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오래 지켜본 오랜 친구는,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나를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오랜 내 친구는 언제 만나도 편안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니까,
내 볼꼴 못 볼꼴 다 봐서 숨길 게 없다.
아이 셋을 낳을 때마다 그 친구가 곁에 있었다.
그러니 나에게 이 친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내 인생의 증인이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오랜만에 재잘대며 수다를 떨다가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무언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
“나 왜 이러지…답답해. ”
창문을 당장이라도 열고 싶었는데 터널이라 열지도 못하고
만약 내차였다면 열었겠지만
친구에게 불편을 끼칠까 문을 내리지 못하였다.
편안함과 어두움.
이상하게 모양이 다른 이 두 가지가
나에겐 같은 얼굴의 두려움이었다.
숨길 게 없었던 친구지만
걱정은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마주치는 공황은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그것도 가장 편안하다고 느낄 때,
귀신같이 눈치채고 찾아온다.
나도 친구가 아이를 낳을 때 함께 있었다.
조카가 태어나는 순간,
한마디만 늦었으면 탯줄을 내가 잘랐을 것이다.
내 아이들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한 동네서 어린이집도 같이 보내며
가족처럼 함께 키우고 공동 육아를 했다.
어릴 땐 정말 매일 만나서 어울렸으니
집을 하나로 합치자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그 친구, 그 조카, 그리고 내 아이들과 함께
롯데월드에 갔던 날.
아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녔다.
매일 같이 만나던 사이가 아이들이 크고
우리도 각자 일하느라 바빠 오랜만에 만났다.
한참을 놀고 돌아가기 아쉬워,
비행을 체험하는 5분짜리 모험 기구에 탔다.
예전에도 탔던 거라 아무렇지 않게 탔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공황이 또 찾아왔다.
5분.
그 짧은 시간은 지옥 같았다.
당장 기구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운행하는 담당자에게
손짓을 하니 친구도 나의 공포감을 감지했다.
“나가고 싶어!”
“기다려봐! 왜 이렇게 안 보는 거야!!!”
연신 손짓을 했지만
담당자는 못 보았다.
너무 어둡고 봤어도 신이 나서 손짓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막내가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왜 그래?”
“엄마... 무서워.”
아이가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고는
“괜찮아?”
그 작고 따뜻한 손이
내 심장의 폭풍을 조금이나마 잠재웠다.
그날 이후,
막내는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준다.
이상하게도,
그 손을 잡으면 세상이 덜 무섭다.
지옥의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친구는 내가 공황이 있다는 것을 완벽히 알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친구는 어둠이 몰아치면 앞에서 늘 말했다.
“이제 곧 터널 나온다. 괜찮지?”
나를 겁내지 않게,
미리 준비하게 해주는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