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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Jul 28. 2021

살아 나와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얼마 전 경남 남해의 '아마도 책방'에 갔다. 작은 도로가에 위치한 이 책방에서 내가 데려온 책은 <홀>(김홍모 저, 창비, 2021년)이다. 부제는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만화가가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을 인터뷰 해 제작했다. 그 세월호 생존자의 책 속 이름은 '김민용'이고 실제 이름은, 세월호를 기억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김동수'이다.


김동수 씨는 세월호 생존자이자 세월호에서 승객을 구하다 가장 나중에 빠져나온 인물이다. 거주지가 제주인데 육지(서울)에서 일을 본 뒤 인천에서 세월호를 타고 제주로 오다 이 일을 겪었다. 책에는 그가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 보고 듣고 한 일들이 '그가 기억하는 선'에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사람들이 배를 빠져나오도록 돕던 시간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한다.


배는 90도 가까이 기울어지고 있었고 나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는 그때 본 것들이 너무 괴로운 기억이라 보호본능이 작용해서 기억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기억이 안 나는 게 좋을 거라고. 기억을 하게 되면 못 견딜 거라고. 나중에 해경에서 찍은 영상을 봤는데 나는 혼자 세월호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72-73쪽)


배가 그렇게 기울 동안 배 안에서 일어난 일들, 그러니까 '승객들에 의한 승객 구조'의 순간은 처참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홀'에서의 상황은. 넓은 공간 'hall'을 뜻하면서 동시에 구멍 'hole'을 가리키는 것도 같은 이 단어. 물이 찬 중앙 홀에 간신히 떠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그리고 안간힘을 써도 모두 구하지 못하는 깊은 수렁 같은 상황을 읽는 이가 인지하게 했다.


그가 있던 지점과 반대편의 홀 지점은 소방호스로 연결됐고 승객들은 그 호스에 양팔로 매달려 앞으로 이동했다. 철봉에 매달려 한 팔씩 나아가듯이 그렇게 말이다. 팔에 힘이 떨어지면, 건너올 수 없던 길. 승객들은 소방호스 하나를 더 연결했고 호스 두 줄을 겨우 잡고 건너오는 사람들이 그림에 그대로 등장했다.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이게 말이 돼?" 되뇌어도 수가 없었다.


그를 포함해 승객들이 학생 20여 명을 구하는 동안 배에 있었던 건 배 밖으로 나가지 말고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었고 배에 없었던 건 해경 등 구조대였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뻔뻔히 있고, 있어야 할 것은 더 뻔뻔히 없던 곳. 2016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 이렇게 적힌 84쪽의 그림에서 세월호는 배 끝만 드러낸 채 모두 가라앉았다. 바로 옆의 그림은 캄캄했다. 네모난 창이 하나 있었다. 배 안에서의 시점일 것이다.


'파란 바지의 의인'이라 불린 김동수 씨는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국가가 다하지 않은 책임을 대신해 진 결과는 트라우마라는 네 글자도 감히 감당 못할 것 같은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다. 더 구하지 못했다는,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과 그날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국가든 시민이든 언론이든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분노 등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네 번의 자해를 했다.


그의 가족들도 트라우마를 겪는다. 딸은 아빠와 광화문에도 자주 가고 세월호 1주기를 맞아서는 또래들과 플래시몹을 기획하는 등 세월호를 자신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생존자와 그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우리는 살았으니 됐다'라고 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게 된다. 이들에게 국가가 나서서 깊은 사과를 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지원하는 건 그들의 승객 구조 책임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김 작가는 생존자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냥 생존자가 아니라 생존 피해자입니다. 트라우마 치료, 경제적 지원 등 대책이 필요해요. 트라우마센터만 해도 제주에는 없습니다. 대부분 트라우마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인데 이것은 확실한 진상규명만이 지울 수 있어요." (경향신문, 2021년 4월 15일, '트라우마·가족의 고통과 성장, 생존자의 스피커 되고 싶었다')


세월호는 하나의 굵직한 사건인 동시에 개인의 이야기들이 담긴 일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으로만 이 일을 보면 "아직도 세월호냐"라는 말이 나온다. 개인의 이야기들, 그것도 아주 많은 이야기들에 집중하면 "아직도"라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럴 틈도 없다. 왜 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묻는다면, '나은 사회로 향함'은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것이다. 지난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감독 주현숙)이 그랬듯 이 책도 그 '개인의 이야기'를 조명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


세월호 이후 지금까지 아픈, 만약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대한다면 아마도 앞으로도 아플 그 개인들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듣고 들은 것을 자신만의 '스피커'를 거쳐 다시 말하고, 그 과정이 더 이상 모욕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이야기를 '징징거림'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고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은데 부디 많은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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