업마다 망하는 마이너스의 손, 사장님 마퀴스, 꿈만 좇는 짝퉁 데이빗 보위 로커 시몽, 나이가 많아 대출을 거절당한 서른여덟 살, 바질 등 가정생활도 직장도 미래도 캄캄한 어둠뿐인 벼랑 끝에 몰린 중년의 남자들이다. 자칫 눈물 짜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푸념이야기로 흘러 갈 수 있는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감독은 영리하다. 이런 걱정투성이 인물들의 상황을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로 삼는다. 어쩌다 중년, 옆집 아저씨, 남편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에 묘하게 공감이 간다. 나를 꿰뚫는 이야기 이야기.
찜질방 토크, 그들의 진솔한 대화는 연습 후 헐벗은(?) 공간 찜질방에서 이루어진다. 남들 앞에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는 속얘기를 탈탈 털어 고백성사처럼 이야기한다. 어떤 재미없고 지루한 얘기라도 괜찮다. 서로 비난하지 않기로 한 그들만의 원칙이 있다(물론 그 원칙은 깨질 때도 있지만). 찜질방 토크는 상처도 땀과 함께 흘러내려가는 치유의 시간, 힐링 타임이다.
오합지졸 수중발레팀은 원대한 목표를 세운다.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세계남자수중발레’에 프랑스 대표로 참여해 우승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었지만 스파르타 강사, 아만다의 불꽃 매질(?)에 우승을 목표로 극기 훈련에 돌입한다. 진짜 ‘노력’이 무엇인지를 거친 말과 행동으로 매운 맛을 보여준다. 반면 달링 강사, 델핀은 우아함과 리듬감을 위해 훈련 중에 부드러운 음악과 감성 시를 달달하게 읽어준다. 그들 안의 자연인, 여성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독특한 그녀만의 스타일이다. 매운 맛과 달달함이 만나면 대체 어떤 맛일까?
‘첫 여성들! 우리 우승했어요.’ 사진 속 두 여성이 어깨동무를 한 채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여성은 누구신지? 수영장 게시판에 붙은 남자 수중발레 모집을 위한 홍보 사진 속 여성들은 아만다와 델핀이다. 수중발레 환상의 콤비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한 명이 크게 다쳐 갑자기 팀이 해체되었다. 본격적으로 혼자가 되었다. 그 이후 둘의 사이는 서먹서먹해졌고 선수에서 수영장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협력에서 경쟁관계로. 그랬던 그녀들이 ‘세계 남자 수중발레 대회’ 참여를 계기로 다시 콤비가 된다. 강하고 부드러움, 동그라미와 네모가 ‘우리 우승했어요!’라는 성공의 신화를 다시 쓰기 위해 뭉친다. 물론 꿈같은 일이지만.
다름, 동그라미와 네모는 두 강사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남자 수중발레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특히 한 사람, 네모네모(심한 네모) 로랑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다혈질이다. 뜨거운 철강소에서 일한다. 가정생활도 엉망이고, 수영장 동료관계와도 각지고 뾰족하게 지낸다. 무슨 일이든 ‘안 돼!’가 입에 붙어 냉정한 현실을 꼬집기 일쑤다. 불안한 미래엔 희망도 없다. 세계 남자 수중발레 대회 참여 때도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꽥꽥 소리를 지르며 ‘노’라며 거부한다. 그렇다. 모두가 인정하는 ‘왕재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그를 배척하지 않는다. 또한 경계를 침해하지 않는다. 대놓고 왕재수라고 부르되 강습 후 호프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웃고 즐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름을 인정하고 경계를 존중한다. 그들만의 사람을 대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비주류로 냉대와 편견 속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실패자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픈 상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
롤라, 또 다른 네모 모양의 존재가 있다. 아직도 20대인 줄 알고 꿈을 좇는 몽상가, 삼류가수 로랑의 10대 딸이다. 어느 날 딸은 아빠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아빠가 데이빗 보위(70년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록 스타)야? 모두가 아빠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언제까지 꿈만 좇을 거야? 초라한 현실을 보라고!” 꿈을 좇아 캠핑카로 떠도는 신세에 학교 급식도우미 알바로 전전긍긍하는 아빠에게 일침을 가한다. 꿈은 꿀 수 있지 않느냐는 소심한 아빠의 독백. 그러나 사랑하는 딸의 몇 마디가 아빠에겐 상처와 자기발견, 일깨움을 준다.
어쨌든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그늘진 사회의 현실 비판과 날카로움 뒤에 곳곳에 킥킥 웃음 보따리가 있어서 좋다. 역시 유쾌․상쾌․통쾌한 코미디 영화다. 무거운 주제 속에 재미, 공감 그리고 메시지도 가볍게 담겨 있다. 그래서 나의 인생영화다.
어쩌다 벼랑 끝에 선 우리 중년이여, 꿈꿔라. 그리고 용기내 다시 시작하라!
“동그라미도 네모 틀에 들어갈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거”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다. 드디어 내 마음의 동그란 호수에 네모난 돌을 던진다. 나를 깨운다.
디제잉 오드리의 추천 노래 ABBA의 《The Winner Take It All♫》
문득 8년차 경력단절을 겪은 후,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40대 초반. 자격증 하나면 뭐든 다 될 줄 알았죠. 얼마 후 저는 서치펌(채용 서비스 회사) 헤드헌터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어쩌다 석세스! 뛸 듯이 기뻤죠. 그리고 다시 실패…실패… 때론 동료가 실패할 때 함께 위로해주었고 때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연속적인 성공에 마냥 기뻐해 줄 순 없었어요. 그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켜야 했죠. ‘나는 왜 안 될까?’ 그렇게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됐던 노래가 있어요.
아바의 노래 《The Winner Take It All♫》
승자는 모든 걸 갖는 거야.
패자는 저 아래로 떨어져.
그래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그래요.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요. 그러나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에요. 리그죠. 프랑스 남자 수중발레 팀이 수영장으로 간 이유처럼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어요. 인생 리그처럼!
지금 인생 벼랑 끝에 서 있는 당신, 여기 위로가 되는 노래 한번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