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을 떠나 국경을 넘으면

마침내 프라하의 밤

by 전UP주부



여행 6일 차, 전체 일정 중 절반이 지났다. 남은 절반의 시작인 오늘 독일을 떠나 프라하로 간다.

제주도에 여행 가면 꼭 떠나는 날 하늘이 반짝반짝 더 빛나 보이듯, 드레스덴의 마지막 아침도 그러했다. 떠나는 이의 안녕을 빌며 말끔한 얼굴로 진심을 다해 배웅해 주려는 듯했다.

드레스덴과 찐ㅡ하게 작별하기 위해 구시가지까지 긴ㅡ산보를 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는 열린 문보다 닫힌 문이 더 많았다.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기대하며 카페의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나오기를 여러 번, 마침내 적당한 곳을 만났다. 1층의 바 테이블은 일찍 집을 나선 직장인들의 차지였다. 출근 전 커피 한 잔에 오늘의 뉴스를 곁들이고 있었다. 2층은 좀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이 적당히 아늑하고, 큰 창을 통해 드레스덴의 아침이 쏟아져내리는 곳이었다. 우연히 찾아든 곳이 이렇게 마음을 쏙 빼앗을 때는, 그저 축복 같다.


여행 중 잘 놀고 잘 자는 아이는 잘 먹기도 했다. 이런 것도 유전인지, 식욕이 다른 욕구들보다 결코 크지 않은 아이다. 덕분에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먹는 장점도 있지만, 나서서 먹지 않아 먹이는 일이 많으니 밥시간이 고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가 여행 중에는 줄곧 '달려들어' 먹었다. 물론 '한국식 밥'이 아닌 '서양식 밥'을 먹을 때에 한정된 일이었지만. 아이가 두 손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와구와구 먹는 모습은 우리 부부의 얼굴에 절로 미소를 띄웠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나선 길이었지만, 모든 시간은 드레스덴과의 작별 의식이기도 했다.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마침 지나게 된 알트마르크트 광장에는 가을 마켓이 열려있었다. 자잘한 소비의 재미와 낭만 때문에 마켓 구경을 즐기는 내게 참으로 선물 같은 광경이 아닌가! 겨울이면 이곳에서 꽤 큰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고 한다. 유명세에 이끌려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일 모습을 잠시 상상해본다. 아이를 데리고 감히 인파 속으로 들어설 엄두가 안 난다.





다행스럽게도 눈 앞의 마켓은 한산했다. 서둘러 앞서가는 아이를 멈춰 세울 것도 없이, 호기롭게 구경을 시작한다. 사람들을 헤치고 바짝 다가서지 않아도 마켓의 모든 것에 시선이 닿는 한가함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으로 맘 편히 아이쇼핑을 즐기기에는 적잖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1:1로 마주하고 서있는 판매자의 눈길을 빠져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 때 비싸지도 않고 보암직도 한 물건을 발견하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호두 까는 소품을 몇 개 구매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누가 호두를 직접 까먹냐고 한마디 하는 남편에게 정성껏 대꾸했다. "그러니 정말 '기념품'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지 않겠어? 버섯모양으로 귀엽게 생긴 것 봐, 게다가 원목이잖아!" 쓸데없이 합리화가 길어진다. 그냥, 이게 내 낭만이다, 간단히 말하면 될 것을!





내가 마켓에서 낭만을 찾았듯, 남편은 서점에서 낭만을 찾았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중앙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도 서점에 들르는 걸 빼놓지 않았다. 독일에 온 기념으로, 그리고 독일을 떠나는 기념으로, 그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사 주었다. 독일어 까막눈이 구매한 독일어 동화책은, 내가 산 호두까기 소품만큼이나 '기념품'으로서만 기능할 것이었다. 음, 당신도 낭만을 알긴 아는군. 우리가 닮은 구석이 아주 없진 않은 모양이다.


동화책은 귀여운 캐릭터들이 심상한 하루를 보내는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덕분에 독일어를 몰라도 충분히 구연이 가능했다. 현장감 있게 달려있는 플라스틱 시곗바늘은 손가락 액션까지 넣어가며 다채롭게 읽는 데 한몫했다.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기초를 배운 이력이 있는 나는, 보란 듯이 '구텐 모르겐! 구텐 탁! 구텐 아벤트!' 아는 체를 하며 좀 더 생동감 있게 뽐낼 수 있었다. 독일어 책 한 권을 떼고 남은 건 단 세 마디인 건가. 내가 아는 단어를 수색하느라 딴청을 피우는 사이 아이의 관심도 제 갈 길을 갔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도시 간 이동은 계속 기차를 이용하고 있다. 오늘은 국경을 넘는 기차여행이다. 뭔가 새로운 절차가 있을 거라 기대할 법도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간혹 검표원이 지나가며 티켓과 여권을 확인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간단히 확인시켜주면 된다. 독일의 도시들을 지나온 여정과 별반 다르지 않게 독일과 체코의 국경을 넘었다.


다른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앞선 두 번의 기차여행과 달리 우리에겐 여유라는 게 생겼다. 아이에게 움직임을 허용하니, 놀 거리를 알아서 찾아간다. 세 번째 기차여행은 다음 여정을 위한 참 휴식이 되어주었다.





드레스덴에서 프라하까지는 기차로 두 시간 반이 채 안 걸린다. 오늘도 이동하느라 점심이 늦어졌다.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주린 배를 채우러 일단 나섰다. 같은 건물 1층에 식당이 있기에 '아무거나 먹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들어선 거지만, 마침 한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이어서 익숙한 음식들로 든든히 챙겨 먹을 수 있었다. 그제야 여기가 프라하라는 특별함이 차올랐다. 먹고 싸는 문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급선무라는 걸 체감했다.



여행이 깊어질수록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
건강히 완주할 수 있다는 걸 새긴다.


본능을 해결했으니 관능을 자극하는 곳으로 나서볼까? 오랜 로망이었던 프라하의 밤을 만나러 간다. 아이는 잠에 빠져들고 나는 감상에 빠져들기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를 밤의 프라하 만끽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딱 하루치의 어둠이었다.

무엇으로 낭만을 실현해볼까?

거리의 화가가 솜씨를 부려놓은 작품들에 눈이 홀리기도 하고

상점 천장에 대롱대롱 걸린 목각인형에 군침을 흘리기도 했다.

음, 낭만 치고는 너무 비쌌다.


넘치지도 남루하지도 않은 여행자의 주머니에 딱 어울릴 낭만 하나를 챙겼다.

더 바랄 것이 없는 밤이었다.



열 살 된 아들 & 프라하의 낭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