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어느 날,
영화를 보고 나서 사실 많은 고민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적어내려 가야 할지, 지금 떠오르는 순간의 고민과 생각의 흔적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말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지금의 20대 중후반의 세대는 IMF를 몸으로 겪지 않았다. 우리가 아닌,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가 이겨내야 했던 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영화가 꽤나 묵직하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시나리오, 전개, 개연성, 정치적 성향 등 영화 자체에 대한 좋고 나쁨의 평가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20대 청년의 한 시선으로서 영화를 바라본 소감과 그 감정들을 보다 가볍게 적어보고 싶었다. 개봉 전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영화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호황을 떠들썩하게 노래했던 1997년으로 돌아간다.
한국전쟁 이후 정치, 경제적 격변의 시기를 지나 찾아온 역대 최고의 경제 호황 시기. 이를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하루하루. 겉으로 보이던 경제 황금기에 가려진 심각한 경제 위기 신호를 감지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의 상부 보고로 촉발된 정부의 사태 파악은 최악의 국가부도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 편성으로 이어진다. 대응 방식을 두고 재정국 차관(조우진)과 대립하는 모습 또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한시현(김혜수)의 시선으로 영화는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정부의 대처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한시현(김헤수)에 이어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선. 바로 곳곳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제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고, 그 위기에 투자하려는 윤정학(유아인)의 시선이다. 종합 금융회사 과장이던 그는 국가부도의 위기에 역으로 투자를 결심하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어서 영화에 등장하는 세 번째 시선은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다. 국가 경제가 부도에 임박했음을 알리 없는 그는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를 진행하고,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영화의 메인 예고편에도 강렬하게 등장하는 대사처럼 국가 부도까지 남은 시간, 단 일주일 동안 세 방향의 다른 시선으로 보여준다. 여기까지가 위기의 1997년,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대략적인 이야기다.(스포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IMF 외환위기를 다룬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 빈부 격차 / 고용 문제 등과 맞물려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상영관을 나오는 통로가 길게 느껴졌다. 분명히 짧은 길이었지만 내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영화가 그리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나만의 해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영화가 다루는 모든 내용이 오늘의 나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막으려는 자와 터뜨리려는 자의 싸움이다. 과거형으로 하기에는 요즘도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저마다 느끼는 감정과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겠지. 아무튼, 무엇을 막으려 했고 무엇을 터뜨리려 했는지 영화를 보며 각자 판단해 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가 겪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느냐, 뻔한 스토리로 눈물 흘리게 하는 영화가 아니겠느냐 등등. 이러한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1997년 그 당시 이루어졌던 협상과 거대한 변화들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평가하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려 한다면, 과거의 시작과 현재를 편향되지 않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이를 차갑고 담담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 어느 쪽에도 심히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라면 더욱 좋을 것만 같다.
‘세월은 쏜 화살과 같아서 한 번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의 이전 세대가 겪었던 화살은 빠르게 흘러 지나갔고, 이제 우리의 손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화살촉이 떠나려 한다.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어떤 속도로 날아가 어떤 과녁을 향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자칫하면, 다음 세대가 지금 날아갈 화살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2시간이 넘는 긴 러닝 타임 끝에 결국 이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옳은 방향과 적절한 속도에 대한 답은 진리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우리들이 오늘과 내일에 내리는 순간순간의 선택들을 소중히 돌아보고 내디뎌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젊은 당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