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의 빈이라서 그래

오후 일정을 꽉 채운 관광, 관광, 관광

by 전UP주부



이별할 시간에 성큼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더 깊이까지 생각하게 된다. 벨베데레 궁전까지는 이동거리가 꽤 된다. 아이도 곧 잠들 모양이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를 보며 상념에 빠져들기 좋은 시간, 빈과의 처음을 떠올린다.






2010년 가을, 숙소 안에 한 달치 살림을 정돈해 놓고 이제 갓 빈 라이프를 시작했을 때다. 어느 상점에 들러도 필요한 소통은 간단한 영어로 가능했으며, 언어가 유창하지 못한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엔 무례함이 없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콧대 높은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언어 때문에 나는 수차례의 굴욕을 겪어야 했는데, 빈에 오자마자 격이 다른 환경을 접하면서 자연히 긴장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서유럽보다 동유럽이 나의 정서와 훨씬 잘 맞는다는 결론까지 내리며 오스트리아에, 빈에, 마음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행객으로 한 달을 머무는 동안, 빈은 일상의 만족도가 진정 높은 도시라는 걸 체감했다. 깨끗하게 정비된 거리, 적당히 친절한 사람들, 과하지 않은 물가, 근거리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녹색 힐링 공간, 정갈하게 구획된 도심 곳곳을 편리하게 연결하는 교통 같은 것들이 삶의 기본을 안정적으로 충족시켜줬다. 그런가 하면 잘 보존된 건축과 자연 유산, 접근성이 높은 고퀄리티 문화예술, 천재 음악가들의 고향답게 샘솟는 음악적 생기 등은 삶에 하이라이트를 부여해줬다.






긍정적인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 있으니, 연상되는 장점들을 애써 추려내도 이 정도다. 5년이 흘러 다시 찾은 빈에선 여전히 좋은 점만 눈에 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는지!


일일이 걸음할 수 없는 빈의 곳곳을 트램에 앉아 차분히 추억한다. 피곤함과 나른함 사이에서 추억이 망상으로 갈 즈음, 이번에 내려야 한다는 남편의 신호에 정신을 바짝 붙들어맨다.





벨베데레 궁전에 도착했는데, 아이는 아직 깰 기척이 없다. 맞은편 레스토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아이에게 먹일 *슈니첼을 포장해 궁전 안으로 향한다.


벨베데레는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는데 둘 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상궁의 전시관에서는 클림트 '키스'를 만날 수 있다. 웬만한 아트숍에서 흔하게 상품화되어 있는 그 작품을 실제로 목격했을 때의 첫 감격은 잊을 수가 없었으므로, 시간이 넉넉지 않았지만, 조금 무리이더라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째 만남은 첫 감동에 훨씬 못 미쳐서 작품이 바뀌었나 의아할 지경이었다. '키스' 앞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발바닥에 모터를 달고 총총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래, 작품은 죄가 없지.. 유명한 작품들 앞은 붐볐고 그 외의 작품을 감상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입장료의 본전도 못 건진 아쉬움을 달래고자 부지런히 바깥 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슈니첼 :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식 중 하나. 송아지 고기를 얇고 넓게 펴 (돈가스처럼) 튀긴 음식





잃은 게 있으면 얻을 것도 있는 법, 이라고 했던가. 5년 전에는 보수 중이어서 가림막이 설치돼 있던 자리가 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품은 인공못이 왕궁과 어우러져 기품이 넘쳐 보인다. 빈에서는 어찌 이토록 모든 날, 모든 순간이 화창하기만 한지.



더없이 좋은 날
더없이 멋진 곳에
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

그러고 앉아만 있는 거니?


정갈하게 그려낸 한 폭의 미술작품 같은 정원에서 아이의 최대 관심사는 모래알이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모래를 만지작거린다. (벨베데레를 감상하면서 잠깐씩 넘겨보니) 한 움큼 쥐어보기도 한다. (사진을 찍다가 아이 쪽으로 앵글을 가져가니) 급기야 던지고 뿌리며 논다. (인체의 '무조건 반사' 작용을 믿고 한 눈을 더 판 사이) 결국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작고 여린 눈에 모래 먼지가 날아들고 나서야 무모한 장난이 끝났다. 여러 번 들여다봐도 모래 알갱이는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물감 탓인지 자꾸 눈을 비비려 해 신경이 쓰인다. 이럴 땐 울음이라도 팍 터져서 한바탕 씻겨 나오면 속이 후련하겠구만!


울 일까진 아니라는 듯, 이번에는 발로 모래놀이를 이어간다. 바스러지는 소리와 데구르르 미끄러지는 질감이 재미있나 보다. 신발 밑창으로 모래 바닥을 쓸어가며 걷는 통에 아이가 지나는 길엔 모래먼지가 자욱하다. 그만하라는 말도 기운이 달려 그만두고, 이참에 아이로부터 멀찍이 떨어진다. 폐장 시간이 가까워진 광활한 정원을 인적 대신 정적이 채우고 있다.






벨베데레를 등지고 나오는 길,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의 무게가 온몸에 실린 듯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하루 동안 조금씩 지연된 스케줄 탓에 시간도 애매해졌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한 곳을 더 들를지 아니면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 쉴지 망설여졌다.


처지를 생각하면 후자를 선택해야 했지만, 오늘은 마지막 날의 빈이라서, 우리는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힘을 좀 더 내서 잠깐 들렀다 가면 크게 무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동선을 조금 길게 잡아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로 향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빌딩에 가서 발도장을 찍는 게 우리의 마지막 관광 코스였다. 일단 거기까지 가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기념품숍에서 무엇이라도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의 떼가 발동한 게 시작이었다. 계획도 이유도 없는 소비를 지양하는 나의 고집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게 화근이 됐다.


피곤한 육체로는 정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타협하기를 멈추고 억지를 부리는 아이나 헤아리기를 멈추고 기준만 앞세운 나나 매한가지였다. 쓸데없이 실랑이를 하며 결국 아이는 왕창 눈물을 쏟았고, 내 속도 말이 아니게 상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남편은 묵묵히 기다려주는 편이다. 나와 아이가 서로 진정이 될 때까지.


아이는 아이답게, 한바탕 울음으로 감정을 쏟아낸 후엔 금세 엄마에게 안겨왔다. 떼가 사라진 아이의 모습에 내 화도 스르르 누그러졌다. 감정을 잘 소화해 낸 아이를 안아주며 조건부 소비를 허락했고, 아이가 고사리손을 뻗어 골라잡은 것은 파란색 포장지에 싸인 초콜릿 한 개였다.


대단치도 않은 하필 그걸 집어서, 초콜릿을 들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더 미안해진다. 내 욕심이 불러온 파장을 생각하며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반성한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게 뭐라고! 피곤한 몸을 끌고 굳이 가서, 아이의 떼부림 하나 넉넉히 받아주지 못하고, 아이보다 더 힘껏 떼를 부렸단 말인가. 지친 몸에 넉넉한 마음이 깃들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우리 가족 여행 불문율
:
배고플 때는 맛집을 찾아가지 말고,
피곤할 때는 싸돌아다니지 말자.





눈물바람 후 아들은 다시 순둥이로 돌아왔다. 여행 내내 도망 다니며 사진 찍기를 거부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전형적인 사진 포즈를 취하고 엄마를 위해, 엄마를 바라보며, 제대로 찍혀 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예쁜 장소에서 너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어.
여행의 마지막 밤인데 울게 해서 미안해.
모래 먼지 씻어내느라고, 그래서 운 거라고 생각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