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May 18. 2021

어두운 도시가 말하는 것들

이눅희 사진전 <Surface>

2019년 12월에 핀란드를 여행했다. 한국으로 온 뒤 '핀란드'와 관련된 책, 전시, 작품, 상품 등을 꾸준히 찾아다녔다. 궁금해서 더 알고 싶었고 그리워서 더 보고 싶었다. 2020년 하반기에는 이듬해 가을 학기 시작의 핀란드 석사 유학을 준비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핀란드 경험하기'의 노력은 더 구체적인 모양이 되었다.


한창 핀란드 여러 대학으로의 지원서를 작성하던 2020년 12월 20일 방문한 이눅희 사진전 <Surface>. 사진 작가 이눅희와 '핀란드 전문가'인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가 함께 마련한 전시였다. 2019년, 두 사람이 '네이버 디자인 주제판'에 실은 사진이 대형으로 인화 후 전시된 것이다.



사진 속 핀란드 남서부 지역 작은 도시들은 어딘지 어두웠다.


하지만 '퇴색'이라는 의미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기운찬 봄의 새마저도 고요히 지저귈 것 같은 숲, 권위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기품 있는 목조 건물, 자신을 쓸어간 거친 세월의 뒤도 원망 없이 깊게 쓸어주는 듯한 성벽. 그 모든 공간을 지키고 또 지나갔을 어떤 사람들이 점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핀란드의 저 도시들이 보여주는 어둠은 곧 편안함이었다. 오랜 이야기를 지층처럼 품고 있지만 그걸 요란히 내세우기보다 그 이야기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내어주는 느낌. 앞으로 더 밝아질 것을 약속하기보다 외려 변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듯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로써 위안을 주는 느낌.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길,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2019년 12월 중순, 그러니까 오늘로부터 딱 1년 전 핀란드를 여행했습니다. 헬싱키에서 시작해 라플란드의 킬로파, 로바니에미, 사리셀카까지. 해외여행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그 시기의 저는 이상하리만큼 매순간 설렜고 영감이 충만했고,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것이 핀란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숲과 자연의 고요함과 고유함, 문화와 도시의 차분함과 차별성 그리고 사람들의 여유와 여운. 2021년 핀란드로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인생을 바꾸었네요. 앞으로의 제 삶을 기대하게 해준 이 나라를 더 알아가볼 생각입니다. 사진으로 그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쁘게 합격하고 무사히 출국하고 싶다는 바람이 크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저 사진 속 도시들을 꼭 가보겠노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였다. 차분히, 하나씩,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도 저 도시들은 곧 닿을 먼 곳이다. 멀지만 머지 않은 곳. 저 도시에서 내가 감각하고 내 언어로 표현될 것은 무엇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 거주허가증 발급 받기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