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감 Jan 10. 2021

두 번째 수필

책과 글과 나 - 2020.10

약속이 없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면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이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은 제법 오래됐지만 내가 자주 찾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독서에 흥미가 없을뿐더러 다소 먼 거리에 도서관이 있어서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와서는 도서관과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다 해도 독서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할 것도 없는데 도서관이나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눈에 보이는 곳에 그것이 있게 된 덕이고 이것은 나와 독서의 거리감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


도서관은 외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콘크리트로 된 다른 건물들에 비해 개방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 부지 자체가 넓고 도서관 앞으로 탁 트인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조형물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그 공간만으로도 쉼터로써 기능하고 있다. 거대한 유리 서재는 책들의 보관함뿐만이 아니라 도심 속 오아시스로 존재하고 있다.


책장은 가득 채워진 채 나란히 줄지어 서있다. 고요한 책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코를 간지럽히는 책 냄새, 사그락사그락 넘어가는 종이의 소리. 최근에는 빠져든 작가가 있어서 그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고 있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꽂혀있는 책들을 죽 훑으면서 흥미를 끄는 것에 손을 뻗는다. 눈길을 붙잡거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 선호하는 디자인의 책 혹은 좋아하는 방식의 서술 등 무엇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집어 든다. 하지만 나열한 것들 중에서 결국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은 서술의 방식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어도 작가의 문체가 도저히 나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이야기의 끝까지 다다르기가 버겁다.


나는 책 건너편의 독자에게 말을 거는듯한 다정한 어투의 글이 좋다. 까칠하지 않고 부드럽게. 친구와 대화하듯 담담하게 적힌 글이 좋다. 화려하게 꾸민 차림보다 편한 옷이 좋듯이. 분명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그것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서술해낸 문장을 보면 감탄을 넘어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문장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지만 결국 여백을 채운 것은 흔하고 뻔한 문장인 자신을 마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허투루 소비되는 경우가 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의 치밀함에 질투마저 느낀다. 나는 당장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벅찬데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저렇게 잘 짜인 작품이 나오게 되는 걸까, 하며 시작도 하기 전에 꺾일 것만 같다.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피력할 만큼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펜을 잡은 이상 적어내려 온 문장들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내가 책일질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 관한 것들 뿐이다. 그래서 매주 써 내려가는 글의 주제가 '나'로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좀 더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수준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스스로를 갈고닦아서 하나씩 쌓여가는 글들이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의미를 담은 흔적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도 보다 성숙해진 글을 위한 거름이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수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