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드레스덴!

신호가 바뀔 때마다 너에게 반하겠어

by 전UP주부





두 번째 기차 여행. 첫 번째보다는 덜하지만 긴장의 여지는 남아있었다.일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드레스덴까지는 꽤 긴 거리여서 아침 일찍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섰다. 변수가 될 아이의 반응을 최대한 살피는데, 다행히 기차에 대한 흥미가 꺼지지 않았다.


웃는 사진 한 장이 두 시간 남짓한 이동시간을 통으로 대변할 순 없지만,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봐도 특별히 난감한 해프닝은 없었다. 창밖을 구경하고 아빠의 장난에 웃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다 지루해질 즈음 잠들었다. 아들은 아직 '정적 모드'였다.





그리고 기차역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동적 모드'로 탈바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레스덴 기차역에서 메인 상점들이 자리 잡은 번화가의 초입까지는 확ㅡ트여있어 그야말로 광활했다. 초원을 널뛰는 망아지처럼 온몸으로 활보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긴 시간 기차도 잘 타고 왔겠다, 이후로는 시간에 쫓길 일도 없겠다, 한바탕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두었다. 드레스덴의 숙소는 기차역과 가까우면서 찾기도 수월한 체인 호텔이었다. 일정에 부담이 없으니 아이에게도 넉넉해졌다.


그런데 슬슬 허기가 차오른다. 이동 중에 주전부리했지만 점심이 미뤄진 채였다. 체크인 시간도 여유 있게 남아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업된 상태인 아들은 식당에 가만히 들어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카페 메뉴가 아닌 카페 구조만 보고 일단 자리를 잡았다. 안팎이 오픈된 카페에서 안팎을 오가는 아이를 번갈아가며 케어하기로 한다.






카페에서 데워서 내놓은 스파게티는 맛이 영 별로였다. 아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에만 온 신경이 반응할 뿐, 스파게티는 나의 미각을 조금도 깨우지 못했다. 반면 남편은 음식이 서빙된 후로 아이보다 눈앞의 음식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평소에도 끼니를 좀체 거르지 않는 남편의 의지는 여행 중에 좀 더 투철해진다. 맛이 덜한 음식도 에너지원이 된다면 곧잘 섭취한다. 우걱우걱 잘도 먹는 그가 얄밉기도, 동물스럽기도 했다. 그래, 이후의 일정을 위해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도 가족을 위하는 일이긴 하지. 내키지 않지만, 아이는 내가 전담 케어하는 걸로.


호텔에 들어와 짐을 부려놓은 후 아이의 식사를 챙겼다. 저녁이 되기 전에 잠들 아이에겐 오늘의 마지막 식사였다. 늦은 오후, 새로운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이대로 늘어져 쉬려는 몸의 관성을 이겼다. 간단히 채비 후 산책을 나섰다. 가까운 주변만 둘러볼 생각으로 유모차는 끌고 가지 않는다. 일정에 쫓기지 않을 때는 두 팔을 휘저으며 두 다리로 걷고 뛸 기회를 가능한 더 주고 싶다. 유사시엔, 에너지 완충한 아빠가 안든지 업든지!





구름이 잔뜩 깔려있는 날씨는 가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들뜨지 않고 장소가 머금은 역사를 반추하기 좋은 날씨였다. 독일의 피렌체라는 명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상당 부분이 폐허로 변했었다는 과거는 건물들의 그을음으로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전쟁의 상흔을 복구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을 시간도 그을음에 녹아있었다. 지난한 시간을 견딘 드레스덴은 다시 사랑받는 도시가 되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가 올까 우려했지만 구름빛이 밝아지는 분위기다. 내친김에 엘베강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내 차도를 옆에 끼고 걸어야 해서 아이는 한껏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였다. 마침 엘베강 둔치를 내려다보니 드물지만 인적이 확인된다. '한강 고수부지'같은 친숙함에 끌려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목으로 향했다.





미관을 위해 애써 가꿔놓지 않은 너른 풀밭이 다 아이의 놀이터였다. 풀밭 위를 총총 뛰어다니다가 들꽃을 만지며 놀았다. 자연이 아이를 케어하고 남편이 조금 거드는 사이, 나는 잠시나마 강변의 풍광에 젖어들 수 있었다. 앵글을 조금 달리했을 뿐인데 강물과 나란히 서서 올려다본 도시는 또 새로웠다.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장소에서 어느 때보다 편안했고 두근거렸다.


아이의 기쁨이 가장 충만했던 시간은 아빠와 달리기 경주를 할 때였다. 수돗가에서부터 엄마가 있는 데까지,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는 듯 뛰어오는 아이를 본다.

일상 같은 여행의 맛이 이런 건가?

한강변을 연상시키는 엘베강변에서 지극히 범상한 시간을 보내며,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꼭 외국이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행복할 조건은 똑같아 보였다. 그러니 나는 이 여행이 끝날지라도 행복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는
초록 풀밭 위 어디에나
제 멋 그대로 피어있는 노랑 들꽃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독일에서의 세 번째 도시,

드레스덴만의 첫 느낌을 환기해본다.


건물들을 덮고 있는 잿빛의 여운
구름 낀 하늘도 괜찮은 나름의 운치
내가 사는 곳과 닮은 익숙한 구석


아! 그리고

신호등에 붙박아놓은 유쾌한 낭만!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의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초록신사여,

이것이 그대 생의 이유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