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남편의 학위과정은 계획대로 잘 마무리되었는데,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아쉬웠다. 고생하며 성취한 1년에 대해 자위하고 자축할 시간이 간절했고, 본격적인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재충전도 필요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은 이유만큼 충분치 못했다. 가진 돈은 학비와 생활비로 다 털리고 이제 갓 유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주제에 쉽게 할 결정은 아니었다. 꽁꽁 아껴둔 비상금을 건드려야 가능한 일이었으니 조금 무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그 상황을'비상시국'으로 받아들이는 데 합의했다. 비상(非常)금은 결정적인 순간 비상(飛上)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자, 그럼 어디로 날아가 볼까?
특정 기관에서 매년 삶의 질을 기준으로 전 세계의 도시들을 순위화해 발표하는데, 관련 기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헤드라인이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래? 그럼 우리도 한번 살아보자!"
2010년 가을, 빈에서의 한달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유학생 신분으로 팍팍하게 생계를 꾸렸던 곳에선 서브웨이 샌드위치 반개를 나눠먹고서 입맛을 다셨던 기억이 처량하기만 하다. 반면 여행자 신분으로 풋풋하게 거닐던 빈을 떠올릴 땐 제일 싼 맥도널드 햄버거를 주문하고 스몰사이즈 커피를 아껴 마시던 순간들이 다 애틋하다.
머문 시간만큼 깃든 추억이 많아서, 이틀 동안 얼마나 즐길 수 있으려나, 어디를 먼저 가야 하나,설렘이 졸음을 내몰아 밤이 자꾸 길어진다.
아침이 밝았어도 들뜬 마음은 한동안 더 봉인해 두어야 했다. 서둘러 숙소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숙소를 예약할 땐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는데 현지에서 문의하니 시내에도 숙박 가능한 호텔이 있었다. 외곽에 위치한 이 호텔에서 2박 3일을 더 묵기엔 동선이 꽤 불리했다. 남은 여정의 편의를 위해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기로 하고 숙소부터 옮긴다.
때문에 마음은 더더욱 안달이 나있는 상태다. 새로운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드디어! 비로소! 야심 차게 길을 나섰다. 유모차에 앉을 생각이 없는 아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중에 이런, 버스정류장까지 절반도 이르지 못한 지점에서 또 한 번 발이 붙들렸다.
길 옆으로 문득 넓게 내리깔린 푸르른 잔디가 펼쳐지기에 눈이 쉬어가는 사이, 아이는 벌써 인도를 벗어나 야트막한 경사의 풀밭을 내달려갔다. 그 길 끝에 놀이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행하는 내내 문명과 자연을 적절히 체감하긴 했지만, 놀이터는 처음이었다. 집 떠난 후 일주일 만에 만난 놀이터가 반가울 법도 했다.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적당히'는 이번에도 빗나갔다. 아이는 '충분히' 즐긴 후에야 길을 나서 주었다. 본격적인 관광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나 더디고, 이색적일 줄이야.
사실 2010년의 빈에는 놀이터가 없었다. 화려한 문화예술 유산에 이끌려 오페라극장을, 박물관과 미술관을, 음악가들의 자취를 좇아 다니던 그때. 우리가 걷는 길, 우리가 보는 곳에 놀이터는 없었다. 아이라는 새 가족 구성원이 생기기 전, 우리에게 그것은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아이 덕분에 들르게 된 동네 놀이터는 자연친화적이고 사람친화적인 빈의 매력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해 두고 마음이 바빠진 여행자를 불러 앉혀, 풀냄새도 맡아보고 해먹에 누워 하늘도 보며 쉬엄쉬엄 가라고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가야 할 그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여행의 목적임을 상기해 주려는 듯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교회 근처에라도 가기 위해 동선을 짰다. '교회가는 날'을 그렇게라도 '기억'하자는 나름의 의지로 가장 먼저 찾아간 곳.
내 추억 속 카를 성당은 땅을 디딘 성당과 물에 비친 성당이 정확한 대조를 이루는 장관이었다. 물 위에 복사된 세상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고개를 들고 내리며 번갈아 보다가, 짓궂은 바람이 물을 휘저어 하늘과 구름과 성당을 흔들어놓을 때라야 '답 없는 틀린그림찾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남편과 사진 찍고 놀며 쉬어갔던 추억의 장소에서 아들과도 의미 있는 포토타임을 가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요놈, 못 둘레를 따라 원을 그리며 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좀체 멈출 줄을 모른다. 억지로 안아올려 찍어보지만 2010년의 멋을 조금도 재현할 수가 없다. 엄마가 또 욕심을 부렸구나~ 그래~ 그냥 놀아라~
오늘은 '놀이터의 날'인가 보다. 놀랍게도(!) 카를 성당 주변엔 놀이터가 두 개씩이나 있었다. 이곳에 놀이터가 있었다고?? 진짜??? 놀이터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남편도 나도 아니었다. 아이에겐 놀이터를 발견하는 DNA라도 탑재돼 있는 걸까?? 마침 주말이라 놀이터에 나온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오랜만에 또래들과 섞여 놀며 아이는 더 흥이 났을 것이다. 아빠 키높이의 놀이터 구조물 끝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바닥이 폐목재로 푹신하게 깔려있었기에 다치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부터였다. 내 아이를 받아안은 빈의 놀이터에 시간도 마음도 온전히 내어주게 된 건. 아이가 이쪽저쪽 놀이터를 오가는 동안 오늘의 일정은 한없이 미뤄졌음에도, 그래도 다 괜찮았다. 이것이야말로 2015년 버전의 색다른 빈을 경험하는 일이었으니!
아이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여행에서는 다른 것들이 보이고, 다른 것들이 경험된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불태운 아이는, 마치 보답이라도 하듯 엄마 아빠에게 꿀 같은 시간을 안겨 주었다. 그럴싸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차분하게 점심을 먹었다. 여행 중 최초이자 최고였던 만찬이 끝난 후에도 아이는 깨지 않고 꿀잠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박물관도 도전해볼까? 도보 거리에 위치한 알베르티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절반의 관람은 여유 있게, 절반의 관람은 잠에서 깬 아이와 함께 했다. 비록 일부 미술 전시만 보고 나와야 했지만, 멋진 점심과 전시 관람까지, 아이가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이젠 엄마 아빠가 너에게 선물할 차례.
마차에 올라타니 타닥타닥 리듬에 맞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출발한 마차는 블링블링한 케른트너 거리를 빠져나와 오페라하우스와 왕궁까지 눈에 익은 곳곳을 지나간다.
남편과 나 둘 뿐이었던 그땐, 마차를 배경으로 사진은 무수히 찍었어도 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우리는 두 발로 구석구석 다닐 만큼 시간이 충분했기에, 굳이 마차를 타고 몇십 분 내로 관광을 해치울 필요가 없었다. 뭣보다 너무 비싸서 호갱들이나 타겠거니 했던 것이다.
단지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한 마차투어는 짧은 시간 동안 추억을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저런 무드에 취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나도 모르게 마차 탄 유세를 하고 있었다. 유치하게도 나는 연신 신이 났다. 호갱이 되어 큰돈을 썼지만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