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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18. 2021

[영화] 노매드랜드_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부터 떠나는가.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두 질문 모두 '왜 떠나는가'를 가리킬 수 있지만 아주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질문에 답하기로 선택하는지에 따라 떠나는 것의 '의미'는 달라진다.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이 질문에 답한다면 내가 마주하게 될 것, 내가 떠난 이유로 태어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일'이 핵심이 된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펀'이 길을 나선 초반부를 보면 그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이 질문과 더 가까이 있다.


자신이 (아마도 보조 교사를 하면서) 가르친 아이를 마트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펀이 예전에 가르쳐 줬다는 노래의 핵심 단어는 '내일'이다. 이 장면이 등장한 이유와 펀이 바라보는 방향이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펀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질문의 무게를 더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무엇으로부터 떠나(왔)는가.


이 질문에 답할 때는 내가 두고 가는 것, 내가 떠남으로 인해 남겨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제'가 중심이 된다.


'떠나는' 존재로서 살던 날들에 '남겨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다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길을 나서면서 여러 노마드들을 만나지만 그들이 또 다른 길로 떠나거나 아예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들을 겪는 식으로.

부쩍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는 펀. 자신의 언니에게, 길에서 만난 또 다른 노마드에게 죽은 남편 '보', 그와 함께 한 시공간이 그립다는 말을 한다.

어떤 것이 그립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지금을 후회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움은 도피의 감정도, 포기의 감정도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부터 떠나왔는지를 되짚어보는 기회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기억할지 되새기는 기회이다.

"What's remembered lives." ("기억하면 살아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펀은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남자와 이야기 나누면서 그렇게 말한다. 기억하면 살아있다고. 꼭 죽음만이 아니더라도 떠나거나 변하거나 사라진 어떤 것은 기억하는 행위로써 살아있게 된다. 그 사람 곁에.

기억하면 살아있다는 말이 참이라면 세상에 영원한 안녕도 없는  테고. "There's no final goodbye." 이 대사처럼.


떠나자.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무엇을 위해 떠나는지, 무엇으로부터 떠나는지. 떠나는 날을 정해둔 요즘의 난 이 두 질문 사이를 오가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앞서의 질문에 빠져 들면 설렘과 진지함을 비슷하게 품는 것 같다. 그러다 서는 질문에 사로잡힐 땐 벌써부터 그립고 아쉽다. 아끼는 많은 책들, 내 원룸의 넓은 창과 창밖의 소소한 풍경들, 서울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창 안으로 들어 귀를 즐겁게 울리는 새 소리, 동네를 걸으며 눈길 한 번 더 부지런히 주려 애썼던 크고 작은 나무와 풀, 꽃들.

"See you down the road." 언젠가,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살게. 그렇게 되뇌면서 다독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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