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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ul 06. 2021

첫 인상

작고 하얀 사람, 그것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첫 한두 달은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묵묵히 책만 읽었다. 당시는 학원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있으면서도 그걸 위해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 거리감을 좁히는 과정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그저 생각만 머금은 채 덩그러니 혼자 지내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상대가 먼저 다가와주고 말을 걸어준 덕에 나도 수월하게 '거리감을 좁히는 문'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들과 흘러가는 만남으로 끝나지 않아서 정말 운이 좋았다 생각한다.

        

언제 처음 그를 마주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는 출근날이 겹치지 않아 이름만 인지하고 있을 뿐 한 번도 같이 출근한 적이 없었다는 건 기억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주일에 두 번은 같이 일하게 됐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후로 몇 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단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밥을 먹었을 뿐 특별한 교류를 하진 못했다. 직접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기보다는 누군가를 통해 둘러둘러 대화했다고 해야 할까. 관심 있는 대상은 오히려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하는 나란 사람은 그를 힐끗힐끗 몰래 보는 게 고작이었다. 좀 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를 알아가고 싶었지만 50분이 채 안 되는 저녁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려서 늘 아쉬운 채로 마무리해야 했다.

    

언젠가 한번 그와 단둘이서 출근하게 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간고사 이후 짧은 휴가를 부여받아서 학원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이곳도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그런 상황 탓에 선생들도 최소한의 인원만 출근해야 했는데, 두 사람만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학원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빈 교무실에 앉아 여느 때처럼 책을 읽어나가고 있었다. 몇 장을 넘겼을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작고 하얀 그가 시야에 스며들었다.


처음 몇 분은 침묵만이 공간을 채웠다. 친근하게 대화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평소 하던 대로 책에만 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둘만 있는 시간을, 이 귀중한 일분일초를 흘려보내는 것이 몹시 아쉽다고 토로하는 나와 그 반대편에는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그냥 하던 대로 해라고 속삭이는 내가 있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마음보다 훨씬 큰 아쉬움이 나를 움직였고 어느새 나는 몸을 돌려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급여 계산을 위한 출근부는 복사했냐는 사소한 주제로 운을 뗐다. 제법 자연스러웠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말을 걸 구실이 얼마나 없었으면 저런 질문을 했을까 싶다. 그는 의아했을 것이다. 왜 갑자기 이 사람이 말을 거는지. 평소엔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책만 보던 사람도 어색한 공기는 불편해하는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시작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 골똘히 궁리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사실 머릿속은 어떤 대답을 할지 정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에게 적절한 반응을 주면서 대화를 이어 줄 그런 대답.


수업 시작 전 짧은 2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더 오지 않을 기회를 책을 읽는다고 날려버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더 일찍 말을 붙일 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나와 그는 시간표가 달라 그가 나보다 먼저 퇴근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퇴근할 때 나도 같이 나가고 싶었다. 집으로 걸어가며 얘기를 더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턱 언저리까지 차올랐지만 그렇다고 일을 내팽개치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퇴근한 나는 몇 시간 전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어보며, 그의 목소리와 표정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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