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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Sep 26. 2020

장마의 계절, 나에겐 우산이 있었다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2020년 8월 27일 목요일.


오늘은 밤 9시 30분쯤이었을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후두둑, 소리가 이내 쏴아, 번졌다. 회사에서 집 근처까지 1시간 30분여를 걷는 동안 멀쩡하던 하늘이었다. 갖고 있던 우산을 폈다. 뚜벅뚜벅, 차근차근, 다시 걸었다. 어린이대공원 정문을 지나 소방서를 끼고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집까지 10분이 채 안 남은 지점. 한 음식점의 차양 아래에 여자가 서있었다. 언뜻 봤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이 없고, 저기서 비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그 여자를 지나쳐 몇 걸음을 걷다가, 나는 뒤돌았다.


집까지 우산 씌워다주려고.


몇 해 전 낙성대에서의 나는, 그 여자였다. 그 여자처럼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걸어가던 나에게 다른 한 여자가 먼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 일이 있었다. 살면서 그때의 일을 문득 떠올린다거나, 불현듯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오늘 뒤를 돌던 그 짧은 순간에 그 날 일이 살아나 나를 움직였다.


"저 우산 없으신 거면, 괜찮으시면 집까지 씌워다 드릴까요?" 조심스럽게 다가간다고 하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인사도 없었던 것 같다. 드릴까요, 라고 했는지 드릴게요, 라고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만약 드릴게요, 였다면 선의와 함께 당혹감도 떠안겼을 듯 싶다. 나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내가 쓴 첫 마디의 단어들과 높낮이와 표정 같은 것을 상기해볼 때가 잦다.




그 여자는 집이 저쪽이라며, 내가 자신에게 걸어오던 방향과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미안해서 망설이는 듯, 그러면서도 고마워서 반가워하는 듯한 그 사람에게 나는 두 번째 말 마디를 더했다. "제 우산이 작은데 그래도 괜찮으시면 저는 같이 가도 좋아요." 내 또래쯤 되었을 그 여자와 나는 함께 거센 비를 피했다. 우산 아래서 이어간 이야기들에는 동글동글한 빗방울이 스몄다.


"우산 없어서 당황하셨겠어요."

"네, 비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 몰랐어요."

"올여름은 비가 많이 와요."

"맞아요."

"어젯밤에는 태풍 때문에 바람이 엄청 불어서 자다가 깼어요.

오늘은 비 오니 또 습하겠죠? 빨래도 요즘 잘 안 말라요."

"저는 결국 제습기 샀어요."

"오, 잘하신 것 같아요."

"이제 퇴근하시나봐요."

"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올 때가 자주 있는데

요며칠 비와서 못 걷다가 오늘 오랜만에 걸었어요."

"제가 운이 좋았네요. 저는 오늘 하루종일 재택이었어요.

저녁에 산책하러 나온 건데 비가 와서."

"재택 해보니까 어떠세요?"

"출근 시간이 여유있는데 퇴근 시간도 괜히 없는 느낌이에요."

"직장 다니면서 프리랜서 경험하는 느낌 같네요."

"맞아요."


예상치 못하게 비를 맞았고 가까스로 비를 피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만났다는 그것만 두고도 운이 좋았다고 말하던 사람.


"저는 이 동네가 참 좋아요."

"저도요. 그래서 저는 이 동네 안에서만

두 번 이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충분히 이해돼요. 이 동네 조용하고 걷기도 좋고.

어린이대공원 아침에 걸으면 정말 좋아요."

"저도 어린이대공원 자주 가요.

코로나 터진 이후로 정문 출입만 가능한데

저희 집에서는  옆쪽, 작은 문들이 더 가깝거든요.

그쪽으로 몰래 들어가다가 경비하시는 분한테 걸리기도 하고."

"저도 사실 그쪽 문들로 들어간 적 있어요."

"거리두기 3단계 되면 어린이대공원도 문 닫는데

그게 너무 슬퍼요."

"맞아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목소리가 기분 좋게 높아지며 공감하는 사람. 내 좋아함의 이유를 내가 애써 연잇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간단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람.


우연히 만났기에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아갈 시간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우연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같았다. 반갑고 괜히 든든했다. 그리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서 종종 공유되는, 있을 법하지만 특이한 경험들은 금세 웃음과 안심을 자아냈다. 이를테면 공원의 막힌 출입구로 몰래 들어가는 경험 같은 것들. (규칙을 지킵시다 :D)

 

"TMI이기는 한데 이 동네가 전세가 꽤 있어서

(이 동네를) 선택한 것도 있어요.

지금 집이 전세거든요."

"저도 이 동네 첫 집은 월세였는데

너무 아깝기도 하고 그래서 전세 알아보다가

지금 집으로 왔어요."

"맞아요, 진짜 월세는 어디 써보지도 못하고

훅훅 나가니까 아깝죠. 저도 그랬어요."

"전세도 가격대 맞는 것 찾기가 어렵긴 했어요.

대출 받고 거기에 맞춰서 찾는 거라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거든요."

"1억..?"

"네네, 전세자금대출! (웃음1)"

"(웃음2) 저도 그걸로 했어요."


'또래'가 맞구나,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가능성은 또 다른 가능성들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사람과 내가 놓였을 상황이나 겪었을 경험도 비슷할 가능성이라든지. '우리' 둘의 비슷함이란 산과 같을지 모른다. 가까이서 보면 색색이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저렇게 하나 정도의 색으로 엮여드는.




10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우산을 같이 쓰고서 걸은 시간이 그쯤되자 그 여자의 집에 거의 다다랐다. 그 여자는 집에 완전히 닿기 몇 걸음 전 말했다. "혹시 과일 좋아하세요? 아니면 김치! 어제 온 게 있는데."


이 말을 전할 때의 움직임, 이 말의 높낮이가 지금도 생생하다. '혹시'의 '혹'을 말할 때 나를 향해 살짝 몸을 틀던 모습, '혹'이란 글자 앞에 놓인 아주 작은 떨림. '김치'를 말할 때쯤의 괜스레 달뜬 느낌. 그 여자는 나랑 걷다가 어느 순간쯤엔가 고마움을 또는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그 표현 방법 몇 가지를 떠올려봤을 것이다. 집에 닿을 때쯤 이렇게 말해야겠다고, 머릿속에 준비는 해두었지만 그마저도 여유있는 준비일 수는 없었기에 말에서는 결국 '용기'가 잔뜩 묻어났던 것임을, 알 듯하다.


"아 정말요? 뭐든 좋아요. 감사해요." 용기 묻은 말에 대한 대답에도 적잖은 용기가 더해졌음을, 알까? 실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나도 당황했지만 당황으로 답을 돌려주고 싶지는 않아 외려 씩씩하게 목소리를 냈다. 나 또한, 아니 내가 더 고맙다는 것만 아무쪼록 잘 전해지기를 바랐다. 너무 고마워서 주고 싶다며 집으로 뛰어올라가는 사람을 1층에서 기다렸다. 비닐에 한번 담고 지퍼백에 한번 더 담은 김치, 복숭아 2개, 초록 사과 2개, 두유 1개가 내 손에 들어왔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마지막 말이 그 여자에게로 들어갔다.




그 사이 비는 잦아들었다. 그렇게 그칠 비가 왜 그 때 그 길에서는 훅 쏟아졌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빗속에서 우산을 먼저 내민 건 나였고 이름 모를 이의 마음을 받아들인 건 그 여자였다. 고마움을 갚기 위해 자신의 것을 선뜻 내어준 건 그 여자였고 그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건 나였다. 안해도 그만인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을 두고 나는 배려나 인내라기보다, 용기라 부른다. 먼저 다가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 그 다가옴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누군가와 만나도록, 비는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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