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과 쓰레기

by 달밋

우리는 살면서 쓰레기를 ‘더럽다’고 말한다. 만지기 꺼려지는 것이 쓰레기이고, 냄새가 고약한 것 또한 쓰레기이기 때문에. 쓰레기는 만져선 안 되는 ‘더러운 것’이다.


나의 퇴근시간에는 언제나 쓰레기 차량이 함께 한다. 안 보는 날이 드물정도인데, 집에 오던 어느 날, 쓰레기를 보며 ‘저건 더러운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모든 쓰레기는 전부 각기 다른 물건이었을 텐데, 단지 용도가 사라져 버린 껍데기라고 해서, 내용물 없는 허물이라 해서 더럽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왜, 쓰레기들은 만지면 손을 닦아야 할 것 같고, 마냥 유해한 것으로 보이기만 하는지 궁금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쓰레기가 더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학습받았기 때문에.


내용물을 다 마신 후의 빈 캔은 쓰레기가 되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쓰레기는 ‘더러운’ 물건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쓰레기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쓰레기가 더러운 것은, 결국 인식적인 측면의 영향 때문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쓰레기는 더러운 것’으로 배워왔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같은 캠페인을 하며 지금처럼 굳어진 게 아닐까.

웃긴 것은, 쓰레기의 더러움에는 상대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먹은 음료 캔보다는 남이 먹은 음료 캔이 더 더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기 포용 덕분에 나의 쓰레기는 같은 쓰레기라도 좀 덜 더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 글을 쓰며 ‘더럽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때나 찌꺼기가 있어 지저분하다” 용도를 다한 치약 튜브나 음료수 캔은, 적어도 내가 봤을 땐 더럽지 않다. 결국은 그저 다 먹고살자고 편리하게 짜여진 시스템이니까, 나는 그냥 쓰레기는 쓰레기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쓰레기는 더럽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의 주관을 갖고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아름답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