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by 산연랑


빈 수레에 물을 가득 채워넣었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잠시 동안 흐르지 않고 넘쳐버린 물을 바라봤다

나는 바라는 게 많았던 걸까 모두 비워내고 싶었던 걸까


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내 기억 속의 풍경

잔디가 눈처럼 흩날리던 여름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지구 반대편으로 달렸는데

나는 달의 뒷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떤 죽음은 경이롭고 어떤 죽음은 슬프고

또 어떤 죽음은 외롭다


그날 내가 마주한 죽음은 뻣뻣하게 누워있던 사람의 메마른 다리와 미세하게 풍기던 싱그런 겨울 냄새 희끗거리던 자글자글한 주름들 뭉친 휴지 덩어리들을 머금은 콧구멍 자박거릴 것만 같던 곱슬머리


둥그렇게 둘러 모여 감은 눈을 응시했다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울었고 어떤 이는 자꾸만 같은 말만 외쳤다 잘 가소 잘 가소 잘 가소 나는 그 뒤에 서서 어쩐지 그 감은 눈이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누군가 억지로 감기게 한 것만 같아 내가 직접 손바닥으로 가리고 싶었다

이미 감아진 눈가 위를 한 번 더 포개고 싶었다


온도를 재봐도 될까요 모래 속을 파고드는 온도계는 차가움을 모르더라고요 휴지 대신 온도계를 넣어주세요 분명 올라갈 거예요 생에 따듯함만 간직한 이였으니


물이 구멍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래야지

다시 채워야지

그래봐야지

도로 채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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