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는 동네책방이라 부르기 약간은 머쓱할 수 있는, '전국구' 서점이 있다.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두 곳 다 역사가 깊지만 역사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더해가고 있을 이 두 곳의 색채. 나에게 동아서점은 여름과 바다를, 문우당서림은 가을과 산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 글은 문우당서림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한다.
할아버지의 영한사전
1층에서 한 할아버지가 영한사전을 찾고 있었다. 대부분의 중소형 서점은 검색대가 없고 큐레이션도 독특해서, 찾는 책은 직원에게 문의하는 게 빠르다. 할아버지의 '요청'을 받은 1층 직원이 2층에 연락했다.
"영한사전 두 종류 정도 가져다주실래요?"
종이사전을 찾는 것으로 미뤄 아마도 영어를 공부해보려는 건 할아버지 본인이었을 거다. 할아버지가 늦은 배움을 시작한 이유를, 그 시작의 첫 마음을 난 알지 못한다. 설렘이었을까, 막막함이었을까, 어쩌면 두려움이었을까.
다만 생각했다. 아주 적어도, 할아버지의 마음 안에서 설렘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2층으로의 계단을 힘들게 오르다가, 혼자서 책을 찾으려다생겼을지 모를 그 두려움 말이다.
공간의 문턱은 낮았고, 머무는 사람들 사이의 경계는 가을볕처럼 흩어졌다. 9만여 권의 책이 있지만 무엇도 위압하지 않았으며, 두 개 층으로 나뉘었지만 누구도 소외받지 않았던 곳, 문우당서림.
적당한 소란을 사랑하자는 말
2층의 일부 독립출판물들은 개별포장이 돼있었다. 포장을 뜯어볼 수는 없지만 대신 구매 전 책을 펼쳐 볼 수 있게 샘플북, 일종의 '헌책'도 같이 놓여있었다. 거기엔 미리 읽어본 직원들이 코멘트 메모지를 붙여뒀다. 편지 같았다. 전문가의 그럴 듯한 추천사도, 출판사의 화려한 소개글도 아닌, 편지.
나한테 온 편지들을 대충 손에 잡히는 것만 읽는 재주는 없어서 다리가 아프도록 하나씩, 하나씩 다 읽어봤다. 읽다보니, 새책 말고 그 편지(코멘트)가 붙은 헌책에 또 정이 든다. 손떼가 좀 묻은 책을 데려가고 싶어졌다. 헌책은 10% 할인도 해준다.
사장님이 내가 고른 책을 종이가방에 담으며 서점 소개가 적힌 종이를 주시기에, 이미 있다고 말씀 드렸다. 문우당서림이 '서울카페쇼'에서 '커피와 함께 읽는 책'을 테마로 부스를 마련했을 때 받은 것이었다. 그때 문우당서림을 알게 됐고 일부러 이렇게 먼길 다시 왔다는 사실을, 사장님은 그렇게 반가워 해주셨다.
"가격 할인은 그대로 해줄 테니 새 책 가져가는 건 어때요? 고맙고 좋아서 그래요."
계산대 주변이 우리의 대화로 채워지고, 계산대 아래에 붙은 구절이 눈과 마음을 두드렸다. '적당한 소란: 우리는 침묵보다는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줄 대화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서점이 사랑하고 싶은 게 다름 아닌 대화라는 게, 낯설지만 반가웠다. 고맙고 좋은 건 역시나나였다.
책과 사람은 함께 한다는 뜻의 문우당. 이곳에서 책은 사람이 되었고 사람은 책이 되었다. 문우당서림은 이름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가을을 닮은 곳
문우당서림이란 공간은 원목의 디자인이 중심이 된다. 서가는 물론, 시선이 주로 머무는 벽면이 갈색을 띤다. 그때 이 공간에 색을 더해주는 건 수많은 책들이자, 이 기록들이다. '당신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방문객들이 남긴 기록 그리고 문우당서림이 책에서 길어올린 문장의 기록들.
한 해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꿋꿋이 버텨낸 가을 나무들은 갈색의 기둥으로 안정감을 전하고, 이런 저런 색의 이파리로 보는 즐거움을 남긴다. 문우당서림은 가을을, 가을의 산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