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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아작가 Jul 11. 2020

열 살 아들의 일기장, 아픈 날의 기억...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열 살 아들의 일기장아픈 날의 기억


열 살 아들이 엄마아빠께 보내는 편지

2006년 7월 3일 월요일, 제목: 아빠께

아빠, 오늘은 무엇을 하셨어요? 저는 칭찬을 받아서 기뻤어요. 아빠는 기쁜 일 있으세요? 기쁜 일 있으면 말해보세요. 엄마도 제가 칭찬을 받아 기뻐하세요. 아빠는 다음에 기쁜 일 있으면 말해주세요. 알았죠? 저는 오늘 학습지에 나온 내용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우애를 지키는 것이에요. 그 학습지를 자세히 써서 도장을 저만 2개나 받았어요.

하일올림


2006년 9월 16일 토요일, 제목: 엄마께 편지

엄마, 요즘엔 잘 못하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도 오늘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서 기분도 좋았고 행복했어요. 다음에도 내가 잘해서 칭찬 받고 싶어요. 잘은 안 돼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볼게요. 아빠는 너무 충격 받으셔서 나를 보는 척도 안하시지만 열심히 해서 엄마한테 칭찬 받을게요. 쉽진 않지만 노력할게요. 약속!

쓴 사람: 김하일, 받을 사람: 아주 친절한 우리 엄마

담임선생님: 하일이 정말 효자로구나. 그래! 어머니 아버지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니까 하일이가 그분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자. 요즘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선생님도 기뻐. 곧 성적도 향상 되리라 믿는다. 하일이, Fighting!!


초등3학년 아들이 쓴 일기장으로 열 살이 느낀 실패 후 노력과 기쁨에 관해 쓴 내용이다. 

아들은 에너지가 넘치며 재밌는 이야기로 남을 웃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 가족, 선생님, 친구,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함께 뛰놀면서 행복을 느끼는 밝고 활기찬 아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정반대였다. 한 마디로 맘껏 뛰어놀 수도 없고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답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슬픈 혼자만의 세상이었고, 열 살이 맛보는 인생의 암흑기였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생활의 중압감도 크고 일도 바쁜 맞벌이였다. 

나는 ‘워커홀릭 엄마’였다. 아동복 디자인 실장으로 맡은 바 책임이 무거운 자리였다. 회사의 기대와 일에 대한 강한 욕구로 더욱 일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고 간혹 밤 12시가 넘을 때도 있었다. 초등생 아들은 엄마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초등생 아들의 학교생활이 어떤지… 학교 준비물이 무엇인지… 알림장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면밀히 살피지를 못했다. 직장에서는 힘겨운 과정일수록 보람도 더 컸고 좋은 결과로부터 열정은 배가되었다. 하지만 가정생활은 완전 반대였다. 가정에서 사소한 집안일부터 아들을 챙기는 일, 특히 아들의 학교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안 좋은 결과로부터 엄마로서의 힘겨운 역할에 자괴감이 들었다.

직장에서와는 달리 가정에서는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일과 가정 사이에서 점차 균형을 잃었고 나의 30대가 세탁기에 뒤엉킨 빨래처럼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열 살 아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태권도, 수영 학원 등으로 시간을 채웠지만 방과 후 아들의 부족한 학습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료하고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아들은 혼자서 몰래 PC방까지 드나들기 시작하였고, 아들의 학급성적은 거의 바닥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성적부진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와 다투거나 예상하기 힘든 사고를 저지르는 등 크고 작은 갈등으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스스로도 기가 팍 꺾여 있는 상태였다.

‘과연 지금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남편에게 하소연 해 봐야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게 뻔했다. 실제로 그랬다. 좋은 의도로 대화를 시작했다가도 아들의 떨어진 성적 얘기만 나오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만약 학교에서 아들이 문제아로 낙인찍혔다는 말을 전한다면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불 보듯 뻔했다. “당장 직장 그만 둬! 당신 일이 먼저야, 애가 먼저야.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아, 이게 아닌데…. 

     

관심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는 아이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내게 아이는 서러운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달려와 안겼다.

“하일아,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3학년 부장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에 오시라고 해서 선생님 발밑에 무릎을 꿇게 한데요.”

아들은 그 말을 하면서도 몹시 두려워했다. 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슬러시로 바꿔 먹었어요.”

부장선생님은 깐깐하고 권위적인 선생님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권위 있는 선생님이라도 열 살 아이에게 부모를 굴복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것은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별력 부족한 열 살 아이가 한 철없는 행동이 그 정도의 상처를 안겨 줄 심각한 일이었을까?

“하일아, 엄마는 부장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리고 네게 해 줄 말이 있어. 앞으로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먼저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해. 오히려 잘못을 빨리 인정할수록 일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거든!”


하루 반나절을 고민한 후, 나는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아들의 학교생활 습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집과 학교에서 아들의 생활모습이 어떻게 다른 걸까?

약속한 그 날 오후, 선생님과 교실에서 상담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들의 걱정스런 부분을 조목조목 말씀하셨고 나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 숙여 사과드렸다. 그리고 아들의 긍정적인 점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렸다. “하일이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어 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죠. 부드럽고 독립심이 강한 아이에요.” 

이를 계기로 나는 부모로서의 올바른 역할과 학부모-아이-선생님 사이에서 상호작용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절실히 깨달았다.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을 잠시 휴직하고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관심 때문인지 선생님과 아들도 달라졌다. 알림장에 아들의 학교생활을 꼼꼼하게 적어주셨고 일기장에 피드백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들은 일기에 시시콜콜 일상 이야기를 편하게 써 내려갔고 이를 통해 선생님과 자연스레 소통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들에게 긍정의 힘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셨다.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바닥을 헤매던 아들의 성적은 3등으로 향상되었다. 선생님은 아들의 학교생활 태도 또한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하셨다. 특히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습관에 대해 칭찬해 주셨다.

     

어느덧 20.. 성장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6년 8월 9일 수요일, 제목: 바퀴

바퀴는 동그랗다. 어쩔 때는 자동차가 되어주고 또 어쩔 때는 그네로 도움을 준다. 너무 좋을 수도 있지만 안 좋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자동차가 폭발 할 수도 있고 그네 타다 넘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안전만 잘 지키면 자동차를 가게 해주고 그네를 탈 수 있게 해준다. 가끔은 우리한테 못되게 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착한 바퀴다.


다행이도 말썽쟁이 아들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한 아들로 성장해  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스마일 하일아(아들의 애칭),.. 혹시 네가 이 일기 쓴 날을 기억하니? 실패와 성공의 도서관, 네가 쓴 일기장은 우리 집의 작은 역사스토리로 내게 많은 교훈을 준단다.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 살아 움직이거든. 바쁜 워킹맘으로 알지 못했던 네 슬픔… 네 기쁨…. 네 글을 보면 ‘바퀴’와 ‘실패-성공’ 모습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단다. 실패의 기억도 슬프지 않게 성공의 기쁨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네가 쓴 착한 바퀴처럼. 네가 좋아하는 자동차 바퀴가 될지, 놀이터 그네가 될지는 네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어.

하일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줘서 미안해… 삶이 결코 쉽진 않지만 힘을 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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