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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an 09. 2021

첫 번째 수필

 나이를 먹는다는 건 - 2020.09

핸드폰 알람은 정확한 시간에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감은 채 나는 오른손으로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아낸 뒤 감각적으로 알람을 껐다. 이 몽롱한 상태를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재촉에 못 이겨 몸을 일으킨 뒤 찌뿌둥한 어깨를 휘저어본다. 조금 저리지만 '세수를 할 때쯤에는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본다.


줄줄이 선 빌딩들 사이로 연한 파란색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드문드문 새하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고 그 사이로 따듯하게 햇빛이 녹아들고 있었다. 내 방 창문을 넘나들던 그녀는 부지런하게 잠에서 덜 깬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한참 그 모습을 지켜본 뒤 침대를 벗어났다.


어머니가 어제 끓인 찌개를 데워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밖으로 나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보통 한 가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곳이 많은데 이 곳은 집 근처에서 유일하게 다양한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나로서는 다양한 맛의 아메리카노를 고를 수 있는 이 곳을 애용한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녀가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리 지어 자리를 차지한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지만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표정이 밝았다. '아 이제 곧 주말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며 어제와는 다른 원두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2년여 만에 복학하지만 전국적인 유행병 때문에 학교를 가는 것은 잠시 미뤄야 했다. 오전 수업이 많은 이번 학기를 생각하면 비대면 강의가 나로서는 반가웠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에 익숙한 나는 이런 형태의 수업방식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번 학기 내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올해 입학한 새내기들이 대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이제 대학에서 화석 취급받을 나이이므로 이래저래 학교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하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지만 집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던 학창 시절의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불편했다. 눈만 마주치면 다투는 상대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함께 갇혀있는 것, 그것이 당시의 나에게 집이란 공간이었다. 그때 우리 가정은 전에 없던 시련을 겪고 있었는데 동시에 나는 나대로 사춘기가 오는 바람에 나와 부모님의 감정선은 아주 날카로워져서 언제든 상대를 베어낼 수 있었다. 워낙 그 날이 날카로웠기에 그것을 무뎌지게 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나는 20대가 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전에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지금에 이르러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예전보다 부모님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됐고 그것이 관계 개선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같은 상황에 대해서 나와 이해하는 방식이 같지 않다는 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관점을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분명 지금과 또 다른 생각을 가진 내가 글을 쓰고 있겠지. 그때의 내가 이 글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꽤나 철든 척하고 있네'라며 비웃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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