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낀 드레스덴도 운치 있고 좋더라....는 내 말은 100% 솔직함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었나 보다.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드러낸 드레스덴은 눈부셨다. 파랑을 더 푸르게, 초록을 더 싱그럽게, 금빛을 더 화려하게 만드는 볕의 향연에 반해버렸다.
오늘은 철저히 파워관광러가 되어 구시가지의 관광 스폿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도보로 혹은 노랑 전차로 가볍게 이동이 가능한 동선이지만 하루를 길게 써야 하므로, 중간중간 피곤할 아이를 생각해 유모차를 챙기기로 한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츠빙거 궁전이다.
궁전의 안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과연 오늘 내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부터 염려해야 했다.
아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급기야 박혀있는 돌까지 수거해 분수에 파동을 일으키는 놀이를 거듭했다.
그렇게나 재밌을까. 어떻게 설득했을까.
아마도 '한 번의 타협, 한 번의 보상' 수법을 써먹었겠지.
타협에 응한 아이를 데리고 겨우 궁전 내부에 들어갈 수는 있었던 것 같은데, 느긋한 관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기억에 남은 잔상이라고는 여기저기 다니려는 아이를 좇아 계단을 오르고 내리던 장면, 보수 중이라 복잡해진 길을 뚫고 화장실이 급해진 아이를 엄호하며 심장 쫄리게 이동하던 모습 따위다.
츠빙거 궁전을 나서며 드디어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북적이는 인파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고 넓고 열린 공간이 그리워졌다. 오후의 일정을 정비하기 위해 일단 카페에 들렀다. 아이의 보상을 위해서도, 오전 내 하루치 당을 모두 써버린 엄마 아빠에게도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한차례 먹고 쉬니, 호랑이 기운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관광할 의지가 생겼다. 하지만 선뜻 실행될 수는 없었다. 아이의 의지는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저, 유모차를 밀고 싶어 했다.
달구지 끄는 소를 몰고 가듯, 유모차 미는 아이를 몰고 직선으로 뻗은 가로수길을 걸었다.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 사이로 적당한 볕이 드리워진 돌바닥 길을 걷자니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자연보다는 문명에 감탄하고 싶었는데.....조금 아쉬워질 즈음, 짠! 길의 끝에 ‘아우구스트의 황금상’이 나타났다. 우리의 능력 있는 스케줄 케어 담당자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관광병이 도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앞은 보지 않고 굴러가는 바퀴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네 살 드라이버가 여기저기 부딪칠 우려 없이 운전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를 회상하자니, 앞선 계획이나 사전 정보에는 큰 관심이 없이 현재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데만 최선인 내 모습이 어째, 유모차 끄는 아들과 닮아 보인다. 남편이 대략의 스케줄을 미리 공유했을 텐데도, 난 늘 새롭게 보고 듣는 것처럼 굴었다.
그때는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필요하다 여겨지는 것을 제외한 모든 정보는 내게 복잡하고 성가신 것일 뿐이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새어들 틈이 없었다. 보게 되는 것들에 그때그때 반응하는 게 쉽고 편했다. 먹고 자고 싸는 아이의 스케줄에 철저하기 위해 그 외의 것들에서 나는 일체 힘을 뺐고, 내가 힘을 뺀 지점을 감당하는 남편에게 온전한 신뢰를 주었다.
아이라는 존재가 생기기 전, 둘이서 다녔던 무수한 여행의 기억과 크게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여행 프로그램에 내가 가본 곳이 나오면 반갑다가도 '저기서 싸웠었지'하며 이내 씁쓸해질 정도로, 좋은 곳을 다니며 많이도 다퉜었다. 그 시절 우리의 여행은 철저히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에 의해 나의 욕심과 기대가 온전히 채워지기를 바랐던 이기적인 여행자를 바꾼 건 아이였다. 아이와 동행하는 여행길에서 우리는 보다 이타적인 마음을 먹고 한층 성숙하게 행동했다.
상대의 수고를 인정하고 상대의 선택을 신뢰하며 서로를 지지해 주고 있었다.
신뢰를 따라 흘러 흘러 온 여기는 어디?
사실 드레스덴은 지인이 이민을 가 살고 있는 도시였다. 여행 중 만나볼 수도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지인 가족은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가 그 집이려나, 이 동네에 살고 있으려나 넘겨짚는 재미로 주택가의 한적한 길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멈출 타이밍을 결정한 건 아들이었다. 여기가 마침내 우리가 당도할 곳이었다는 듯, 유모차에서 내려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주민들의 차량이 정렬돼 있고 보도에도 차도에도 관광객의 발길은 닿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잡풀을 양손 가득 뜯는 것부터 아이의 행복은 넘실 차올랐다. 아빠를 향해 힘껏 던질 생각에 통통한 손아귀가 희끗하며 단단해진다. 아이의 손을 떠난 풀들은 힘없이 흩어지기 일쑤였지만 대단한 치명타를 입은 듯하는 아빠의 오버액션은 아이를 연신 깔깔거리게 했다. 극도의 만족감에 취한 아이의 웃음이 풀향기와 함께 사방에 흩날리고 있다.
그래도.....오늘만큼은 자연보다는 문명에 감탄하고 싶었는데.....다시 조금 아쉬워질 즈음, 문명을 향해 길을 나서기로 한다. 아빠를 잡느라 한낮의 활력을 불태운 아이는 순순히 유모차에 올랐다. 드디어 관광으로 관광병을 치유할 시간. 관광지가 몰려있는 구시가지로 다시 진입해 눈호강을 해본다. "저건 무슨 건물이야?" 내가 아이 같은 호기심을 던지면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질문이 쌓일수록 나도 모른단 대꾸가 늘어간다. 아빠와 내비게이션 사이를 오가며 최선 중인 남편에게 가이드 역할까지 기대하는 건 미안한 일이다. 그냥 하던 대로, 현재를 감각적으로 수용하기로 한다.
즐기는 만큼 피로가 몸집을 부풀린다. 아이는 타협하기를 멈추고 나는 맞춰주기를 멈추게 된다.
프라우헨 교회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고, 우리도 가능하면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기다림의 능력이 짧게 한정된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나와 남편이 빨리 체념한 것과 달리 아이는 그러질 못했다. 들어가겠노라며 입구에 다리부터 쭉 뻗어 올렸다. 기다려서라도 들어가자 싶어 안내문구를 확인했는데, 이런, 유아는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다. 못 들어간다는 말에 아이는 통곡을 하며 뻗대기 시작했다.
그냥 그런 타임이 온 것이다.
제 맘대로 놀린다 해도 아이는 계속 짜증을 낼 것이었다. 아이 뜻에 사사건건 맞춰줄 여력은 없고, 떼쓰지 말라며 혼내는 건 더 기운만 빠지는 일이다. 경험상 이럴 땐 아이가 울면 그냥 울도록 두는 게 나았다. 한차례 울고 감정을 쏟아내면 서서히 기가 꺾이고 온순해졌다. 다만, 아이가 에너지를 쥐어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동안을 잘 참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투였다.관광지 한복판에서 말이다.
아빠에게 안겨 아빠 어깨에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니, 이제 됐다 싶다. 눈두덩이 붉어져 안쓰럽다. 곧 잠들 것 같아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구나 했는데, 잠들 생각이 없는 아이는 금세 컨디션을 회복하고 아빠품에서 내려와 다시 몸을 썼다. 그래, 한 가지를 못했으니 한 가지를 대신 하자꾸나! 이번엔 엄마가 나서서 놀아준다!
날이 저물도록 찾아다닌 유명 관광지의 이모저모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유모차를 끌었던 곳, 풀을 뜯고 던지며 한바탕 신나게 논 곳, 돌멩이를 던지고 놀았던 분수, 서럽게 울다 그쳐 다시 까르륵댔던 곳의전경과 느낌은 생생하다.
아이로 인해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 곳만이 정성스레 기록돼 있다. 그런 장면들만이 내 인생의 중요한 한 페이지에 남을 수 있었다.
이날은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드레스덴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와 어둠을 기다렸다. 어둠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는 설렘이라니. 주중에도 보고 싶어 안달하던 연애 초기, 어둑해지는 풍경을 보며 퇴근시간에 맞춰 애인을 만나러 갔던 길의 설렘과비슷했던가.
드레스덴의 여정도 이렇게 마무리되어간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이 여행이 무탈하기 바라는 한 마음으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우애가 이런 느낌일까? 이토록 다툼 없이 했던 여행이 있었던가 싶게, 우리는 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