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상한 사람

사회 초년생 울리는 양아치 실장님

by 이음하나

미대를 가려고 내리 그림만 그렸다.
입시를 했지만, 뭐가 안 될 팔자였는지
수능 전날 고열에 시달렸다.

어찌어찌 수능도 보고 실기도 봤지만
가고 싶던 대학에는 떨어졌다.
낙담한 나는 우리 집 9층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어찌 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괴로웠다.
무엇보다,
다시 그 미친 미술학원 선생을
1년 더 봐야 한다는 게 지옥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고 싶은 걸 배우면서 학점을 이수하면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그 말에 혹했다.

신설 뷰티과라 했다.
일단 뛰어내리는 것보다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전공, 뷰티.
메이크업, 헤어, 피부, 네일아트까지
손이 닿는 대로 배웠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되었다.
신사동 어느 오피스텔,
실장님은 말랐고, 날카로웠고,
무표정 속에서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은 함께 일하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말수도 적고 조용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언니가 말했다.

“너도 조심해.”

짧았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한마디.

"그 실장 말이야 내가 들어오기 전에도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 들어오고 얼마 있다가 잘렸거든?
이 사람 이런 식으로 인턴들 잘라내는 거 같아
일 실컷 시키고 월급 줄 때 되면
교묘하게 딴지 걸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른다?
너도 3개월 수습 끝나야 정식 월급 받기로 했지?"

"네.., 그러기로 했어요!"

이 대화를 끝으로 언니는 만날 수 없었다.
언니 역시 소문처럼, 교묘하게 잘렸다.
3개월 일 시키고, 돈 줄 때 되면 꼬투리를 잡는 식이었다.

일은 쏟아지고
덕분에 나는 여러 촬영장을 다녔다.

광고, 단편드라마, 교양 등등
진짜 다양하게 여러 연예인과 모델을
만났다.

혼자 메이크업을 하러 간 날도 많았다.
내가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의아한 촬영도 많이 다녔다.

그 시간에 실장님은 뭐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3개월을 열심히 다니고
무보수가 끝이 나려고 하던 날.

소름 끼치게 꼬투리를 잡았다.

그 꼬투리는

첫 면접 보던 날,
분명 졸업작품전 시기에는
일을 빼주기로 했었다.
이건 학교와도 합의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제 곧 졸작 준비를 하러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니
그날 밤 연락이 왔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리고, 보수는 못 준다고 했다.
이유는
“약속한 3개월을 채우지 않았으니까.”

교수님은 실장님의 말만 듣고
“넌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길래 내 얼굴에 먹칠을 해?”
하며 화를 냈다.

듣기로는 내가

밥먹듯이 매일 지각하고
일도 열심히 안 했다고 하면서
더 이상 못 데리고 있겠다고 했단다.


황당했다. 억울했다.
서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고,
새벽 촬영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고
밤늦은 패션쇼까지 했었다.

보수를 받기 전이라
엄마에게 용돈 받아 아껴가며
지하철, 버스, 걸어 다니면서
군소리 한번 안 하고 열심히 한 것을
내 주변 지인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부당한걸 참고 있자니 속이 터져 미칠것 같았다.
엄마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엄마는 단호했다.

“지금 당장 우리 아이 임금 지불하세요.
학교도, 애들 취업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신기하게, 바로 입금이 되었다.
그 일 이후로 다시는 그 실장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다른 현장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처럼, 언니처럼,
수많은 인턴들이 같은 패턴으로 당했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그때 왜 그리 어렸던 나를 함부로 했을까.
왜 첫 사회생활이 그토록 모질어야 했을까.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건 내 인생의 첫 세상 수업이었다.
배신으로 배우고, 억울함으로 견딘

내 사회생활에 첫 번째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처음에 가장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사람이 되어 주려고 한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누군가의 처음이 가장 두렵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