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뜨끈한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었다.
몇 주째 쉬는 날 없이 일만 했더니
진짜로 몸이 녹아내려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국밥 한 그릇은 나에게
제일 바쁜 저녁시간을
평온하게 해 줄 것 같았다.
금이 살짝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한 그릇 같은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투두둑., 산산조각 날 줄이야...
그날은 조금 일찍 서둘러 퇴근했다.
“지하철역으로 데리러 갈게.”
오랜만에 남편에게서 듣는 반가운 말이었다.
역에서 집까지 걸으면 7분 남짓이었지만
그 거리조차 걷기 싫었다.
만나자마자 남편이 물었다.
“저녁은 뭐 먹지?”
“오늘은 저녁 할 힘도 없어. 콩나물국밥 먹자.”
나는 이미 지하철 안에서 메뉴를 정하며 오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 다섯 식구는 3800원짜리 콩나물국밥 세 그릇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남편은 콩나물국밥집 앞에 차를 세우고 포장하러 내렸다.
나는 차 안에 남았다.
딱, 눈이 오겠다 싶었다.
겨울 저녁 여섯 시.
어둑한 하늘은
울트라마린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려놓은 듯 깊었다.
눈이 한 점씩 내리기 시작한다.
로맨틱한 겨울밤의 시작 같았지만
곧 눈은 한 점이 아닌, 덩어리로 쏟아진다.
창문은 하얗게 가려졌고
내 세상은 암흑으로 덮였다.
그 공포가 또 찾아왔다.
몸이 굳었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
덜컥—차 문이 열리고 남편이 탔다.
“왜 그래??”
남편은 그제야 내 공황을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왜 이런 줄 알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를 부득부득 갈며
원망의 화살을 남편에게 쏘아댔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날,
그날이 또 떠오른다. 나의 정신을 망가뜨린 그날 말이다.
남편의 시작은 늘 거창했다.
셋째를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더니
사업을 해야겠다고 했다.
월급 받아서는 다섯 식구가 살기 어렵다며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진심이었다.
이미 여러 번 실패했지만
‘이젠 셋째도 있으니 정신 차리겠지.’
친정집은 그렇게 믿고 사업자금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그는 또 망했다.
돌도 안 된 막내를 안고 있던 시절이었다.
정말 완전히 무너졌다.
친정에서 빌린 돈도 갚지 못했고
여기저기 손을 뻗어 빚이 산처럼 쌓였다.
결국 시댁이 나서서 ‘빚잔치’를 열어야 했다.
간신히 쫓겨나는 건 면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코너에 몰린 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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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영업이 끝날 무렵,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장이랑 술 한잔하고 갈게.”
“알았어, 조심히 와.”
그렇게 카톡을 주고받고
나는 아이들과 잠들었다.
새벽 다섯 시.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제 온 거야?”
“그래! 뭐! 그래서 어쩔 건데?”
남편은 퉁명스럽게 시비를 붙였다.
“넌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
진짜 죽을 지경이라고! 그냥 죽어버릴까?
내가 죽어야 해! ”
너무도 갑작스러워 정신이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죽겠다고 난리난리 피우더니 이러다
더 큰일이 날까 싶어
나는 서둘러 큰아이를 깨워 막내를 품에 안겼다.
그리고 자고 있는 작은아이를 품에 안았다.
큰아이에게 말했다.
“절대 이 방문 열어주지 마.”
나는 작은아이를 안고 뛰었다.
1층이라 다행이었다.
경비실이 보였다.
뛰었다. 그냥 막 뛰었다.
내 안의 뜨거움은 달릴 때마다
허연 입김을 뿜어 댔다.
헉헉
나에게 그 어둠은 엄청난 공포였다.
아파트 앞을 순찰하던 경찰을 마주치게 된다.
“도와주세요!!”
당장 집 안에 있는 큰아이와 막내가 걱정이 됐고,
작은아이만 안고 뛰쳐나온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모두 무사했지만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넘길 수는 없었다.
죽겠다는 남편은 너무도 말짱했고
술에 취해 자기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시간이고 뭐고 따질 틈도 없이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뻔뻔한 놈이었지만
누굴 해친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속은 썩였어도 온순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용서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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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인 자리.
아버님은 친정 부모님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며칠 데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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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몇 해가 흘렀는데
딸이 반듯한 옷 한 벌 없는 꼴을 보고
빨래를 개던 엄마가 울었다고 했다.
“어쩜 이래... 어쩜... 성한 게 하나도 없어.
어쩜 이러냐고, 정말...”
잘 살라고 보낸 딸이
세 딸을 데리고
이 꼴로 돌아왔으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대못을 박았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