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슬펐지만 귀여웠던 추억, 영화 소감을 이렇게 쓰려니 영 내키지 않는다. ‘그때는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그러하며 영화 <우리들>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 정리한다.
‘너희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우리들>은 어른을 위한 영화다. 이 영화가 다루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의 속성 같은 건 어른만 이해할 수 있으니 ‘아이들은 가라’는 취지가 아니다. 어느 정도 몸과 머리가 자라, 돌아볼 지난날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영감을 더 크게 얻을 수 있는 영화일 뿐.
자신이 처한 시공(환경)이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고 고민인 무엇이 있다면, 시간이 얼마간 지나야 그것과 거리를 유지한 채 마주할 수 있다. 가령 10대 학창시절을 지나는 사람이 현재 친구와의 관계가 고민이라면 단순히 나이가 어리기 때문보다 관계의 현재 당사자라는 이유에서 관계의 속성을 냉철하게 따져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비로소 학창시절의 제한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그때의 일을 돌아본다면, 그리고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관계의 어려움도 그때의 일에 빗대어 본다면 밀도 있는 사고가 가능할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던 나는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편지부터 비싼 선물까지 줘가며 딴에는 열심이었지만 친구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선'이 '지아'의 결핍이나 불안을 미처 알 수 없던 것처럼. 나는 일방적으로 마음을 표현했고 표현한 만큼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친구의 마음을 원망했다. 늘 친구 없이 못 사는 사람마냥 조급했다. 한번 심사가 뒤틀리면 친구에게 다시 말조차 걸지 않으려 애쓰니 오해만 자라고, 마침내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기억이 많다. ‘선’이 현장학습 날 ‘지아’를 따로 불러 ‘나한테 서운한 것이 있느냐’ 용기 내 묻는 장면을 보며 다만 생각했다. 저 지점에서만은 ‘선’이 나보다 낫구나.
20대를 지나는 중인 현재 내가 정의하는 ‘관계’는, 마음을 얻기 위해 ‘나만의 속도와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속도와 방식까지 찬찬히 그리고 내밀하게 살펴 가며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자니 여전히 관계는 나에게 힘든 화두다. 하지만 그 힘듦은 어릴 적 그것과는 달리, 건강하다 믿는다.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은 내 마음은 선하며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는 악하다는 이분법에서 탈출, 조금은 더 유연해진 셈이니까. 무엇보다 이제는 사적인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안다.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타인을 ‘규정’해버리는 것은 사실, 어른답지 못하다는 것도. (비록 관계 당사자 사이의 어떤 행동이 범죄라 할 만큼 나쁜 것일 수는 있어도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함께 개봉한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며 어른인 ‘톰’이 참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는 너를 운명이라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니. 내가 너한테 이렇게나 잘해줬는데 날 떠나는 너는 정말 나빠. ‘톰’의 아우성만 절절이 들렸다.
나란히 누운 ‘선’과 ‘지아’가 나중에 함께 바다에 가자 약속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바다는 두 사람에게 꿈의 장소, 두 사람은 그 꿈을 공유한 유일한 친구였다. ‘선’은 가족과 함께 가고 싶던 바다를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날에서야 간다. ‘선’의 아빠가 할아버지의 빈 침대를 멍 하니 바라보던, 그 처진 뒷모습을 혼자 지켜보던 ‘선’은 다음 장면에서 바다에 도착한 순간 생각했을지 모른다. '지아'와 함께 한 약속을, ‘지아’를 놓치고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럼 언제 놀아.” ‘윤’의 이 말은 ‘선’을 움직이게 한 마지막 자극이었을 테고. 영화가 끝난 뒤 ‘선’이 ‘지아’와 함께 바다에 갈 만큼 관계를 회복했을지, 아니면 이전처럼 또 다시 갈등을 빚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선’처럼 관계를 이어보자며 기꺼이 힘듦도 감내하는 인물이라면 나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선아, 너의 선택을 존중해.”
(더하기) ‘우리들’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이야기> 등이 겹쳤다. 대단한 갈등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일상의 갖은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때로는 조심스럽게 비춰주는 공통분모였다. <우리들> 속 인물을 대하는 감독(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인물들에게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은 어른 관객들에게 이렇게 일러주는 듯했다. "진정하고 조금만 더 지켜봐요." 이를 테면 엄마에게 살을 부비는 '선'을 ‘지아’가 바라볼 때 카메라는 가만히 ‘지아’의 눈을 봤다. 친구들처럼 핸드폰을 갖고 싶은 ‘선’이 엄마를 조를 때도 ‘선’의 얼굴을 들여다 볼 뿐이었다. ‘선’의 마음이 변하고 있음을 드러내려, 손톱 위의 봉숭아물과 하늘색 매니큐어를 클로즈업하던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관객들은 ‘선’과 ‘지아’의 관계를 어린 아이들이 으레 겪는 문제가 아닌, 자신의 화두로 끌어올 수 있었다. 영화가 한참 진행된 후반부에서 ‘선’의 아빠는 말한다. “애들이 일 있을 게 뭐 있어. 학교 가고 공부하고 놀고 그게 다인데." 이때 "그렇지 않다" 되뇐 관객이 있다면 이 영화는 앞서의 전개를 의도대로 이끈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