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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Jan 16. 2020

혼자 살면 손톱이 길어지는 이유

문득 바라본 손톱이 참 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손톱깎기가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트북 작업 중이었던 늦은 밤. 자판 위를 정신없이 오가는 손가락 끝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언제 잘라냈는지 울퉁불퉁하고도 참 많이도 길어진 손톱. 주위를 둘러보니 방안에 손톱깎기는 없었다. '에이, 그냥 다음에 깎지 뭐.' 하기에는 너무 많이 길어진 손톱. 큰 고민 없이 곧바로 집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내 돈을 주고 손톱깎기를 사본 일이 없었다. 항상 집안 어딘가에 있던 물건이었고 딱히 의식하지 않고서도 항상 누군가 내게 손톱이 길다고 말해줬기 때문이었을까. '손톱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 속 지극히도 자연스럽고 눈에 띄지 않는 풍경이었기에 꽤나 낯설고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하게 1,500원짜리 손톱깎기를 구입하고 멍하니 손톱을 깔끔하게 잘라내고 나서야 구름 같던 묘한 감정은 조금씩 옅어졌다.


미루고 미뤄오던 독립, 즉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내가 손톱깎기를 구입하게 된 것은 내가 미처 몰랐던 몇 가지를 시사하고 있었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분명 여러 번 집에 들렀다. 내 입맛에 꼭 맞는 하나뿐인 엄마의 반찬을 위해서, 익숙한 내 방에서 편히 잠들기 위해서, 가끔은 숨 막히는 서울 거리를 벗어나 정겨운 냄새와 공기를 맡고 싶어서 등등...내가 집으로 향하는 이유는 꽤나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에서야 손톱깎기를 구입하게 된 것은 이미 집을 들릴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손톱을 잘라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길어야 이틀이지만 집에 있을 때만큼은 식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부딪히며 밥을 먹고, 반찬을 집으며 서로의 손톱이 보였을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가족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겠지. 손톱 좀 잘라라, 왜 이렇게 길었냐, 그러다 손톱 꺾이기라도 하면 다친다 등... 혼자 살면 절대 들을 수 없는 귀찮은 말들이다.


혼자 살면 손톱이 길어진다. 실제 손톱이 자라나는 속도는 달라질 게 없겠지만 '길어진 손톱'을 발견하고 느끼게 되는 감정은 그 색깔과 향기가 전혀 달랐다. 익숙하게 잘라내던 손톱이, 문득 외롭게 길어졌음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할 자연스러운 과정인 걸까.



혼자 살면 손톱이 길어지는 이유, 알게 된다면 참 슬픈 이유. 지하철 옆자리에 기다란 폴더폰을 펼치고 한 글자씩 꾹꾹 누르시는 어르신의 손톱이 참 길다. 나와 같은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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