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에서 맞는 두 번째 날,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없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전날의 피로도 말끔히 씻겼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눈길 끄는 곳에 머물며 여유 있게 보낼 예정이다. 걷다 쉬다 할 생각으로 유모차 없이 나서기로 한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며칠 사투하고 나니, 하루쯤은 유모차를 끌기보다 아이를 안는 게 나을 것도 같다.
산보하듯 가볍게 걷다가 문이 활짝 열린 상점과 서점에 쓰윽 들어가 구경했다. 우연히 아시아 마켓을 발견하고 라면 두 봉지도 킵.했다. 얼큰한 국물로 속이 데워지는 상상에 행복해진다. 딱 좋은 볕을 쐬며 둘레둘레 관심거리를 좇는 아이의 발걸음이 행복하다. 흐드러진 노란 꽃더미 옆 벤치에 앉아 잠시 지도를 펼쳐드는데도 행복이 차오른다. 어떤 조건이든 행복하기 딱 좋은 타이밍 아닌가.
여행 중에는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맞추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대신 식사 횟수는 줄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이동 중에라도 먹일 수 있도록 보온통에 누룽지를 준비하거나 주먹밥을 만들어 두었고, 평소에는 끼니로 취하지 않았던 간식도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먹게 했다.
오늘은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없는 날이라 점심시간에 맞춰 느긋한 식사가 가능했다. 마켓이 펼쳐진 마르크트 광장의 이모저모를 1등석에서 관람할 수 있는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앞서 뉘른베르크 추천 음식을 경험했으니 이번엔 '잘 아는 맛'으로 가자! 네 살이 되었어도 밥숟갈을 스스로 뜨지 않는 아이가 음식에 적극적인 모습이 낯선데 반갑다. 이색적인 분위기에서의 익숙한 한 끼는 나에게도 만족을 주었다.
밑으로 작은 천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생각지도 못한 쇼가 펼쳐졌다. 규모가 큰 키즈카페나 마술쇼에서 보던 비눗방울 퍼포먼스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도구들을 챙겨 자리 잡는 모습부터 지켜보고 있었던지라 곧바로 발탁?되어 비눗방울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의외로 주변이 한산해서 꼬마고객이라고 해봐야 내 아이와 사진 속 여자아이뿐이었다. 왜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자리를 펴셨지? 어른들만 바삐 다니는 길목이잖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사람이 없었나? 뭐지?
너무 좋았던 기억인 만큼, 뒤늦게 의문이 가득하다. 마치 우리를 위해 특별히 꾸민 무대였단 착각마저 든다.
조금 동선을 길게 잡아서 북적이는 광장 너머의 주택가까지 거닐어보자던 차에 때마침 아들이 발목을 잡았다. 용케 발견한 경사에, 연신 오르락내리락, 재미를 붙인 것이다. 바로 옆에는 우연히 맞닥뜨린 행운처럼 작은 플리마켓이 있었지만 초입에서 기웃거리다 돌아섰다. 더 직진해 걷고 싶은 남편과 주저앉아버린 아들 사이에서 나까지 원하는 것을 내세울 수 없어 체념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더 가지는 못하고 멀찍이서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 갔으면 어떻고 못 갔으면 어떠리!!!......는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고,
사실 당시는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다니' 몹시 아쉬웠다.
아이와 함께 즐겼다면 내가 저 경사로 중턱에 쭈그려 앉아 웃고 있었겠지. 남편도 멀뚱히 서서 쳐다보고만 있진 않았겠지.
다리도 쉬고 당도 보충할 겸 카페에 들어갔다. 훈훈한 기운에 나른해져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됐는데 그러는 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상황 대처에 능한 우리의 스케줄 케어 담당자는 '우천 시 플랜'을 가동해 차후 일정을 조정했고, 장난감 박물관을 제안했다. 아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닐 게 뻔해서 솔깃함은 1도 없었지만, 비와 아이를 고려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물먹은 솜만큼이나 무거운 발을 뗐다. '언제 또 여길 오겠어.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지.' 피로가 쌓인 여행자에게 한 번씩 찾아오는 고비를 흔한 레퍼토리로 타파해본다.
장난감 박물관은 다행히 시도할 만한 거리에 있었다. '비싸이로 막까'처럼 열심히 뛰었지만 얼추 젖어 찝찝한 채로 당도했다. 너의 세상이다~ 신나게 놀렴~ 지치고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다. 아이의 만족은 곧 내 만족이기도 하니까. 어디 탐색을 시작해볼까?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네 살 취향을 저격한 기차와 트렉을 발견했다. 애써 눈뜬 내 호기심은 다시 갈 곳을 잃었고 아이는 한참을 빠져 놀았다. 아이를 지키느라 얼마간 떨어지는 것조차 못하고 옆에 앉아 마냥 기다리자니, 금세 지루해졌다. 아이가 트렉을 벗어나고서야 한층 한층 올라가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한적이었다. 남편은???
박물관에 입장하기도 전에 화장실을 이유로 떨어져 나간 남편은 (내 체감상) 긴~~~ 관람이 다 끝나고서야 나타났다. "여기도 이렇게 좋은 화장실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다녀온 거야!?!" 어버버 얼버무렸던 남편 대신 그에게 딸려갔던 사진기가 알리바이를 확인해 주었다. 근처에는 '뒤러의 하우스'가 있었던 것이다. 뒤러가 뉘른베르크 사람이구나. 뒤러의 작품으로 '토끼 수채화'가 유명하단다. 사진엔 토끼가 노란 눈을 부라리며 널브러져 있다. 직접 봤다면 흉물스러움대신 작품성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놓친 것처럼 아쉬움이 과해졌다.
뒤러의 집을 못 가본 것보다 남편이 말도 없이 혼자 들렀다온 게 더 괘씸했다. 예민하게부푸는 아쉬움과 아이 데리고 혼자 분투한 억울함이 뒤섞였다. 째려보고 툴툴하니 그저 외관만 보고 왔다며 멋쩍어한다. 작정하고 간 건 아니라니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래, 돌아서며 아쉬웠겠다. 동질감이 느껴지니 더 이상 으르렁댈 것도 없었다. 마음에 자꾸 차오르는 불만족을 점검하라는 하늘의 신호를 감지한다.
나의 관심사는 저거지 이게 아니라구!
명확하게 선을 그어버리는순간 눈 앞의 현재에는 무성의하게 됨을 체감한 하루다.
나는 일상 대신 일탈을 기대했는데!
여행 중에도 부디 일상적으로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떠나오지 않았던가.
아이의 만족이 곧 내 만족이라고 포장하면서 피해의식을 야금야금 키웠다는 걸 인정했다. 타협하고 포기할 때마다 들러붙는 아쉬움과 박탈감을이대로 달고 다닐 순 없다. 내 안의 무언가가 수정되어야 했다.
그래, 나의 관심사를 확대하자. 나의 관심사를 플리마켓이나 유명 예술가의 흔적으로 좁히지 말고 '우리가 함께 있는 이곳의 모든 것'으로 펼쳐내자.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대상에 집착하는 대신 여기에 머무는 매 순간의 특별함, 그 자체에 감사하자. 아이는 이렇게나 건강히 즐기고 있고, 남편은 가족의 안락한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이국의 풍경 속에 있지 않나.
닿지 못할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닿아있는 모든 것에 감각을 열고 만끽하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의 내게도 실천을 요하는 말이다.
박물관을 나설 때는 비가 그쳐있었다. 신나게 하루를 불태운 아들은 아빠에게 안기자마자 밤잠에 빠져들었다. 여행 3일 차, 아이의 생체리듬은 꿋꿋이 자기만의 패턴을 고수하는 중이다. 반면 거의 90% 시차적응이 된 나는 이제 슬슬 아쉬워진다. 이렇게 밝은데 숙소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새 정들어버린 뉘른베르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드레스덴으로 이동한다. 새로운 기대로 서운함을 밀어내며 겨우 발길을 돌린다. 숙소까지 꽤 긴 길을 아이를 안고 묵묵히 걷는 남편이 든든해진다. 들어가서 라면 두 봉으로 속도 든든히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