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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an 14. 2020

28년 만에 돌아온 오전 11시

1992년 1월 11일.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 네 가족이 가장 먼저 맞이하는 첫 번째 기념일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엄마의 생일과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겹쳤다. 매년 음력으로 보내는 엄마의 생일이 올해처럼 딱 '1월 11일' 결혼기념일과 같은 날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1992년 이후로!


그동안 미루고 미뤄온 가족 여행을 추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분이었다. 나는 그 즉시 여동생과 가족 넷이서 떠나는 겨울 제주 여행을 기획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여행 당일에 임박했다. 서울에 홀로 떨어져 살고 있는 나와 가족들은 김포공항에서 만나기로 했고 여동생과 나는 카톡으로 약속 시간을 상의했다.


'비행기 시간보다 많이 여유 있게 만나서 엄빠(카톡상에서 우리는 부모님을 이렇게 부른다)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구경도 할까?'

'그래! 대충 11시 어때?'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그냥 11시가 떠올랐다. 대략 그즈음 만나면 밥도 먹고 카페까지 들려도 비행기 시간까지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결국, 2020년 1월 11일 오전 11시에 우리는 김포공항에서 만났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다들 들뜬 마음에 점심 식사도 맛있게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28년 전, 그니까 1992년 1월 11일 부모님이 결혼하셨던 시간이 오전 11시였다는 이야기. 무슨 감정이었을까. 엄청 신기하면서도 까닭 모를 소름이 돋았다. 28년 전 어느 결혼식장에서 두 분이 내디뎠던 걸음은 네 명의 발걸음으로 변해있었다.


1992년 1월 11일 오전 11시.

2020년 1월 11일 오전 11시.


젊은 남녀 두 명의 인생이 맞닿았던 시간.

이제는 새롭게 늘어난 젊은 남녀 두 명까지, 네 명의 인생이 맞닿은 시간.

28년 만에 돌아온 오전 11시는 우연이었을까? 우연이 아니었음에도 상관없다. 그저 우리는 넷이서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백번이고 꺼내 먹어도 맛있는 오래된 추억을 만나고 싶었을 뿐!



본래 우연이란 없다.
무언가를 간절히 필요로 하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자기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 헤르만 헤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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