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의 ‘미술’은 말 그대로 단어일 뿐이었다.
그리고 칠하던 그런 작업이 아니었고,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평가하는 미술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미술’이라는 단어 때문에 친근하면서도 긴장했지만
여기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수강 인원은 20명,
자리가 꽉 찬 인기 있는 과정이었다.
첫날 반 분위기는 노릇노릇했다.
다들 나이가 적지 않았고,
평온해 보이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서로에게 다정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다정한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이 사람들을 만난 건
나를 바꾸어 놓는 행운의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공감해 주었다.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이야기할 때마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늘은 또 내 이야기를 어떻게 공감해 줄까?’ 하는 설렘도 있었다.
묵혀 있던 이야기들이
신기할 정도로 술술 나왔다.
그리고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으로 나를 달라지게 한 시간이 찾아왔다.
나에게 사과하는 시간.
그동안 무시하고 버려두었던
어린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가장 미안했던 순간을 떠올리니
어린 내가, 남동생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볼품없이 까맣고 깡마른 손으로
내 또래만큼 왜소한 남동생의 손을 꼭 잡고.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날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 이후로
나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고,
편안할 때에도 불쑥 찾아오던 공포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제야 알았다.
공황은 ‘어쩌다 마주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돌보라고,
나 좀 보라고,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나는 그 신호를
너무 오래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공황은
나를 강하게 흔들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래도 네가 너를 안 돌볼 거야?”