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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y 16. 2021

나의 오월에 만난 당신의 사월

안부를 묻습니다.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되는  <당신의 사월>을 보러 갔다. 을지로의 '밥 먹는 술집 광장' 사장님께서 스무 명 분의 티켓을 미리 결제해두셨고, 이 소식을 광장 인스타그램에서 본 뒤였다. 시간이 드디어 맞아서 이 영화를 보러 간 오늘은 2021년 5월 16일. 비가 부산스레 온다.

이 영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5주기를 맞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서울 통인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 인천의 중학교 교사, 전남 진도의 어부, 활동가, 세월호 당시 고3이었고 지금은 기록 활동을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 故문지성의 아버지.


영화 후반부에서 한 중학생이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이 학생은 앞서 언급한 그 중학교 교사가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학교에서 연 '세월호 북 토크'에 참여했다. "저는 이 책을 다섯 번은 봤는데 볼 때마다 펑펑 울어요. (...) 책을 이렇게 담담하게 쓰신 게 (...)"


'세월호'를 마주하면 나도 펑펑 운다. 담담하지 못하게. 오늘도 영화를 보는 동안 마스크 위로, 안으로 눈물이 어찌나 흐르던지. 하지만 이렇게 운다는 사실도 때로는 염치가 없다. 담담해 보일 만큼 셀 수 없는 울음을 겪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365일 매 시간 세월호를 생각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이 점은 영화에서 구술한 교사와 학생도 짚은 부분이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세월호라는 글자와 사실, 삶과 아픔 앞에서 '애도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즉, 세월호의 아픔을 내 식대로 자르고 붙이지 않는 것. 그게 일단 우선이다.


"고통이 몸을 잠식하고 파괴하는 것은 고통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고 그 경험을 인정받지 못할 때다. 경험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비난이 가해지면 사회적인 애도와 재구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안미선 지음, 낮은산F, 2020년), 79쪽


통인동 카페 사장님이 영화에서 언급했듯이 2014년에도, 이듬해에도, 영화가 만들어지던 5주기 때도, 영화를 보고 있는 2021년에도 "아직도 세월호냐", "지겹다"는 말은 여전하다. '지겨운' 걸 찾자면 세월호 그 자체가 아니라 아직도 세월호를 '아무 것도 규명되지 않은 일'로 남겨둔 권력, 무관심 같은 것일 텐데.


가방 같은 것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분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는, 영화 속 활동가 분의 한 마디에 공감했고 생각했다. '애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데 앞으로도 주저하지 말아야지. 수없이 울어야 했던 사람들만큼 울지는 못했어도, 그것만은 해야지.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는 것의 또 다른 뜻은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잊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세월호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메시지가 분명히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세월호가 남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 귀한 줄 알면서 사는 것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는 것. 세월호는 나에게 그렇게 살자고 말했고 그렇게 사는 것의 무게를 기꺼이 '버티도록' 독려했다. 영화에서 교사는 '버티는 삶'에 대해 말했다. "이기려면 버티는 게 중요하구나. 매번 이길 수 없으니까 버티는 게 중요하구나."


<당신의 사월>의 엔딩 크레디트는 특별했다. 영화에 출연한 이들로 '촛불 시민'을 언급한 점과 맨 마지막에 '그리고 당신'이라는 구절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를 기억했을 당신, 이 영화를 챙겨 본 당신, 이 영화를 본 뒤 다시 한번 말로 글로 세월호를 이야기할 당신.


세월호를 삶의 한가운데서 겪어내고 있는 유가족, 세월호를 삶의 어디쯤엔가 새겨왔을 '당신' 모두에게 오늘 밤은 감히 안부를 전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서울 은평구의 니은서점을 들렀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세월호 포스터를 붙인 가게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가방에 리본을 단 사람을 볼 때의 반가움과 희망, 든든함 같은 것을 가게를 통해서도 느낄 때가 있다. 니은서점 입구에 걸린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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