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질문 모두 '왜 떠나는가'를 가리킬 수 있지만아주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어떤 질문에 답하기로선택하는지에 따라떠나는 것의 '의미'는 달라진다.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이 질문에 답한다면 내가 마주하게 될 것, 내가 떠난 이유로 태어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일'이 핵심이 된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펀'이 길을 나선 초반부를 보면 그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이 질문과 더 가까이 있다.
자신이 (아마도 보조 교사를 하면서) 가르친 아이를 마트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펀이 예전에 가르쳐 줬다는 노래의 핵심 단어는 '내일'이다. 이 장면이 등장한 이유와 펀이 바라보는 방향이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펀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질문의 무게를 더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무엇으로부터 떠나(왔)는가.
이 질문에 답할 때는 내가 두고 가는 것, 내가 떠남으로 인해 남겨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제'가 중심이 된다.
'떠나는' 존재로서 살던 날들에'남겨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다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길을 나서면서 여러노마드들을 만나지만그들이 또 다른 길로 떠나거나아예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들을 겪는 식으로.
부쩍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는 펀.자신의 언니에게, 길에서 만난 또 다른 노마드에게죽은 남편 '보', 그와 함께 한 시공간이 그립다는 말을 한다.
어떤 것이 그립다고 해서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지금을 후회한다고 할 수는 없다.그리움은 도피의 감정도, 포기의 감정도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부터 떠나왔는지를 되짚어보는 기회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기억할지 되새기는 기회이다.
"What's remembered lives." ("기억하면 살아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펀은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남자와 이야기 나누면서그렇게 말한다. 기억하면 살아있다고.꼭 죽음만이 아니더라도떠나거나 변하거나 사라진 어떤 것은기억하는 행위로써 살아있게 된다. 그 사람 곁에.
기억하면 살아있다는 말이 참이라면세상에 영원한 안녕도 없는 걸 테고. "There's no final goodbye." 이 대사처럼.
떠나자.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무엇을 위해 떠나는지, 무엇으로부터 떠나는지. 떠나는 날을 정해둔 요즘의 난 이 두 질문 사이를 오가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앞서의 질문에 빠져들면 설렘과 진지함을 비슷하게 품는 것 같다. 그러다 뒤서는 질문에 사로잡힐 땐 벌써부터 그립고 아쉽다. 아끼는 많은 책들, 내 원룸의 넓은 창과 창밖의 소소한 풍경들, 서울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창 안으로 들어 귀를 즐겁게 울리는 새 소리, 동네를 걸으며 눈길 한번 더 부지런히 주려 애썼던 크고 작은 나무와 풀, 꽃들.
"See you down the road." 언젠가,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살게. 그렇게 되뇌면서 다독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