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지는 않은데 같은 반인 공황

by 이음하나

아이들이 어려서 그날의 상처를 몰랐다.
아니, 어쩌면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알고서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뒤
우리는 다시 다섯 식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수시로 폭풍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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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공황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묻는다.
“아니, 왜 그렇게 심한데 병원은 안 갔어요?”

그 의문, 나도 잘 안다.
그때의 나는 병원을 가지 않은 이유가 분명했다.

혹시라도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을 때,
“엄마가 공황이라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

친정엄마가 병원에 가보라 권했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단을 받는 순간,
마치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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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공황을 겪고 나니
요령 같은 게 생겼다.
공황이 다가오기 전의 느낌,
그리고 그 순간의 대처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회사까지 지하철로 20분 남짓.
처음엔 도저히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숨이 막혀서 내리고, 또 내리고.
결국 20분 걸리는 길을 한 시간씩 잡고 다녔다.

노래를 듣고,
책을 보고,
아이들 사진을 보며 버텼다.
그래도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옆사람이 휴대폰으로 시트콤을 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문득,
‘저렇게라도 웃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출근길마다 아침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시선을 드라마 속 세상에 묶어두니
그제야 숨이 트였다.

그래도 안 될 땐 그냥 내렸다.
그렇게라도 나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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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과 알고 지낸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친하지는 않은데 같은 반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